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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히즈키야 임금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13 조회수8,172 추천수0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히즈키야 임금

 

 

열왕기 는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 곧 우상숭배를 금하고 주님만을 섬기도록 이끈 이를 훌륭한 임금으로, ‘주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 곧 우상을 섬긴 이들은 악한 임금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기원전 8세기 말 혼란한 국제정세 속에서 유다를 이끈 임금 히즈키야(‘주님께서 힘을 주신다.’)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유다의 모든 임금 가운데 그만 한 임금이 없었고, 그보다 앞서 있던 임금들 가운데에서도 그만 한 임금이 없었다.”(2열왕 18,5) 한마디로,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한’(2열왕 18,7; 2역대 31,21; 32,30) 임금 히즈키야를 만나보겠습니다.

 

히즈키야가 즉위한지 얼마 후에(성경에 따르면 기원전 726–697 재위; 일부 역사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715-687 재위) 북 이스라엘 왕국이 신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했습니다(기원전 721년).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하던 북 왕국이 무너지자, 그 유민들이 남유다 왕국으로 밀려들었나 봅니다. 이 시대 예루살렘 인구가 급격히 늘어 솔로몬 시대의 5배 정도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러한 혼란의 시대에 히즈키야는 적극적인 정책을 펼칩니다. 그는 종교 개혁(2열왕 18,4; 2역대 29,3-31,21)을 통해 사회를 정화하고(당시는 신앙-정치-사회가 밀접하게 연계되었던 시대), 예루살렘의 성벽과 수로를 정비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합니다(2역대 32,2-5). 또한 군사적인 노력을 통해 옛 북 왕국의 영토 일부를 회복합니다(2열왕 18,8). 그가 통치하던 시대의 강성함과 문화적 융성(2역대 32,27-29)은 여러 고고학적 유물들의 발견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있습니다. 실로암 연못으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판 지하수로가 대표적인데,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2열왕 20,20; 2역대 32,30).

 

히즈키야 시대에 벌어진 사건은 2열왕 18-20장, 이사 37-39장, 2역대 29-32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와 이사야는 그 본문이 거의 동일해서 먼저 작성된 본문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합니다.] 이 세 본문은, ‘산헤립의 침공과 예루살렘 포위’(2열왕 18,13-19,37; 이사 36,1-37,28; 2역대 32,1-21)와 ‘히즈키야의 발병과 치유’(2열왕 20,1-11; 이사 38,1-8.21-22; 2역대 32,24-26), ‘바빌론 사절단의 방문’(2열왕 20,12-19; 이사 39,1-8; 2역대 32,31)을 동시에 전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들 중 기원전 701년에 일어난 신 아시리아 제국의 임금 산헤립의 침공은 역사적으로 확인됩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이렇게 전합니다. 산헤립이 유다 땅으로 쳐들어오자, 유다 임금은 그에게 많은 금은을 조공으로 바칩니다. 이를 위해 성전의 문들을 덮었던 금까지 긁어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산헤립은 물러가지 않고 군대를 보내 항복을 요구합니다. 아시리아의 사신은 예루살렘 성벽 앞에 서서 ‘유다 말’(2열왕 18,26)로 연설합니다. 그는 히즈키야의 종교개혁을 비웃으며 ‘과연 너희가 믿는 신이 너희를 구원해주겠는가?’(18,22.30.32.35)라는 모욕적인 말을 합니다. ‘환난과 징벌과 굴욕의 날’(19,3)이라고 부르는 이 날, 임금과 대신들과 백성들은 대답을 내놓지 못합니다. 저들의 막강한 군사력 앞에 유다 왕국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과 같았습니다.

 

이때 히즈키야 임금은 ‘주님의 집’ 곧 성전으로 들어가 앉아, 예언자 이사야에게 기도를 청합니다(19,1-4). 아시리아의 임금은 잠시 물러나는 듯하지만(19,8-9), 다시금 사신을 보내 ‘너의 하느님께 속지 말라.’(19,10)는 서신을 보냅니다. [여기서 잠깐, 고대 근동에서는 나라와 나라의 전쟁을 그 왕국의 신들이 싸우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승리한 나라의 신이 패배한 나라의 신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산헤립의 침공에 관한 이야기에도 이러한 생각을 반영하는 문구들이 등장합니다(2열왕 18,33-35; 19,10-13; 2역대 32,13-15.17).]

 

히즈키야는 다시금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그 자신이 주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립니다. 주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보내 그에게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예루살렘에 ‘들어오지도 활을 쏘지도 못하고, 자기가 왔던 길로 돌아갑니다.’(2열왕 19,32-33) 주님의 천사가 한 밤 중에 아시리아 진영을 쳐 18만 5천의 병사들이 급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산헤립은 자신의 아들들에 의해 살해되고 맙니다(19,35-37).

 

이 사건을 전하는 성경 본문은 전쟁의 급박함과 잔인함을 중심으로 삼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참 하느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놓여 있습니다. 아시리아의 사신들의 말과 서신도 이러한 점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히즈키야의 기도도 이를 대변합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 홀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 귀를 기울여 들어주십시오. 주님, 눈을 뜨고 보아주십시오. (다른 민족들의 신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으로서, 사람들이 그것들을 없애 버릴 수 있었습니다. 주 저희 하느님, 부디 저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모든 왕국이, 주님, 당신 홀로 하느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2열왕 19,15-19*) 그러자 주님께서 개입하셔서 산헤립의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시고 당신이 진정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히즈키야는 주님께만 의지하고, 그분께 호소했습니다. 그러한 신뢰와 간절한 기도가 주님의 개입을 불러왔고 예루살렘은 위험에서 구원되었습니다. 히즈키야의 발병과 치유 기사도 같은 것을 전합니다. 질병으로 죽음의 위기에 처한 히즈키야가 눈물의 기도를 바치자,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파스카 축제에 정결하지 못한 상태에 참여한 백성들을 위해 히즈키야가 기도하자 하느님은 그들이 화를 입지 않게 해주십니다(2역대 30,17-20). 한 사람의 열심과 간절한 기도, 소위 ‘강력한 힘들’(우상이나 권력, 재물)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께만 매달리는 기도, 그 기도가 자신과 백성, 나라를 구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눈물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삶-역사 안에 개입하셔서, 그들의 믿음을 확인해주시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새 역사를 이루시는 분입니다.

 

[2018년 11월 11일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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