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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서의 해: 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탈출 2,24)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08 조회수6,351 추천수1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탈출 2,24)

 

 

야곱과 함께 이집트로 올라간 이스라엘의 자녀들. 그들은 하느님 약속의 성취를 체험하면서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줄 알았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파라오가 되면서(탈출 1,8), 모든 상황이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요셉을 모르는 것은, 요셉과 함께 하신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탈출기 1-2장에 등장하는 파라오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뒤를 이은 또 다른 파라오도 “그 주님이 누구냐?”(탈출 5,2) 하면서 야훼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파라오의 모습이 탈출기의 초반부에 강조됩니다. 그렇습니다. 탈출기는 우리들에게 단순하게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였다는 사실만을 알려주기 위해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탈출을 가능하게 하신 야훼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려주는 것이 더 큰 이유이고, 이 책의 목적입니다.

 

이집트의 임금 파라오가 요셉을 모르니, 하느님을 모르는 것이었고, 하느님을 모르니,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것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 파라오는 하느님 약속의 성취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입니다(탈출 1,9-10). 이에 파라오는 창세기부터 이어진 하느님 약속의 성취에 반대되는 세 가지를 시도합니다. 첫째는 강제 노동을 통해서 억압합니다(탈출 1,10). 둘째는 히브리 산파(시프라와 푸아)를 통해서 남자 아이의 출산을 방해합니다(탈출 1,15-16). 셋째는 남자 아이는 강에 던지고, 여자 아이는 살려두라는 명령을 내립니다(탈출 1,22). 하지만, 그의 세 가지 시도는 모두 좌절됩니다. 억압하면 할수록 더욱 번성하였고(탈출 1,12), 두 명의 히브리 산파들이 하느님을 경외하였기에 남아 출생을 저지할 수 없었으며(탈출 1,17), 아이러니컬하게도 파라오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그의 딸이 명령을 어기면서(탈출 2,1-10), 파라오의 정책은 실패합니다. 파라오의 이스라엘 백성 탄압의 의미는,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의 번성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느님은 물론이요, 하느님의 약속과 계약에 대한 반대였습니다.

 

파라오의 이러한 저항은 그 뒤를 이은 임금에게도 이어집니다. 새로운 임금이 등장하여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탄압은 멈추지 않습니다(탈출 2,23).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가 부여한 강제 노동에 억눌려 탄식하며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리는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올라가고 하느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십니다. 그 소리를 통해서 하느님은 계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의 절박한 상황을 살펴보시고 그 처지를 알게 되십니다(탈출 2,23-25).

 

탈출기 처음 두 장(1-2장)에서 하느님은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장의 마지막에 이르러 하느님의 행동 개시를 알려주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찾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그냥 탄식하고 부르짖기만 합니다. 하느님께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신음을 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느님께 소리치지 않았는데, 그 소리가 하느님께 올라가게 됩니다. 탈출기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파라오가 요셉과 하느님을 알지 못하였던 것처럼, 고역에 짓눌리는 이스라엘 백성도 파라오처럼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서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는 두 그룹-파라오와 이스라엘 백성-은 탈출기 안에서 우리들에게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알려주는 안내자로 등장합니다. 모순적이지만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통해서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알게 하여 주는 것이지요.

 

탈출기의 저자가 가장 먼저 알려주는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하느님께 올라가는 소리에 반응하고 움직이시는 하느님입니다. 그 소리를 통해서 하느님은 기억하시고, 하느님은 소리내는 그 사람들을 살펴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알아주십니다. 그리고 행동하십니다. 우리의 울부짖음. 바로 기도이지요. 기도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예쁜 말로 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여서 기도하는 것도 좋겠지만, 하느님을 향해서 우리의 울부짖음을 보내보세요. 그 소리를 듣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시고,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손수 행동하실 겁니다.

 

[2019년 5월 5일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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