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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라자로가 죽었을때 예수님은 왜 우셨을까요?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26 조회수3,384 추천수0 신고

 

  *참고로 보세요.*


나자로야 나오라 (요한11:1-44)|


~~생략~~

(요한11:14-15) 14 그래서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라자로는 죽었다.  15 이제 그 일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내가 거기 있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이다. 그곳으로 가자.' 

 

나자로가 죽어야 그의 죽음과 부활로 구원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은 나자로의 죽음의 현장에 당신이 계시지 않았던 것을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신 이유를 뭐라 하십니까?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니까 당신 백성들의 믿음을 위해서 나자로를 죽이시는 것도 불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위해 우리를 죽도록 패시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기쁨이요  사랑인 것입니다.  아비가 자식이 어둠 속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그게 사랑입니까?  정말 자식을 사랑하는 아비라면 자식의 다리를 부러뜨려야지요.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엉뚱한 길로 달려가는 자식의 앞을 가시로 담으로 막아서고 그래도 가겠다고 하면 다리를 부러뜨려 버리는 그것이 아버지의 진짜 사랑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우리의 믿음을 위해 마치 우리를 죽음의 자리로 내모시는 것 같이 우리를 대우하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병이나 고쳐주고 목숨이나 부지하게 만들어 주는것이 사랑이라고 착각을 했습니다.

(요한11:35-37) 35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36 그래서 유다인들은 '저것 보시오. 라자로를 무척 사랑했던가 봅니다' 하고 말하였다.  37 또 그들 가운데에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라자로를 죽지 않게 할 수가 없었단 말인가?' 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 보시면 마치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눈물을 보고 ‘참 많이 사랑했었나보다 저렇게 우는 걸 보니’ 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추켜 세우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37절을 보면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고 비아냥 거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다인들은 지금 정 반대로 ‘저 사람이 나자로를 사랑했던 것처럼 울고 있다 그렇다면 소경의 눈을 드게 했던 그 실력으로 나자로의 병을 고칠수는 없었단 말인가? 저 사람은 나자로를 진정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야’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과 죄인들의 사랑의 내용은 천양지차인 것입니다. 이제 나자로를 종으로 붙들고 있었던 사망이 어떻게 격파되는지 보세요.

 (요한11:33) 33 예수께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같이 따라 온 유다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문상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悲痛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셨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痛憤히 여기다 엠브리마오마이’ 강한 분노와 불쾌감으로 호되게 꾸짖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민망히 여기다 타라소오’ 도 역시 분을 못 이겨 크게 치를 떠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화를 내셨을까요?  누구에게 화를 내신 것이지요? 마리아? 유다인? 아닙니다.  당신의 백성들을 붙들고 있는 죽음의 세력에게 분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 예수님의 눈물은 화가나서 흘리는 눈물도 아니고 어차피 살려낼 나자로가 불쌍해서 우시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유다인들의 눈물에 동참하시는 것입니다. 죽음에 사로잡혀 死亡의 증상들을 겪어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의 눈물에 동참하시는 것입니다.

(시편56:8) 8 나의 한탄을 기록해 두소서. 이 눈물을 당신 부대에 담아 두소서. 

 

다윗이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도망을 했을 때 너무 견디기 힘이 들어 많이 울었습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친 척을 해야 했을 정도로 힘이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블레셋은 다윗이 때려죽인 골리앗의 나라 아닙니까? 오죽하면 그 적국으로 피신을 했을까요? 

다윗은 하느님께 아룁니다. ‘ 하느님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다 아시지요? 하느님의 책에 기록이 되어 있지요? 그러니 나의 눈물을 주의 부대에 담아 주옵소서’ 라고 기도를 합니다.  거기에서의 주님의 책은 하느님의 작정과 주권의 책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라3:16) 16 나를 공경하던 자들이 이런 말을 주고 받게 되었다. 이 야훼는 그것을 똑똑히 들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나를 공경하고 내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나는 책에 적어 두고 잊지 않으리라. 

 

하느님의 백성들의 삶과 그들이 걷는 여정은 모두 하느님의 책에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살아가야 하당신의 백성들의 눈물을 하느님께서 당신의 병에 담으시고 그 눈물 병을 십자가에서 다 깨뜨려 버리시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나자로의 무덤 앞에서 사망에 압도되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마리아와 마르타 그리고 다른 유다인들의 눈물에 동참하신 것은 당신의 백성들의 눈물의 병을 깨뜨리시는 십자가를 미리 힌트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자로의 무덤 돌문을 치우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마리아와 마르타의 불신이 또 한 번 폭로 되지요?  이미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나는데 왜 문을 열라고 하느냐 고 오히려 주님을 말립니다. 죽음에 사로잡힌 자들의 불신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나자로의 무덤으로 들어가십니다. 왜 굳이 무덤을 여시고 그 무덤 속에서 썩어가는 시체를 폭로하십니까?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무덤 속에서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아니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지금도 우리는 때때로 무덤 속에서 죽음을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지경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하느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그렇게 썩어가는 시체로서의 나자로의 상태가 폭로되자 주님은 나자로의 죽음을 빨아들여 그 죽음을 품에 안고 십자가에서  죽어 버리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그 죽음에서 풀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생략~~

 

 

~요한복음 강해서 일부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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