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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모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02 조회수6,446 추천수0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모세 (1)

 

 

이스라엘 백성의 수장이며 조직가(탈출 18장),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중개자(20,18-21), 입법자(24,3.12)이며 사제(40,16), 무엇보다도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탈출하도록 이끈 지도자, 그러나 무덤이 없는 이, 구약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신명 34,10), 누군지 짐작하셨을 것입니다. 바로 모세가 오늘의 인물입니다.

 

모세의 생애는 여러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미디안 광야까지(탈출 1장-2장),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집트로 돌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기까지(탈출 3장-14장),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광야의 길 위에서(탈출 15장 - 신명기),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첫 단계에서의 모세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모세의 탄생(탈출 2,1-10) 이야기에 앞서 탈출기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에 대해 전합니다. ‘쓰디 쓴 삶’(1,14)으로 표현되는 강제노역(탈출 1,8-14)과 아기들을 살해하는 억압정책(1,15-22)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 위기 속에서 한 아기가 태어납니다. 그가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레위 집안 자손(2,1; 6,14-27)으로, 아버지는 아므람, 어머니는 요케벳이며 아론(6,20)과 미르얌(15,20)은 그의 형제 자매라고 소개됩니다. 그런데 모세가 태어날 때에 이집트의 임금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의 남자 아이는 태어나면 강에 던져 버리라.’(1,22)고 명령해서 그들이 더 이상 번성하지 못하게 하려 했습니다. 모세도 태어나서 석 달은 잘 숨겨 두었지만, 결국 왕골 상자에 담겨 강에 떠내려 보내집니다. 이 아이를 파라오의 딸이 발견합니다. 그리고 ‘물에서 건져 냈다.’ 해서 ‘모세’라고 이름 짓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인이지만, 히브리인의 아들이 아니라, 파라오의 손자로, 공주의 아들로 자라게 된 것입니다(2,1-10).

 

사실, 모세의 이름은 이중적인 그의 신분, 히브리인이며 동시에 이집트인이라는 신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마샤’는 ‘건져내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이는 발음에 있어 그의 이름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집트에서는 ‘아들’이라는 의미로 ‘모세’라는 말을 붙여 이름을 지었습니다. 투트모세, 카모세, 아흐모세 등 파라오의 이름들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바구니에 담아 강에 떠내려 보낸 아이가 자라서 해방자가 되어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아카드의 왕 사르곤(기원전 2333~2279)의 전설과 유사합니다. 모세를 고대 근동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의 한 사람과 같은 과정을 겪은 인물로 묘사함으로써 그를 그만큼의 자리까지 올려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르곤이나 다른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와 모세 이야기는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왕이나 대사제 등의 자손이 떠나갔다가 성장해서 출생의 비밀을 알고 돌아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식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모세는 히브리인, 곧 노예 가문의 사람이며, 이집트나 히브리인들의 임금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살이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탄생 이야기는 마태오 복음 2장의 예수님의 탄생을 연상시킵니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고, 지배자(왕)가 죽이려 합니다. 파라오가 산파들을 이용해 ‘비밀리에’ 남자 아이들을 죽이려 했다가 실패하자 ‘공개적으로’ 참혹한 방법을 택한 것처럼, 헤로데도 조용히 동방박사들을 회유해 예수님을 없애려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베들레헴 주변의 사내아이들을 살해합니다. 그러나 구원자로 온 아이는 모든 칼날을 피해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그가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주역이 됩니다.

 

모세 이야기는 어린 시절을 지나 곧바로 장성한 후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2,11-22). 모세는 자신의 이중신분을 자각하고 있었나봅니다.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동포들을 보러갔다가, 히브리인을 때리는 이집트인을 몰래 살해합니다. 다음날, 그는 히브리인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그들 사이에 개입하려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게 아무런 권한도 없다며 그를 거부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살인행위가 드러나고 말았음을 알고 미디안의 광야로 달아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의 행위가 파라오의 행위와 유사함을 봅니다. 그는 ‘비밀리에 그리고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려 합니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것은 다른 이의 목숨을 앗아가는 폭력이었고, 권위를 내세우는 또 다른 폭력이었습니다. 자신의 힘 - 완력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자가 되어 척박한 곳, 광야로 나가야 했습니다. 미디안 땅에서도 그는 ‘이집트인’(2,19)으로 불립니다. 그는 아직 파라오의 모습, 곧 힘과 폭력에 의지해서 자신을 지키려는 모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모습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 광야에서 정화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탈출기의 첫 장면의 배경을 이루는 억압과 압제의 상황, 죽음과 공포의 시간에 하느님은 부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 폭력의 때에도 번성했습니다. 모세는 아직 깨닫지 못했지만, 이미 하느님의 안배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민족의 구원자로 돌아올 것입니다. 하느님은 아니 계신 것 같은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당신의 계획과 약속을 이행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찾지 않아도 하느님은 이미 우리 가운데에 계십니다. [2018년 4월 29일 부활 제5주일(이민의 날)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도직)]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모세 (2)

 

 

모세는 이집트에서 달아나 미디안 땅에 자리 잡고 살아갑니다. 미디안의 사제 이트로의 딸 치포라를 아내로 맞아 게르솜이라는 아들을 얻고(탈출 2,21-22), 장인의 양 떼를 돌보는 일을 합니다(3,1). 그 기간이 얼마인 지는 직접 전해지지 않지만, 나중에 모세가 파라오의 앞에 섰을 때 여든 살(7,7)이었다고 하니, 참 긴 시간을 보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여든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과거의 영화와 오욕 모든 것을 잊고, 지난날의 모든 관계들에서 멀어진 삶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그를 찾아와 불러내십니다.

 

탈출 3,1-4,31은 모세가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이끌어내는 사명을 받는 장면을 전해줍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사건’이라고 부르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양들을 몰고 다니던 그를 돌려 세워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파라오를 찾아가라.’고 하십니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하려다 실패했던 과거(2,11-15)에서 벗어나 새로운 신분의 사람, 하느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아 이스라엘을 구하는 사자(使者)가 되어 이집트로 돌아갑니다.

 

그렇다고 모세가 넙죽 그 사명을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제가 무엇이라고’(3,11), ‘저는 말솜씨가 없습니다.’(4,10), ‘보내실만한 사람을 보내십시오.’(4,13) 모세는 자신의 자격 없음을,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강조하며 저항합니다. 사실, 모세는 말재간도 없고 성격도 강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에게 항의하는 이스라엘 조장들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5,21-22),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이들 앞에서는 ‘입이 떨어지지도 않습니다.’(6,13) 그다지 치밀하거나 조직적인 사람도 아니었나 봅니다(18,13-26). 형 아론과 누이 미르얌의 시기 앞에서 입을 다물고(민수 12,1-2), 백성들의 반란 앞에서는 쥐 죽은 듯이 엎드려 있을 뿐입니다(민수 14,1-5; 16,1-5). 지도자라면 화려한 언변과 냉철한 판단을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는 그런 것과는 멀어 보입니다.

 

그런데 민수 12,3은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겸손하였다.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 모세가 사명을 주시는 하느님께 저항하거나, 따지고 덤벼드는 이들 앞에서 침묵하고 몸을 낮춘 것은 모자라서가 아니라 겸손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모세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그는 매 맞는 동포를 보고 관여했다가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떨기나무가 불타는데도 타서 없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다가가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매 맞는 이’나 ‘불타는 떨기나무’는 고통 속에 있는 이들입니다. 모세는 그러한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깨닫지 못했지만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백성을 위해서도 좋은 지도자였습니다. 자신에게 대들 듯 항의하는 이들 앞에서는 침묵했지만, 하느님을 찾아가 이 고통을 보라고 외칩니다(탈출 6,22-23). 누이 미르얌이 그의 권위에 도전하다가 피부병에 걸리자 그는 하느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느님, 제발 미르얌을 고쳐주십시오.”(민수 12,13) 백성이 그를 돌로 쳐 죽이려고까지 했는데, 그는 백성을 위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합니다(민수 14,13-19). 백성이 송아지 상을 만들고 우상에 빠졌을 때도 그는 그들을 위해 하느님께 빌었습니다(탈출 32,1-14).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다른 이들,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기꺼이 하느님께 매달리고 청하고 부르짖는 이, 그는 진정 백성을 위한 지도자였습니다.

 

모세에 대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그의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탈출 34,29-35). 이 영광의 모습은 주님과의 만남과 대화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세는 주님과 친구처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고(탈출 33,11; 신명 34,10), 주님으로부터 ‘네가 내 눈에 들고, 나는 너를 네 이름까지도 잘 안다.’(탈출 33,17)는 말씀까지 들었습니다. 그는 시나이 산에 올라 주님의 모습을 직접 뵙기까지 했습니다(33,18-23; 34,5-9). 그렇다고 단순히 주님을 뵙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그가 영광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며, 다른 이들에게 그러한 삶을 살도록 이끌었습니다. 곧, ‘주님의 충실한 종’(민수 12,7)으로서 자신의 사명에 충실히 살아갔기 때문에 그러한 영광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여담으로, 중세의 성경 번역에서 그의 얼굴이 ‘빛났다.’를 ‘뿔이 돋았다.’고 잘못 옮겨서 미켈란젤로는 모세상(로마 성 베드로 사슬 성당 소재)을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돋아난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광야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백성에게 율법을 건네주었고, 그들이 우상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섬기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변화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느보 산에 올라 그곳에서 죽어 묻혔습니다(신명 32,48-52; 34,1-8). 그의 나이 120세였습니다. 여든의 나이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작된 그의 여정이 40년의 긴 시간을 지나 충만한 나이 백 이십에 이르러서야 멈추었습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34,10)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죽기 전에 이러한 말을 남깁니다. ‘주님께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다.’(신명 18,15.18) 이 말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후일에 사람들은 외칠 것입니다.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요한 6,14; 7,40; 마태 21,46; 루카 7,16; 사도 3,22) [2018년 5월 6일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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