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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신약 성경의 인물: 스테파노 순교자의 용서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23 조회수7,266 추천수0

[신약 성경의 인물] 스테파노 순교자의 용서와 바오로 사도의 회심

 

 

그리스도인 가운데 최초의 순교자이며, 열두 사도가 뽑은 일곱 부제 가운데 한 사람! ‘스테파노 순교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교회사에서 가장 먼저 순교의 영광을 얻은 스테파노는 어떤 면모를 지녔기에 초대 교회의 첫 일곱 부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발될 수 있었을까요? 성경이 전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스테파노 순교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식탁의 봉사자, 부제의 시초

 

성경에서는 스테파노 순교자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몇몇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성령의 힘을 받은 사도들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면서 초대 교회를 세워 나가던 과정을 기록한 복음서이지요.

 

사도행전의 저자는 스테파노 순교자를 매우 뛰어난 인물로 설명합니다. 유다인들의 거짓 증언으로 체포되어 최고 의회에 서게 된 스테파노는 그 자리에서 대사제를 비롯한 모든 이에게 구약을 예로 들어 설교할 정도로 구약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7,1-53 참조).

 

더불어 유려한 언변으로 논리적인 토론에 능한 인물입니다. 스테파노를 적대시하던 많은 유다인이 격렬한 논쟁을 벌이며 그를 논박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했을 정도이니까요.

 

또한 스테파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삶과 신앙에서도 남다른 모범을 보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지난날 유다인들은 이방인들과 식사는커녕 상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개종한 유다인들은 이방인들과 섞여 살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도 그런 유다인들과 한마음 한뜻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상적인 교회 공동체를 이루며 성장해 갑니다.

 

출신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던 이들이 함께 산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유다교 관습에서 이방인들과 식탁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로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초대 교회가 점차 성장할수록 그 외형도 커지자 차츰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사건이 터집니다. 그리스계 유다인 과부들이 날마다 식사 배급을 받을 때 지속해서 홀대받는 일이 발생한 것이지요. 모두가 같은 마음과 지향으로 언제나 이상적인 삶을 살 수는 없다 할지라도 이러한 공동체의 분열은 초대 교회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기에 이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6,2-4).

 

이 말에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고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일곱 사람을 선발하여 사도들 앞에 세웠습니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지요. 이것이 바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부제’(Diakonos)입니다.

 

스테파노,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또 유다교로 개종한 안티오키아 출신 니콜라오스까지 이 일곱명이 ‘식탁의 봉사자’라고도 불리는 ‘부제’의 시초가 됩니다. 부제들은 말씀을 선포하고 세례성사를 집전하며 교회의 공동 재산을 관리하는 일 등을 담당하게 됩니다.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닌 스테파노 성인과 자주 논쟁을 벌였지만, 그들은 스테파노와의 논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6,10)고 전합니다.

 

여러 논쟁에서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호소력 있게 설명하는 스테파노 순교자! 그의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그 당시 현장으로 돌아가 그 어떤 사도보다도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가지고 설파하는 그를 만나고 싶어집니다.

 

스테파노의 이러한 열정과 굳은 신앙이 바로 그리스도교 최초의 순교자라는 영예를 그에게 안겨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스테파노의 뛰어난 언변 앞에서 토론이나 논쟁으로는 굴복시킬 수 없었던 유다인들은 이에 앙심을 품고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거짓 증언을 하게 하지요. 결국 스테파노는 체포되어 최고 의회에 끌려가게 됩니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사실 저희는 그 나자렛 사람 예수가 이곳을 허물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이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6,13-14).

 

하느님을 모독한 죄는 유다교에서 가장 중한 죄이며, 이는 사형 선고까지도 가능한 사안이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스테파노는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바로 그 최고 의회에서 대사제들을 비롯한 유다인들에게 둘러싸여 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임에도 성경은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6,15)라고 알립니다.

 

 

이스라엘의 백성, 하느님의 백성

 

고발의 내용이 사실인지를 묻는 대사제의 질문에 스테파노는 자신을 변호하듯 그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합니다.

 

스테파노의 이 설교는 구세사 전체를 아우르는 깊은 통찰과 묵상이 담겨 있습니다(7,1-53 참조). 스테파노의 이 명연설을 꼭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논하며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모세를 거쳐 역사 안에서 드러난 백성과 하느님과의 관계, 구세사 안에 이루어진 당신의 손길과 이끄심을 스테파노의 관점으로 정리하고 요약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다시금 그 계약을 바라보게 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스테파노는 모세의 시기에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상기시키며,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이끄시는 하느님을 지금의 이스라엘 백성 또한 인식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지 못한다고 질책합니다.

 

자신을 변호해야 할 자리에서, 최고위층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질타하고 고발하는 것이지요. 줄곧 성령을 거역하며 예언자들을 박해했던 앞선 조상처럼 의로우신 분께서 오실 것을 예고한 이들을 도리어 죽였고, 마침내 우리에게 오신 그 의로우신 분마저 죽였다고 질책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며 자신들을 꾸짖는 스테파노의 말에 유다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반성하거나 성찰했을까요? 그들은 화가 치밀어 이를 갈기 시작합니다. 결국은 격분하여 스테파노에게 달려듭니다. 그를 성문 밖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즉결 심판을 하지요.

 

격앙된 사람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스테파노는 너무도 평온합니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그 순간에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7,59)하고 기도합니다.

 

순교를 눈앞에 두고 한 스테파노의 마지막 고백은 무척 인상 깊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치며 순교합니다. 분노에 차서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스테파노 순교자가 체험한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예수님께서 그에게 어떤 내적 힘을 주셨기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기도를 놓지 않으며 타인의 용서를 청할 수 있었을까요?

 

 

사울, 바오로 사도의 회심

 

바로 이때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훗날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사울, 곧 바오로 사도입니다.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유다교 신앙을 수호하려고 했으며, 이를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열성적으로 박해하던 사울.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뿐 아니라 다마스커스까지 가서라도 유다교에 혼란을 일으키는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 오겠다던 확신에 찬, 그리스도교 박해자 사울이 바로 스테파노의 순교 현장에서 이 일을 찬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자면 사울은 스테파노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용서를 청하는 직접적인 대상자가 됩니다. 

 

놀랍게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에 박해자 사울을 포함하셨습니다. 바로 스테파노의 순교를 통한 용서를 통해서 사울은 바오로 사도로 새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먼저 사랑받는 사람이 사랑할 수 있고, 용서받은 사람이 용서할 수 있기에 하느님의 용서를 청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독려하시며, 스테파노 순교자를 예로 드십니다.

 

“스테파노가 용서를 구한 이들 가운데 사울이라고 불리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이후 사울은 위대한 성인, 사람들의 사도인 바오로가 됩니다.

 

그는 스테파노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바오로가 하느님의 은총과 스테파노의 용서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2015년 12월 26일, 스테파노 축일 삼종기도와 일반 알현에서).

 

스테파노 순교자는 분명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그보다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자신의 삶 전체로 전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가 만나고 체험한, 우리에게 알리는 예수 그리스도! 스테파노 순교자가 실천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기억하며 우리도 사랑하고 용서하며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나날을 보내면 좋겠습니다.

 

* 한 해 동안 ‘신약 성경의 인물’을 집필해 주신 최광희 신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 최광희 마태오 - 서울대교구 신부. 가톨릭 청년성서모임을 담당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 대학원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하였다.

 

[경향잡지, 2018년 12월호, 최광희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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