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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이스라엘의 예언자, 오늘날의 예언자: 참된 사제의 길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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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24 조회수893 추천수0

[이스라엘의 예언자, 오늘날의 예언자] 참된 사제의 길을 향하여

 

 

망국(亡國), 빛이 사라지다

 

기원전 586년 바빌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파괴했다. 많은 백성이 집과 밭과 재산을 잃었다. 가족과 이별하거나 생명을 빼앗긴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백성의 내면은 근본적 물음으로 가득 찼다. ‘왜 하느님께서 이렇게 되게 하셨을까? 과연 누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우리는 이제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의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나라 잃은 백성의 첫째가는 신학적 주제는 ‘망국의 원인’이었다. 그리고 ‘일부 지도층의 타락과 우상 숭배’가 하느님의 노여움을 산 것이라고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망국의 비참함을 전하는 애가는 “예루살렘 예언자들의 죄와 사제들의 죄악 때문이라네. 의인들의 피를 그 안에 흘린 저들 때문이라네.”(4,13)라고 고백한다.

 

유배를 떠나는 백성들은 깨달았다. 떵떵거리던 주류 종교인들이 완전히 틀렸고, 비판적 저항 예언자들의 메시지가 참된 가르침이었다고 말이다.

 

주류 종교인들은 왕권과 결탁했고,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않았으며, 결국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났다. 백성들은 망국의 원인을 제공했던 종교인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구약 성경은 나라가 망한 이후 사제들의 이름이나 활동을 거의 전하지 않는다. 민심은 천심이다. 하느님의 마음을 거스른 그들은 백성들의 마음에서도 사라졌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사제를 부활시킬 놀라운 계획을 품고 계셨다. 고대 근동 세계에서 유일하고 독특하신 방식으로 사제직을 부활시키신 것이다.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은 오늘 살펴볼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의 사제직과 관련된 신학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사제 후손의 기억

 

에제키엘은 예루살렘의 사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 유배를 가서, 활동은 유배 중에 시작한 것 같다. 그렇다면 그는 유배 전에 활약했던 제1이사야와 예레미야 예언자의 다음 세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부즈의 아들 에제키엘 사제”(1,3)는 사제들의 전승에 밝다. 비록 예루살렘의 성전은 파괴되었고 자신은 바빌론 땅에 살고 있지만, 사제로서의 정체성을 올곧게 지키면서 유배 중에 예언 활동을 지속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를 ‘사제-예언자’로 칭하기도 한다.

 

하느님은 에제키엘에게 “비록 가시가 너를 둘러싸고, 네가 전갈 떼 가운데에서 산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보고 떨지도 마라.”(2,6)고 말씀하셨다.

 

가시와 전갈 떼에 둘러싸인 기억은 에제키엘의 선조들이 놓인 상황일 가능성이 크다. 그의 선조들은 주류 종교인들을 비판했고, 그 결과 주류 사제단에서 소외되었을 것이다.

 

에제키엘이 주류 사제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매섭다. “그 사제들은 나의 율법을 짓밟고 나의 거룩한 물건들을 더럽혔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않고,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의 차이를 알려 주지 않았으며, 내 안식일에서는 아예 눈을 돌려 버렸다. 나는 이렇게 그들 사이에서 모독을 당하였다”(22,26).

 

 

상징 행위들

 

에제키엘이 비유나 상징 행위를 즐겨 사용했다는 점도 비판적 예언자들과 서로 통하는 점이다. 그는 쉽고 일상적인 비유와 상징 행위를 통해 특히 예루살렘 함락과 관련된 메시지를 설파했다.

 

벽돌 하나에 예루살렘이라 새기고 포위 공격을 상징하는 행위(4,1-3 참조), 한쪽 옆구리를 390일이나 대고 누운 다음 밧줄로 묶는 행위(4,4-8 참조), 악식(惡食)을 먹고 버티는 행위(4,9-11), 인분으로 빵을 굽는 행위(4,12-15), 머리카락을 깎는 행위(5,1-4 참조), 유배 짐을 싸는 행위(12,1-16 참조), 걱정의 빵을 먹는 행위(12,17-20 참조), 바빌론 임금의 칼의 비유(21,23-32 참조), 아내의 죽음(24,15-27 참조), 그리고 구원된 통일 이스라엘의 미래(37,15-28 참조) 등을 보면 그가 예루살렘 함락을 얼마나 안타까워하는지, 미래에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실 회복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가 잘 드러난다.

 

그리고 그런 하느님의 가르침과 자신의 깨달음을 백성들에게 가장 쉽고 직관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한 한 사제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성전 없이 백성과 함께

 

생각해 보면 에제키엘 사제가 놓인 상황은 역설적이다. 고대 근동의 사제들은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의 사제도 마찬가지다. 성전에서 번제를 드리고 제의에 참여하고 기타 성전 관련 일을 도맡은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의 사제직의 기원은 솔로몬의 성전 건립 이전임이 확실하지만, 그래도 사제직이 정립된 것은 성전의 건립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에제키엘 사제는 ‘성전 없이 백성과 함께’ 활동했다. 오직 하느님만이 그의 성전이 되어 주셨다(11,16 참조). 그는 임금도 군대도 성전도 모두 무너진 상황에서 망국의 백성을 추스르고 보살폈다. 에제키엘 예언서를 보면 유배 중의 평신도 지도자들인 ‘원로들’이 에제키엘 사제를 찾아가서 그의 가르침을 들었다는 구절이 자주 나온다(8,1; 14,1; 20,1 등).

 

궁핍하고 힘든 처지의 백성들이 참된 사제를 지켜 주며 힘든 상황을 견디는 모습은 박해 시대 한국 교회 신앙 선조들의 모습과도 겹치는 듯하여 마음이 오래 머물게 된다. 또한 참된 사제를 지지하고 지켜 주는 평신도의 소명은 무엇일지를 성찰하게 만든다.

 

이렇게 그가 놓인 조건이 그의 독특함을 잘 드러낸다. 유배 이전의 일부 주류 사제들과 예언자들은 가난한 백성을 돌보지 않고 중앙 성전의 안락한 삶을 누렸다. 그 결과 그들은 우상 숭배에 빠져 타락했다.

 

하지만 에제키엘 사제는 성전이 무너진 상황에서 유배지의 가난한 백성과 함께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사제직을 부활시키는 주역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사제직을 부활시킨 역사는 고대 근동에서 이스라엘이 유일하다. 이 점에서 이스라엘의 사제직을 향한 하느님의 큰 사랑과 유일하고 원대한 계획을 성찰할 수 있다.

 

 

새로운 헌법의 환시

 

에제키엘 예언서는 독특한 환시로 유명하다. ‘커룹의 수레’로 주님의 영광을 묘사한 환시들(1,4-28; 10; 11,22-23 참조)이나 마른 뼈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부활 환시’(37,1-14 참조)도 중요하지만, 무려 9장에 걸쳐 묘사된 ‘새 성전’의 환시야말로(40-48장) 유배 이후 이스라엘 종교와 신학의 틀을 잡는 에제키엘의 신학을 잘 드러낸다.

 

독일의 저명한 구약학자 에리히 쳉어 신부는 이 새 성전의 환시를 새 이스라엘의 ‘체제 설계’(Verfassungsentwurf, 이종한 역)라고 표현했는데, 이 낱말은 ‘헌법 초안’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에제키엘은 다시 세워질 미래의 이스라엘이 지녀야 할 헌법의 초안을 설계한 사제였던 것이다.

 

에제키엘의 설계도는 인류 역사 최초의 정교 분리적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배에서 돌아가 새로 지을 새 성전의 본질은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거처로서 “내 어좌의 자리, 내 발바닥이 놓이는 자리”인데, “그들(=백성)이나 그 임금들이 불륜을 저질러, 또 임금들이 죽었을 때 그 주검으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부정하게 만들지 않을”(43,7) 곳이다. 새 성전은 무엇보다 임금의 손길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말이다.

 

고대 근동의 임금들은 성전에서 일하는 사제들에게 녹봉으로 소유지를 주었는데, 새 성전에서는 그런 것을 금지한다. 사제들은 임금에게서 어떤 것도 바라면 안 되고, 오직 백성이 바치는 것으로만 살아야 한다(44,28-30 참조). 사제에게 높은 급료를 주어 결국 사제단을 좌지우지 하려는 왕권의 속성을 간파하고, 이를 미연에 차단하려는 것이다. 유배 전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새 성전에 속하는 땅과 사제 · 레위 · 도성 · 임금의 땅을 모두 구획지어 나누는 것도(48,8-22 참조) 마찬가지 이유다. 수도와 중앙 성전을 분리하려는 이런 생각은 고대 근동 종교들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성전과 왕권의 거리를 확립하는 것이 새 성전 환시의 가장 중요한 태도를 이룬다.

 

나아가 새 성전은 아예 기본적으로 세속 자체와 거리를 두어야 했다. 새 성전을 둘러싼 거대한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리하기 위한 담이었다”(42,20). 백성은 물론이고 제후도 새 성전의 마당을 지나가기만 할 뿐, 새 성전을 휘젓고 다닐 수 없다(46,8-10 참조).

 

새 성전이 건설될 때,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다시 한번 땅을 완전히 재분배해야 한다. 그는 이렇게 하느님께서 나눈 땅을 아예 사고팔지도 못하게 하였다(48,14 참조). 이는 땅의 독점으로 말미암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으로서 세속의 죄가 결국 성전의 우상 숭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성찰에 따른 것이다. 그는 새 나라의 새 성전은 지난날의 잘못으로부터 완전히 단절하고 완전히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하느님 다스림의 본질을 드러내다

 

그의 새 성전은 왕권과 금권으로부터, 세속의 죄로부터 분리되어 철저히 하느님의 다스림을 실현하는 곳이었다. 에제키엘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느님의 다스림이 세속의 다스림과 전혀 다른 것임을 성찰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왕국은 세속의 왕국과는 다른 것이다. 인간적 차원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다스림이다. 이런 에제키엘 사제의 환시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님의 그림자가 선명히 드러난다.

 

성전에서 소외된 사제의 후손은 유배 중의 백성과 함께 참된 하느님의 다스림을 신비롭게 체험했고, 그분의 도구가 되어 결국 사제직을 부활시켰다. 유배가 끝나고 성전을 새로 지었을 때, 이스라엘 사제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그들이 문서를 모아 편집한 사제계 편집본(P)이 현재 구약 성경의 틀을 이루었다.

 

유배 이후의 사제들은 유배 이전에 중앙 성전에서 활약했던 사제들에 비판적이었다. 그들은 에제키엘을 통한 전승만을 사제직의 정통으로 인정하였다. 평신도들과 함께 오직 하느님만 바라보면서 고통과 가난을 견딘 에제키엘 사제의 후손으로서 스스로의 신원을 정립한 것이다.

 

이후 에제키엘은 지혜 문학과 묵시 문학과 유다교 신비주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절망에서 희망을 설계한 사제의 원대한 믿음과 구상으로 하느님 백성의 역사는 새롭게 출발했다.

 

*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고대 근동과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평신도 신학자이다. 주교회의 복음선교위원회 위원이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 위원이다. 저서로 「구약 성경과 신들」, 「신명기 주해」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8년 10월호,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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