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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48: 바오로의 두 번째 선교 여행5 - 코린토 선교(사도 18,1-17)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18 조회수5,950 추천수0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8) 바오로 사도의 두 번째 선교 여행 Ⅴ: 코린토 선교(사도 18,1-17)


“두려워말고 계속 복음을 선포하여라. 내가 함께 있겠다”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유다인들의 반대를 받지만 환시 말씀을 듣고 1년 6개월이나 머물며 복음을 전한다. 사진은 코린토 유적지 모습.

 

 

아테네에서 몇몇 사람을 신자로 만든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갑니다.(18,1) 바오로의 코린토 선교 활동을 살펴봅니다.

 

코린토는 아테네에서 남서쪽으로 80㎞쯤 떨어진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입구 쪽에 있습니다. 오늘날 자동차로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입니다. 코린토는 동쪽으로는 소아시아, 서쪽으로는 이탈리아와 연결되는 항구가 따로 있을 정도로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기원전 27년 로마 제국의 속주(屬州) 아카이아 지방의 수도가 된 코린토는 특히 성적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도시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성적 문란함과 우상숭배로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생업에 종사하며 복음을 전하다(18,2-11)

 

코린토에서 바오로는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라는 유다인 부부를 만납니다. 이들은 오늘날 흑해와 맞닿은 터키 북부 지역인 폰토스 출신으로 로마에서 살다가 ‘유다인들은 로마를 떠나야 한다’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에 따라 코린토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마침 생업이 같아서 바오로는 그들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18,2-3)

 

이 대목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다인들에게 추방 명령을 내린 것은 기원후 49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유다인들과 그렇지 않은 유다인들 사이에 소동이 벌어졌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기원후 49년에는 이미 로마에도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아퀼라와 프리스킬라가 바오로를 만났을 때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 신자가 되어 있었을 때라고 여겨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들이 바오로를 만났을 때까지 그리스도 신자가 아니었다면 바오로는 이들에게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것이고, 사도행전 저자 또한 이 사실을 기록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린토에 도착한 바오로가 이 부부를 찾아간 것은 단지 생업이 같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들이 그리스도 신자임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부부는 바오로의 선교 활동에 큰 도움을 준 협력자이기도 했습니다. 바오로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16,3)이나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16,3) 등에서 이 부부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확인해 줍니다.

 

로마서나 코린토1서, 티모테오2서(2티모 4,19)에는 ‘프리스카’라고 나오는데, 프리스킬라와 같은 이름입니다. 프리스킬라는 프리스카라는 이름의 의미를 축소한 것으로, 사도행전 저자 루카는 이런 의미 축소형 표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바오로의 생업이 여기에 처음으로 언급됩니다. 양이나 염소 같은 동물 가죽이나 털로 직물을 짜서 천막을 만드는 일이 바오로의 생업이었습니다. 정황으로 볼 때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는 천막 짜는 일을 크게 벌이고 있었고 바오로가 끼어들어서 함께 일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한 듯합니다.

 

이렇게 평일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 안식일이 되면 바오로는 회당으로 가서 토론하며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다가 마케도니아 지방 베로이아에서 헤어진 실라스와 티모테오가 내려온 후에는 유다인들에게 말씀을 전파하는 데만 전념합니다.

 

유다인들이 반대하며 모독하는 말을 퍼붓자 바오로는 “여러분의 멸망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 이제부터 나는 다른 민족으로 갑니다”라고 말하고는 티티우스 유스투스라고 하는 사람의 집으로 갑니다. 회당 바로 옆에 사는 그는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18,5-7)

 

바오로에게 반대하며 모독하는 말을 퍼부은 유다인들과는 달리 회당장 크리스포스는 그의 온 집안과 함께 주님을 믿게 됩니다. 회당장이라는 직분으로 보아 그는 유다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코린토의 유다인으로서 첫 신자가 된 것입니다. 또 다른 많은 코린토 사람들도 믿고 세례를 받습니다.(18,8)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자신이 코린토에서 직접 세례를 준 이들을 언급합니다. 크리스포스와 가이오 그리고 스테파나스 집안사람들입니다.(1코린 1,14-16)

 

어느 날 밤 바오로는 환시 속에서 주님 말씀을 듣습니다. 그 내용은 ① 두려워하지 말라 ② 계속 말씀을 선포하라 ③ 내가 너와 함께 있고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18,9-10) 바오로가 환시에서 주님의 이런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당시 바오로의 심정이 불안했으리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오로는 소아시아 땅에서는 물론이고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도 가는 곳마다 유다인들의 반대를 받았는데, 코린토에서조차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환시에서 힘을 얻은 바오로는 1년 6개월 동안 코린토에 머무르면서 사람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가르칩니다.(18,11)

 

 

재판정으로 끌려가다(18,12-17)

 

그런데 또 문제가 생깁니다. 유다인들이 들고 일어나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 아카이아 지방 총독에게 “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다”고 고발한 것입니다. 당시 아카이아 총독은 로마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네로 황제의 스승이기도 한 세네카(기원전 4?~기원후 65)의 형 갈리오였습니다. 하지만 갈리오 총독은 이 고발을 일축하고는 그들을 재판정 밖으로 몰아냅니다.(18,12-16)

 

당시 로마 제국은 종교 문제에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어떤 종교에 대해서는 법으로 금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유다인들은 바오로가 선포하는 복음을 제국의 종교 정책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고발하려 했지만, 갈리오 총독은 이를 유다교 내부의 문제로 여겨 관심 밖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자 “모두 회당장 소스테네스를 붙잡아 재판정 앞에서 매질하지만” 갈리오는 그 일에도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18,17) 앞에서는 회당장이 크리스포스였는데, 여기서는 소스테네스라고 나옵니다. 소스테네스는 크리스포스의 후임 회당장일 수도 있고, 크리스포스와 공동 책임을 맡은 회당장일 수도 있습니다. 소스테네스 역시 나중에는 신자가 됐지만(1코린 1,1 참조), 매를 맞았던 당시에도 신자였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소스테네스를 붙잡아 매질한 사람들이 유다인들이라면 소스테네스는 이 당시에 이미 신자가 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생각해봅시다

 

바오로는 아테네에서 광장에서 토론도 하고 나중에는 법정이자 공청회장인 아레오파고스에서 열변을 토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지만 몇몇 사람을 신자로 만드는 데 그쳤습니다.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입니다.(1547호 1월 12일자 참조)

 

어쩌면 바오로는 실망한 상태에서 코린토로 왔을 것이고 그곳에서 생업에 종사하면서 복음을 선포합니다만, 다시 유다인들의 반대를 받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오로는 환시 말씀을 듣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복음을 선포하여라. 내가 함께 있겠다.” 이 말씀에 힘을 얻어 바오로는 1년 6개월이나 그곳에서 지내며 말씀을 전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들은 이 환시 말씀은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오늘 우리 신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말씀이 아닐까요? 힘들고 지치고 시련에 부닥쳤을 때 좌절하지 맙시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월 19일, 이창훈(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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