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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창세기 인물 열전: 라헬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이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12,831 추천수0

[창세기 인물 열전] 라헬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이후

 

 

성경에서 유명한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라헬과 야곱을 빼놓을 수 없다. 라헬은 라반의 둘째 딸이자 레아의 동생이다. 라반은 레베카의 오빠이므로, 야곱에게 라헬은 사촌이다. 야곱은 단 한 번 만남으로 라헬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를 아내로 얻으려고 14년을 헌신했다. 비록 장인의 농간으로 레아를 먼저 아내로 맞지만, 끝까지 라헬만 사랑하였다. 남편의 마음을 독차지한 라헬이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라헬의 불임

 

라헬의 이름 뜻은 ‘암양’이다. 야곱을 만나던 날도, 라헬은 이름 뜻에 어울리게 양을 치고 있었다(29,6). 라헬은 오랫동안 아이가 없어 낙심하고 먼저 아이를 낳은 언니를 질투했는데, 당시 여자로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건 큰 수치였다. 라헬은 몸종의 몸을 빌려서라도 아이를 보고자 하여, 단과 납탈리라는 아들을 먼저 얻는다(30,1-8).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합환채를 가져왔을 때, 라헬이 그걸 얻으려고 언니와 협상을 한 것(30,14-16)도 불임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합환채는 당시 불임 부부들이 수태에 효과가 있다고 믿어 최음제처럼 썼던 식물이다. 그렇지만 라헬은 합환채를 손에 넣고도 아이를 갖지 못했고, 오히려 아들을 넷이나 둔 레아가 이사카르를 낳았다. 레아는 그 뒤에도 즈불룬과 디나를 출산한다(30,16-21). 라헬은 그로부터 삼 년 뒤 하느님이 태를 열어 주신 뒤에야 아이를 얻는다(30,22-24). 그제야 하느님이 자기 수치를 ‘없애 주셨다’고 기뻐하고, 아들 하나를 ‘더 주시기’를 기원하며 이름을 ‘요셉’이라 했다. 요셉의 어근은 ‘아사프’ 또는 ‘야사프’인데, 전자는 ‘없애다’, 후자는 ‘더하다’라는 뜻이다. 소원대로 라헬은 가나안에서 마지막으로 벤야민을 낳는다(35,16-18).

 

 

가족 수호신 도난 사건

 

남편과 함께 가나안으로 떠나던 날, 라헬은 집안 수호신을 훔쳤다(31,19). 그걸 왜 훔쳤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메소포타미아 누지(Nuzi)에서 발견된 옛 점토판에 따르면 집안 수호신을 소유하는 건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 듯하다. 어쩌면 라헬은 야곱도 라반의 법적 아들로서, 재산의 한몫을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보아 가져갔는지 모른다. 수호신을 소유하고 있으면, 야곱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라반의 시도를 저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지도. 그렇지만 라반이 야곱을 따라잡았을 때의 상황을 보면(31,22-54), 수호신을 써서 재산권을 주장하려는 시도가 나오지 않으므로 그것이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유다 전승은 아버지가 우상 숭배를 하지 못하도록 라헬이 일부러 훔쳤다고 풀이했다(창세기 라바 74,5). 가장 합당해 보이는 설명은, 아버지의 집에서 도망가는 남편의 앞날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훔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라헬의 소행을 알지 못했으므로, 장인이 수호신을 찾으러 오자 ‘도둑질한 자는 죽어 마땅하다’며 맹세까지 한다(31,32). 야곱의 맹세 탓이었는지 라헬은 벤야민을 낳다 죽음을 맞는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높여진 라헬

 

라헬이 죽은 곳은 ‘베텔’에서 ‘에프랏’으로 이어진 길목이었는데, 에프랏은 베들레헴의 옛 이름이다(48,7 참조). 야곱은 라헬을 가족 무덤이 있는 막펠라 동굴(헤브론)에 묻지 않고 ‘베들레헴 가는 길 가’에 묻었다(35,19-20). 그토록 사랑한 라헬을 왜 따로 묻었는지 알 수 없지만, 베들레헴은 장차 메시아가 나올 곳이었기에(미카 5,1 참조) 라헬이 그 입구에 묻힌 건 가히 상징적이다. 라헬의 도움이었을까? 모압 출신 이방인 룻이 베들레헴에서 보아즈와 혼인하게 된다. 베들레헴 주민들은 룻에게 이스라엘 집안을 세운 라헬처럼 되라며 축복하는데(룻 4,11), 실제로 룻은 다윗 임금과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 이 축복에 라헬이 민족의 어머니로 언급된 이유는, 그가 낳은 요셉 덕에 야곱 집안이 가나안 흉년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는 데에 있다.

 

이후에도 라헬은 계속 민족의 어머니로 높여진다. 예레 31,15은 라헬을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후손들(기원전 6세기)을 보며 통곡하는 어머니로 그렸다. 라헬이 북 왕국을 세운 에프라임(요셉의 아들) 지파의 조상인데다(1열왕 11,26-40 참조), 남 왕국의 일부를 형성한 벤야민(1열왕 12,20-21 참조)의 어머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태 2,18은 헤로데가 유다의 임금 탄생 소식에 어린 남아들을 살해하자, 예레 31,15을 인용하며 라헬이 통곡한다고 한탄했다. 마태 2,18이 예레미야서를 인용한 것도 상황의 유사성을 고려해 볼 때 적절하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라는 외세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그 앞잡이인 헤로데에 의해 아들들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생 남편의 사랑을 받았으나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은 라헬. 그렇지만 그는 어렵게 얻은 아들들 덕분에 영원히 민족의 어머니로 추앙받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 김명숙 님은 예루살렘의 히브리대에서 구약학 석사 ·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루살렘의 홀리랜드대와 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과 수도자 신학원에서 구약학 강의를 하였고,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이다.

 

[성서와 함께, 2017년 9월호(통권 498호),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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