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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창세기 인물 열전: 유다, 유다인의 기원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10,116 추천수0

[창세기 인물 열전] 유다, 유다인의 기원

 

 

오늘날 존재하는 유다인은 옛 히브리인의 일부다. ‘유다인’이라는 명칭이 암시하듯이, 어원은 야곱의 아들 유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뒤, 북 왕국은 아시리아로 유배당하여 흔적이 사라졌지만(기원전 8세기), 남 왕국 백성은 바빌론 유배(기원전 6세기)를 겪고도 히브리 정체성을 지켜 냈다. 이 남 왕국의 이름이 유다였고 남 왕국을 구성한 대표 지파가 바로 유다 지파였기에, ‘유다인’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이다. 유다는 요셉과 함께 임종 전 야곱에게서 가장 긴 축복을 받은 아들이다(49,1-28 참조). 둘은 이후 남북 왕국의 조상이 된다.

 

 

유다와 장자권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다. ‘유다’라는 이름은 ‘찬송하다’라는 어근에서 나왔다. 레아가 그를 낳은 뒤, 기쁨에 넘쳐 주님을 찬송했기 때문이다(29,35). 야곱의 장남은 르우벤인데, 어째서 유다가 형제들의 으뜸이 되어 왕조까지 세운 것일까? 우선적 원인은 르우벤이 아버지의 소실 빌하를 범한 죄(35,22)에 있다. 이 일 때문에 르우벤은 장자권을 잃는다. 르우벤 다음 아들은 시메온과 레위이지만, 이 둘은 누이 디나 사건에 격분한 나머지 스켐인들의 피를 많이 흘리게 했다(34,25-31). 그래도 레위 지파는 이집트 탈출 뒤 광야에서 벌어진 금송아지 배교 사건에서 활약한 덕에 성직을 차지하지만(탈출 32,25-29 참조), 시메온은 영영 장자권을 놓친다. 그래서 그다음 아들인 유다가 장자권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49,8.10).

 

게다가 유다는 형제들 사이에서 실질적인 선봉자 역할을 했다. 이 점은 요셉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유다는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 할 때 상인들에게 팔자는 제안을 하여 그의 목숨을 구했고(37,26-27), 벤야민을 이집트로 데려가야 했을 때는 자신이 무사귀환을 책임지겠다며 아버지를 설득했다(43,8-13). 고대 유다 전승은 유다가 지혜로운 사람이었기에, 아버지를 설득할 때 매우 논리적인 방법을 썼다고 한다. 벤야민이 이집트에서 볼모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곡식이 없으면 가족이 다 죽게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창세기 라바 91,10). 야곱은 르우벤이 제안했을 때는 거절하지만(42,37-38), 유다의 제안은 받아들여 벤야민을 이집트로 데려가게 했다.

 

이집트에서도 유다는 볼모가 될 뻔한 벤야민을 보호하려고 최선을 다했다(44,18-34). 이집트 재상 요셉에게 간곡히 호소하여 그가 더 이상 자기 정체를 감출 수 없도록 몰아간 이도 유다였다(45,1-3 참조). 요셉의 생존에 대해 알게 된 야곱이 이집트로 이주할 때도, 야곱은 다른 가족보다 유다를 먼저 내려 보냈다(46,28). 이 일에 대해서도 옛 전승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유다가 고센 땅에 학교를 미리 만들어 두어, 야곱이 도착하면 아들들의 교육을 시작할 수 있게 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창세기 라바 95,2 참조). 결국 요셉이 이집트에서 성공하게 되는 이야기에는 유다가 함께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둘이 훗날 남북 왕국의 선조가 되어,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17,6; 35,11)을 성취하게 된다.

 

 

아들 페레츠

 

유다의 아들들 가운데 다윗 왕실의 조상이 된 이는 페레츠다(38장 참조). 유다가 아내로 맞은 여인은 가나안 출신이었는데, 아들 셋을 낳았다. 며느리로 들어온 타마르도 가나안 여자였다. 그렇지만 타마르와 혼인한 맏아들은 자식을 남기지 않고 죽어 버린다. 유다는 수숙혼(嫂叔婚)에 따라 둘째 아들을 타마르와 혼인시키지만, 그 또한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난다. 그러자 유다는 막내마저 잃을까 염려하여, 타마르를 친정으로 돌려보낸다. 시댁에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타마르는 창녀로 변장하여 유다를 유혹하고 아이를 갖는데, 이때 얻은 쌍둥이의 하나가 페레츠였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가나안에서는 아주 터무니없는 사건은 아니었던 듯하다. 기원전 13-14세기 히타이트 법에 따르면, 과부가 된 여인은 남편의 형제와 재혼하고, 그 형제마저 죽으면 시아버지가 데려가야 했다. 어쩌면 타마르는 자신이 유다의 막내아들에게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점을 짐작하고, 가나안 여인들이 하듯 마지막 대안으로 시부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이후 신명 25,5-10은 수숙혼의 범위를 형제로만 엄격하게 제한하게 된다.

 

 

구세주의 뿌리가 된 유다

 

유다는 기지를 발휘하여 요셉의 목숨을 구하고, 벤야민 대신 볼모가 되겠다고 자원하는 형이었다. 이는 르우벤이 벤야민을 이집트로 데려가는 문제로 아버지를 설득할 때, 자신이 아닌 두 아들의 생명을 담보로 건 일(42,37)과 대조된다. 유다의 행동은 훗날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 당신을 희생 제물로 내놓으신 일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이런 성품 덕분에 유다가 유다인이라는 한 민족의 기원이 되고 구세주의 계보도 잇게 되지 않았을까?

 

* 김명숙 님은 예루살렘의 히브리대에서 구약학 석사 ·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루살렘의 홀리랜드대와 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과 수도자 신학원에서 구약학 강의를 하였고,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이다.

 

[성서와 함께, 2017년 10월호(통권 499호),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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