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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이사야서 해설: 주님인 나는 이 포도밭을 지키는 이(27,3)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6,923 추천수0

[이사야서 해설] “주님인 나는 이 포도밭을 지키는 이”(27,3)

 

 

열 살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녁놀이 유난히 붉었던 어느 날, 동네 뒷산이 온통 빨갛게 보였습니다. 왠지 무섭고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요한 묵시록의 표현들도 생각났습니다. 해가 흔들리고 달이 붉어진다고 했던가요? 함께 있던 친구 중 몇몇은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세상이 멸망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땅이 붉게 물들고 사람들은 모두 죽어 텅 비어 있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 제가 ‘묵시록’에 비추어 상상했던 지구의 종말이었습니다.

 

 

‘묵시록’이란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묵시록은 요한 묵시록입니다. 사실 ‘묵시록’은 특정한 종류의 글을 지칭하는 전문용어입니다. 묵시문학을 정의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은데, J. 콜린스의 정의에 따르면 묵시록은 ‘이야기로 된 틀’을 지닌 계시문학의 한 종류로, 다른 세계의 중개자를 통해 수령자인 인간에게 계시가 전달됩니다. 시간상으로는 종말의 구원을 묘사하고, 공간적으로는 초자연적 세계, 초월적 세계를 다룹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이야기로 된 틀이 있는 문학작품에서, 숨겨진 비밀을 알려 주듯 감추어진 어떤 내용을 인간에게 전해주는데, 그 사이에 천사나 설명해 주는 사람이 끼어 있다는 것이지요. 대개는 마지막 때의 일(종말)을 이야기하고, 천상 세계나 우주여행 같은 것이 자주 등장합니다.

 

 

‘소위 이사야의 묵시록’

 

24-27장을 ‘소위 이사야의 묵시록’이라고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소위’라는 단어를 빠뜨리면 의미가 전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소위 이사야의 묵시록’은 묵시록일까요? 아닙니다. 이사야가 썼을까요? 아닙니다. 묵시록도 아니고 이사야가 쓰지도 않았는데 남들이 이사야의 묵시록이라고 부르니까 정확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소위’라고 앞에다 붙인 것입니다.

 

묵시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위의 정의에 비추어 본다면, 일단 ‘이야기로 된 틀’이 없습니다. 요한 묵시록에는 요한이 파트모스 섬에 유배를 갔다가 어느 주일에 어떤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지요(묵시 1,9-10). 다니엘서에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빌론 궁중에 뽑혀 활동하게 되었다고 하지요(다니 1장). 이것이 설화적 틀입니다. 그런데 24-27장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또, 이사야가 본 환시를 설명해 주고 천상 세계의 신비를 설명해 주는 천사 같은 존재도 없습니다(다른 세계의 중개자). 즈카 1-7장의 환시에서는 천사가 환시의 의미를 풀이해 주지요. 이사야서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천상 세계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묵시록이라고 말하기에는 결격 사유가 많습니다.

 

‘이사야의’ 묵시록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사야서를 처음부터 읽고 계신 분들을 위해 편의상 이 부분을 지금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24-27장은 제2이사야(40-55장)보다도 늦은 시기에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사야서에, 그것도 이사야 예언서 제1부 중간에 들어와 있으니 읽는 사람들은 이사야가 썼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왜 이 부분을 ‘소위 이사야의 묵시록’이라고 하는 걸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묵시문학 작품들에 흔히 나타나는 것과 같은 표현들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묵시록이 무엇인지에 대한 콜린스의 정의가 아니라 제가 어렸을 때 요한 묵시록에서 받았던 인상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땅이 뒤흔들리고 갈라진다는 24-27장의 표현들은 여지없이 묵시문학으로 분류될 만한 것들입니다. 물론 제 어린 시절의 인상이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이사야서의 이 부분을 묵시록이라고 부르는 것도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소위’ 이사야의 묵시록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땅이 마구 부서진다”(24,19)

 

정확히는 묵시록이 아니지만, 이 부분(24-27장)에는 분명 13-23장의 민족들에 대한 심판 부분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기는 합니다. 13-23장을 읽을 때에는 심판이 어느 나라 또는 민족에 대한 심판인지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24-27장에서는 아시리아나 바빌론 같은 어떤 한 민족이 아니라 땅 전체가 뒤집힙니다.

 

“보라, 주님께서 땅을 파괴하고 황폐시키시며 그 표면을 뒤엎고 주민들을 흩으신다”(24,1). 

 

“혼돈의 도시”(24,10)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느 도시를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본래 저자는 특정한 도시를 지적하려 하지 않은 듯합니다.

 

특정 민족에 대한 심판 선언은 최초의 예언서인 아모스서를 비롯한(아모 1-2장) 여러 예언서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이지만, 온 땅에 대한 선고는 이보다 더 늦은 시기에 나타난 특징입니다. 이 점 때문에도 이 부분은 이사야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가 언젠가는 멸망하리라는 선고, 남 왕국 유다를 무너뜨린 바빌론 역시 다른 나라에 의해 무너지게 되리라는 선고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땅을 뒤흔드시어 온 세상에 최종적인 심판을 하시리라는 것, 말하자면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자체를 뒤엎는 심판, 이것이 이 부분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땅’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 인간이 사는 곳, 인간 세상 등등을 지칭한다고 하지요. 글쎄요, 땅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요한 묵시록에서는 “땅의 주민들”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합니다(묵시 3,10; 6,10; 8,13; 11,10 등). “땅의 주민들”은 땅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땅이 자기 집인 줄 알고 사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땅이 세상의 전부인 줄로 생각하고 살던 사람들에게 언젠가 그 땅이 무너지리라고 합니다(24,19). 이 세상의 무엇인가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지만, 언젠가 절대적인 그것 곧 ‘땅’이 꺼지고 마는 것입니다.

 

“땅이 마구 부서진다”(24,19)는 묵시문학적 경고는 우리에게, 이 세상의 어떤 대단한 세력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설마 땅이 꺼지랴?’ 생각하는 우리에게 땅마저도 꺼질 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묵시문학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임금이 되시어”(24,23)

 

땅이 꺼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땅이 꺼진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요? 땅도 꺼지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도 끝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말’은 또한 ‘완성’의 때이기도 합니다.

 

13-23장에서 민족들에 대한 심판의 끝이 이집트와 아시리아까지도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하느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었다면, 24-27장에서도 마지막 모습은 어렸을 때 제가 상상했던 지구 종말처럼 그저 황량한 붉은 벌판이 아니라 “만군의 주님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임금이 되시어”(24,23)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날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25,6)는 것이 24-27장이 그려 보이는 마지막 날의 모습입니다. 술과 음식이 넘치는 잔치는 가득한 풍요로움을, 부족함이 없는 완성을 상징하지요.

 

그날에는 주님의 포도밭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전과 다른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포도밭 노래(5,1-8)에서 하느님께서는 정의와 공정이 아닌 피 흘림과 울부짖음의 열매를 맺는 포도밭을 황폐하게 내버려 두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심판이 다 이루어지고 나면, ‘땅’까지 다 흔들리고 나면, 하느님께서 “주님인 나는 이 포도밭을 지키는 이”(27,3)라고 선언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평화를 이룰 때, 하느님은 그 포도밭에 시간마다 물을 주시며 아무도 그 포도밭을 해치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지키실 것입니다.

 

이사야서를 읽을 때도, ‘묵시록’을 읽을 때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심판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구원을 위한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등을 썼고, 《약함의 힘》,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6년 10월호(통권 487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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