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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82년생 김지영 씨와 2500년 전 훌륭한 아내 씨(잠언 31,10-31)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20 조회수7,409 추천수0

[그때 그들과 오늘 우리] ‘82년생 김지영 씨’와  ‘2500년 전 훌륭한 아내 씨’


잠언 31,10-31

 

 

「82년생 김지영」에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김지영 씨의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김지영 씨의 어머니가 된 일을 후회한다. 그래서 김지영 씨는 자신이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 작지만 묵직하고 굳건한 돌덩이가 된 기분으로 슬퍼한다. 엄마와 달리 김지영 씨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해 아이를 낳고는, 결국 일을 포기하고 전업주부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에 충격을 받는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사는 ‘맘충’이라는 것이다. 그때, 김지영 씨는 이렇게 말한다.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 하나 키웠더니 벌레가 되었다.”

 

오늘날 사회가 바라보는 여자에 대한 시선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결혼이나 육아 대신에 제 일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여자는 이기적이거나 ‘페미니스트’이다. 둘째, 가사 노동을 전담하며 전업주부로 사는 여자는 남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전가하고 그 혜택을 누리며 사는 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이상적인 여성은 결혼이나 육아도 포기하지 않고 경제 활동 또한 활발하게 하여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되는 여자일까?

 

 

잠언 읽기

 

「잠언」은 성공적인 삶을 위한 실천적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종교적 색채를 견지하는 한편 인간 삶의 실제적 측면을 조명하고 이에 대한 가르침을 제시하고자 한다. 구약 성경 가운데 비교적 후기 작품인(BC 6-4세기경) 잠언의 주 독자층은 젊은이들, 곧 젊은 남자이다(1,8.10 참조). 때로 어머니가 언급되기도 하지만(1,8; 6,20 참조), 아버지가 일관성 있게 등장하는 것을 보면(1,1.8 참조; 1,8) 이 책이 아들에게 주는 아버지의 지침서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책의 결미인 31장에는 르무엘 임금이 어머니의 교훈을 경청하는 아들로 나오며 첫 부분과 균형을 이루려는 시도를 보여 주지만, 태후의 조언 다음에는 젊은 남자가 찾아야 할 가치 있는아내에 대한 묘사로 끝나며(31,11-31 참조), 이 가르침 또한 젊은 남자에게 향한다. 따라서 31,11-31이 태후의 교훈이라 하더라도, 이 부분 또한 남자가 찾아내야 할 여자의 모습, 당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자에 대한 묘사이다.

 

잠언 31,10-31은 ‘알파벳 시’로 모두 22구절로 이루어져 있고, 각 절의 첫 글자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자.

 

10 훌륭한 아내를 누가 얻으리오? 그 가치는 산호보다 높다.

11 남편은 그를 마음으로 신뢰하고 소득이 모자라지 않는다. 

12 그 아내는 한평생 남편에게 해 끼치는 일 없이 잘해 준다.

13 양모와 아마를 구해다가 제 손으로 즐거이 일하고

14 마치 상인의 배처럼 멀리서 양식을 마련해 온다.

15 아직 어두울 때 일어나 식구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고 여종들에게 분부를 내린다.

16 밭을 봐 두었다가 사들이고 자기가 번 돈으로 포도밭을 사서 가꾼다. 

[중략]

20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

[중략]

23 그 남편은 성문에서 지방 원로들과 함께 앉을 때 존경을 받는다.

[중략]

26 입을 열면 지혜이고 자상한 가르침이 그 입술에 배어 있다. 

27 집안일을 두루 보살피고 놀고먹는 일이 없다. 

28 아들들이 일어나 그를 기리고 남편도 그를 칭송한다. 

29 “훌륭한 일을 한 여인들이 많지만 당신은 그 모든 이보다 뛰어나오.”

30 우아함은 거짓이고 아름다움은 헛것이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송을 받는다. 

31 그 손이 거둔 결실을 그에게 들리고 그가 한 일을 성문에서 칭송하여라.

 

 

훌륭한 아내 

 

‘훌륭한 아내’라는 소제목 아래 소개하는 이 본문은 잠언이 찬미하는 지혜의 다양한 가치의 요약으로 보인다. 잠언 전체에 걸쳐 지혜와 훌륭한 아내는 둘 다 부를 의미하는 경제 용어로 묘사된다(8,10-11; 31,10 참조).

 

잠언에서 지혜 추구와 31장의 훌륭한 아내 사이의 유사한 이미지와 논리는이 아내가 지혜의 구현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31장의 훌륭한 아내는 다만 은유가 아니라, 잠언의 실제적 교훈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훌륭한 아내’(‘에셰트 하일’ 직역: ‘힘 있는 여자’, 또는 ‘힘센 여자’)는 잠언에서도 실제 아내를 가리킨다(12,4 참조).

 

여러 곳에서 간음에 대한 경고와 지혜로운 여자를 찾으라는 교훈을 볼 수 있기에, 이와 관련된 잠언의 내용은 지혜에 대한 묘사와 함께 젊은 남자에게 주는 혼인에 대한 실제적 조언이라 할 수 있다. 지혜의 가치를 경제 용어로 표현하는 데에는 실천적 배경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의 젊은 남자는 신부와 그 가족에게 신붓값을 내야 했기에, 남자와 그 가족은 신부에게 그 값을 낼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힘 있는 여자’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31장에 묘사된 아내의 모습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10절과 29절에 나오는 ‘에셰트 하일’이라는 단어는 이 시의 ‘인클루지오’(수미상관)를 형성하며 본문의 핵심어 구실을 한다. ‘힘 있는 여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 본문은 이스라엘의 영웅적 시가들 가운데 하나처럼 읽히며, 특히 판관 드보라를 연상시킨다(판관 5,7 참조).

 

여기에서 아내는 시 전체적으로 수동적인 가정주부가 아니라 강인함과 능동성이 강조되며, 마치 가족과 공동체 이익을 위해 싸우는 용사처럼 묘사된다(10-22절; 24-25절). 아내가 집안일을 주도하고, 남편은 공동체에서 존경받는 공적 활동에 참여한다(23절). 고대 근동 문학에서 여자는 주로 신체적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이 강조되지만, 잠언 31장의 여자는 지혜롭게 가르치는 사람이고(26절) 우아함이나 아름다움보다는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이다(30절).

 

고대 세계에서 여자의 신체적 특성이나 외모 대신에 노동력과 경제 활동을 칭송하고, 가정과 사회에 기여함을 가치 있게 평가한다는 점에서 잠언 31장의 끝부분은 무척 인상적이다. 인간 사회에서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가사 노동 또한 찬양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물음

 

이러한 물음들이 떠오른다. 잠언 31장에 묘사된 아내는 너무 이상적이지 않은가? 문학적 효과를 위해 과장하여 표현한 것은 아닐까? 이런 여자가 얼마나 있을까? 아니, 이런 여자가 되기 쉬운가? 그리고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거나 재산이 없는 가난한 여자는 여기에서 제외되는가?

 

잠언 31장의 아내를 우리 성경에서 ‘훌륭한 아내’라고 표현한 것처럼, 가사 노동과 경제 활동을 훌륭히 해내는 동시에 남편의 공적 활동을 지원하며 씩씩하게 자신의 역할을 하는 여자가 현대 사회가 바라는 여자는 아닐까! 오늘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여성의 모습이 잠언 31장에서 겹치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회의 시선과 자신의 삶 사이에서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는 ‘1982년생 김지영 씨’가 ‘2500년 전의 훌륭한 아내 씨’에 관한 이 본문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 강선남 헬레나 -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석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성서신학(신약학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교황 프란치스코: 새 시대의 응답자」, 「성경의 인물들」, 「교부들의 성경주해, 탈출기-신명기」 등의 역서를 냈다.

 

[경향잡지, 2020년 1월호, 강선남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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