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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판관 기드온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03 조회수8,978 추천수1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판관 기드온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이 믿는 우상의 유혹에 맞닥뜨렸습니다. 비와 바람의 신 바알과 그의 아내라고 일컬어지는 다산의 신 아세라는 유목 생활에서 점차로 정착 농경 생활로 넘어가는 이들에게 너무나 큰 유혹이었습니다. 바알에게 제물을 바치면 농사에 필요한 비를 얻을 수 있고, 아세라에게 잘 하면 자손도 많이 낳고 가축들도 늘어날 것이라는 말은 척박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희소식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을 괴롭히던 주변 민족들이 섬기는 그 신이 자신들이 믿는 하느님보다 더 강한 신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사람들은 어느 민족이나 국가가 흥성하면, 그들이 믿는 신이 자신들의 신보다 강하기 때문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이민족의 핍박과 우상숭배의 유혹, 외적 어려움과 내적 흔들림, 이 두 문제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충실하라고 요구하는 저 시나이의 계약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들이 잘 드러나는 이야기들이 판관기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는 미디안족의 핍박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대한 불충의 결과라는 말로써 시작합니다(판관 6,1-10). 그리고 기드온이 등장합니다. 포도확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던 그에게 - 곧 밀을 빼앗길까 두려워 커다란 통 안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양식을 구하고 있던 - 천사가 나타납니다.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판관 6,12) 기드온을 부르시는 이야기 안에는 아브라함, 야곱, 모세, 엘리야 등의 인물들과 얽힌 장면들이 복합적으로 들어있습니다.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이를 돌려세워 주님의 도구로 부른다는 점에서는 모세와, 주님이 나타나신 곳에 제단을 쌓는다는 데서는 아브라함이나 야곱과, 불이 나와 제물을 삼켜버린다는 것은 엘리야의 일화와 연결됩니다. 뒤이은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목상을 잘라버린 이야기는 요시야 임금의 개혁(2열왕 23장) 때의 일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리고 ‘바알은 그에게 맞서 자신을 옹호하라.’는 의미의 ‘여루빠알’이라는 새 이름을 얻는 장면은 야뽁 나루터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은 야곱의 이야기와도 연계됩니다. 미디안족과 아말렉족의 위협 앞에서 소명을 받은 그가 이적을 통해 확신을 청하는 장면(6,36-40)은 모세 소명 이야기(탈출 4장)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고, 두 번째로 양털을 가져다 놓기 전에 하는 말, ‘제가 한 번 더 아뢴다고 노여워하지 마십시오.’는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빌 때, 마지막으로 청하는 말(창세 18,32)과 같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인물들과의 연계성이 기드온 이야기의 독창성을 침해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그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이스라엘에게 전해져 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한 씨족 출신이며, 집안에서 가장 약한 자’(판관 6,15)를 하느님께서 부르셔서 저 유명한 선조들과 같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쓰셨다는 점을 더욱 두드러지게 합니다.

 

약한 이, 작은 이를 통해 큰 일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역사는 그 뒤에 이어지는 미디안족과의 전투 이야기에서도 이어집니다. 자신의 고향 마을 아비에제르 사람들, 므나쎄와 즈불룬, 납탈리 지파의 사람들까지 삼만 이천의 군사가 모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 수를 300이 될 때까지 줄이라고 하십니다. 그들 앞에 모인 적군은 십삼만 오천입니다(8,10 참조). 300 대 135,000 !!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영화 300에 등장하는 이들처럼 무장한 거친 전사들도 아닙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양식과 나팔뿐’(7,8)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이들은 적진을 향해 다가갑니다. 횃불과 나팔만이 그들의 무기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큰 목소리로 외쳤던 것입니다. “주님과 기드온을 위한 칼이다.”(7,21) 그들이 쳐든 것은 칼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저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셨다’(‘주님은 이미 우리의 승리를 결정하셨다.’는 표현)는 믿음과 ‘주님의 영이 기드온과 함께 하신다.’(6,34)는 확신이 그들의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그들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칼을 든 적군 12만(8,10)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그들의 임금 제바와 찰문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비웃고 협조하지 않던 수콧과 프누엘 사람들을 징벌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시 말하지만, 그들의 전투력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승리를 거둔 기드온에게 유혹이 다가옵니다. ‘당신과 당신 자손이 우리를 다스려주십시오.’(8,22) 임금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조용히 물러납니다. ‘여러분을 다스리실 분은 주님이십니다.’(8,23) 그는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가져오신 분이 주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제의 제의인 에폿을 만들게 합니다(8,24-27). 주님을 섬기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깨우쳐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내놓은 에폿을 새로운 우상으로 섬기게 됩니다. 또한 그의 아들 아비멜렉도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일흔 명의 형제들을 죽이고 스스로 임금이 되었습니다(판관 9장).

 

기드온 이야기는 우리 신앙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도 보여주고, 하느님께서 우리 삶 안에서 이루시는 일들 –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주님의 온전한 은총으로 우리 힘의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역사도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끊임없이 주님을 찾지 않으면, 다가올 유혹들이 얼마나 강력한지도 깨우쳐줍니다.

 

[2018년 7월 1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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