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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요한의 첫째 서간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8,436 추천수0

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 요한의 첫째 서간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요한의 첫째, 둘째, 셋째 서간은 요한 복음, 요한 묵시록과 더불어 요한계 문헌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히 요한이라는 이름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 이 서간들이 요한 복음의 가르침을 반복한다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이 서간들을 살펴보면 요한 복음의 특징적 개념을 사용하면서도, 각 서간이 저술되어야 했던 목적에 따라 달리 방점을 찍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점을 통하여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들의 성장 과정 중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요한의 첫째 서간의 특징

 

요한의 첫째 서간은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여태까지 우리가 읽은 서간들은 저자의 이름과 수신인 그리고 인사말로 시작한다. 그런데 요한의 첫째 서간에는 그 모든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끝 인사마저도 없다. 평화나 축복을 빌어 주는 인사말이나 안부를 전해 달라는 부탁도 없이 “우상을 조심하십시오”라는 한마디 당부로 서간은 끝이 난다. 따라서 형식으로만 보자면 이 문서가 서간인지조차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간 곳곳에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라는 표현이 무수히 반복되며, 특정 현안에 관하여 공동체와 의사소통을 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1,4; 2,1.7.12-14.21.26; 5,13) 이 문서를 서간으로 간주할 수는 있다.

 

대개 서간의 인사말과 맺음말에 언급되는 저자, 대상, 지역 교회 이름 등을 통하여 서간의 저자, 저작 연대, 그리고 서간이 저술된 장소 등을 추론하게 된다. 그런데 요한의 첫째 서간은 그 모든 것이 생략되어 있으므로 이 서간의 역사적 배경을 추측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의 한계를 넘어서는 부분에 매달리기보다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서간의 내용을 통하여 이 문서가 저술된 목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 서간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처음부터 있어 온 생명의 말씀

 

요한의 첫째 서간은 인사말이 없는 대신 머리말로 시작한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1,1). 요한 복음을 읽어 본 독자라면 이 첫 구절을 보는 순간,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로 시작하는 요한 복음의 머리글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요한 복음에서 ‘한처음에 계셨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과 같이 이 서간의 ‘생명의 말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한 복음이나 요한의 첫째 서간 모두 머리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를 말하고 있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요한 복음은 한처음부터 계셨고, 말씀이시며 하느님이신 그분의 근원에 방점을 두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다. 그에 비하여 요한의 첫째 서간은 처음부터 있어 온 그분이 바로 우리가 듣고 보고 만져 본 그분임을 강조한다. 또한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영광’이라는 말이 41회나 사용된 데 비해, 요한의 첫째 서간에서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외견상 유사하게 시작된 두 문서의 머리글은 매우 다른 방향으로 마무리된다. 요한 복음에서는 한처음부터 계셨던 하느님의 말씀이 육화에서 바로 하느님의 곁, 영광의 자리로 상승한다. 반면 요한의 첫째 서간에서는 이 생명의 말씀이 우리와 친교를 나누는 것으로, 다시 말해 태초의 존재에서 육화로, 육화에서 지극히 감각적인 경로들을 통한 인간과의 친교로 향한다.

 

요한 복음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근원을 증언하는 데 주력했다면, 요한의 첫째 서간은 이미 희미해져버린 지상에서의 그분의 모습, 그래서 우리와는 동떨어진 존재처럼 여겨진 그분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다. 예수님의 승천으로 지상에서 그분을 실제로 보고 만져 볼 수는 없게 되었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분을 목격한 증인들도 점차 감소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주님의 진정한 정체성을 오도하는 내용도 있었을 것이다.

 

이 서간의 저자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영광 중에 계셨던 그리스도보다는, 우리와 함께 생활하셨고, 인간들이 직접 보고 듣고 만졌던 예수를 힘주어 증언하고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예수의 인간적인 측면을 부인하는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에 대처하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이 인도하는 그리스도 공동체들이 그릇된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는 이 서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서간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 육화의 목적이 우리 인간과 친교를 나누는 데 있다고 증언한다. 이로써 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과 처음으로 친교의 기쁨을 누린 순간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 서간이 기록되던 시기의 신자들에게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도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한처음’이 있을 것이다. 주님과의 그 처음을 우리는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알게 된 그 처음의 기쁨이, 복잡해진 세상살이 안에서 조금씩 매몰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 강은희 님은 미국 The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수학하였으며(성서학 박사),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와 동 대학교 신학원에서 성경 전반에 걸쳐 강의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8월호(통권 497호), 강은희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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