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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56: 바오로의 체포(사도 21,27-40)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3 조회수8,601 추천수0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56) 바오로의 체포(사도 21,27-40)


성전 모독했다는 누명 쓰고 유다인들에게 붙잡히다

 

 

- 로마 군사들이 바오로를 결박해 끌고 갔던 진지인 안토니오 요새. 예루살렘 성전 북쪽 바깥벽 서쪽 끝에 있다.

 

 

유다인들이 성전에서 바오로를 붙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로마 군대의 천인대장이 부하들을 데리고 가서 바오로를 구해내 군사들의 진지 안으로 데려갑니다.

 

 

성전 체포와 로마 군대의 개입(21,27-36)

 

정결 예식 기간인 이레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유다인들이 성전에서 바오로를 보고는 군중을 선동하여 그를 붙잡고”는 외칩니다. 내용은 바오로가 “이스라엘 백성과 율법과 성전을 거슬러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21,27-28ㄴ) 아시아에서 온 유다인들은 바오로에 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오로는 아시아의 수도 에페소에서 3년이나 지내면서 복음을 전했고 반대자들에 의해 심한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에페소에서 바오로를 반대한 이들은 두 부류였습니다. 한 부류는 유다교의 율법에 충실한 유다인들이었고, 다른 한 부류는 에페소를 대표하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팔아서 돈벌이하던 이들이었습니다.(19장 참조) 바로 그 유다인들이 성전에서 바오로를 보고 붙잡아 고발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 유다인들은 한술 더 떠서 바오로가 이방인인 “그리스인들까지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이 거룩한 곳을 부정한 곳으로 만들었다”(21,28ㄷ)라고 비난합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이 유다인들이 “전에 에페소 사람 트로피모스가 바오로와 함께 성안에 있는 것을 보고 바오로가 그를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고 생각한 것”(21,29)이라고 전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 주랑이 있는 바깥뜰과 성전 안뜰로 엄격히 구별돼 있었습니다. 바깥뜰은 ‘이방인의 뜰’이라고 해서 이곳까지는 이방인들이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 안뜰 출입은 엄격히 제한됐습니다. 이방인이 안뜰에 들어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 표시가 곳곳에 있었습니다. 안뜰은 또한 여자들에게 허용되는 여인의 뜰과 여인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뜰로 구분돼 있었다고 하지요. 이스라엘의 뜰 안에 제단과 정결례 욕조와 본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림 참조>

 

예루살렘 성전과 안토니오 요새 모형도.

 

 

아시아 출신인 트로피모스는 바오로가 코린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에 동행한 일행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20,4) 사도행전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트로피모스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단지 예루살렘 도성 안에 바오로와 함께 머물렀을 따름인데, 바오로를 고발한 유다인들은 바오로가 그를 성전 안에까지 데리고 간 것으로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원로들의 조언을 따라 열성적인 유다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정결 예식까지 거행한 바오로라면, 굳이 이방인인 트로피모스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바오로를 없애는 데 혈안이 돼 있던 열성 유다인들에게는 진실 혹은 사실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바오로를 없애는 것이 더 중요했나 봅니다.

 

아시아에서 온 유다인들의 고발로 도시가 소란스러워지고 백성이 몰려들어 바오로를 붙잡아 성전 밖으로 끌어내고는 죽이려고 매질을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군대의 천인대장에게 올라가고 천인대장은 곧장 부하들을 데리고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천인대장과 군사들이 오는 것을 본 유다인들은 매질을 멈추지요.(21,31-32)

 

천인대장이란 수하에 1000명 이상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는 로마 군대의 고위급 장교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천인대장이 머물고 있던 진지는 예루살렘 성전 북쪽 벽 서쪽에 붙어 있던 안토니오 요새를 가리키는데, 이 요새에는 성전 바깥뜰로 통하는 계단이 있어서 성전에 소동이 생기면 요새에 머물던 군사들을 즉각 투입할 수가 있었습니다.

 

천인대장은 쇠사슬 두 개로 바오로를 결박하게 한 다음 그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했는지 군중에게 묻습니다. 하지만 군중이 여기저기서 외치는 바람에 소란스러워 진상을 파악하기 힘들게 되자 천인대장은 바오로를 진지 곧 안토니오 요새로 끌고 가라고 명령합니다. 요새로 통하는 계단에 이르자 군중이 난폭하게 구는 바람에 군사들은 바오로를 둘러메고 가야 했습니다. 그래도 군중은 큰 무리를 이루어 따라가며 “그자를 없애라” 하고 외쳐댑니다.(21,33-36)

 

바오로는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카이사리아에서 여러 날을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유다에서 내려온 예언자 하가보스가 예루살렘에서 바오로가 결박을 당해 다른 민족 곧 이방인들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21,11) 로마 군사들이 쇠사슬로 바오로를 결박한 것은 하가보스의 예언이 실현됐음을 보여줍니다. 또 큰 무리가 따라가며 바오로를 없애라고 외치는 모습은 마치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 군중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광경을 연상케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세 번째 수난 예고에서 “사람의 아들은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질 터인데…”(루카 18,32)라고 하신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이렇게 보면 바오로의 체포 장면은 바로 예수님의 수난과 처형 직전의 모습을 재현하는 듯합니다.

 

 

천인대장의 심문과 바오로의 답변(21,37-40)

 

진지 안으로 끌려 들어가던 바오로는 천인대장에게 “당신에게 말을 좀 해도 되겠소?” 하고 묻습니다. 바오로는 히브리 말이 아니라 당시에 이방인들 세계에서 통용되던 그리스 말로 천인대장에게 말을 건넨 것입니다. 바오로가 그리스 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확인한 천인대장은 바오로에게 “얼마 전에 폭동을 일으켰다가 자객 사천 명을 이끌고 광야로 나간 그 이집트 사람이 아니오?” 하고 묻습니다.(21,37-38)

 

천인대장이 거론한 그 이집트 사람은 유다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거짓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모아 올리브 산으로 데리고 가서는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린 후 성안으로 쳐들어가 로마 군사들을 무찌르겠다고 호언장담합니다. 그러나 펠릭스 총독이 보낸 군사들에게 제압당하고 말지요.

 

천인대장의 말에 바오로는 자신은 유다 사람으로서 타르수스 출신이라고 밝히고는 군중에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합니다. 천인대장이 허락하자 바오로는 층계에서 백성을 향해 이번에는 히브리말로 연설을 시작합니다.(21,39-40) 연설 내용은 다음 호에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생각해봅시다

 

열성적인 유다인들은 같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의 율법을 무시하는 듯한 바오로의 행태가 지극히 못마땅했고 그를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가 이방인 트로피모스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그에게 데리고 들어갔다고 올가미를 씌우려 합니다.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며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때로는 내게 못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무슨 구실을 대서라도 그 사람과 함께하지 않으려 하거나 심지어 제거하려고까지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열성 유다인들과 똑같은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지요.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22일, 이창훈(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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