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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서 주간 특집: 성경 필사의 역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26 조회수7,297 추천수0

[성서 주간 특집] 성경 필사의 역사


온 몸으로 성경을 읽다

 

 

성경에 관한 신심행위 중 가장 대표적인 활동을 꼽으라면 성경 필사를 꼽을 수 있다. 성경 필사는 눈이나 소리로만 성경을 읽는 것과 달리 몸의 수고를 감수하고도 성경을 읽는 그야말로 ‘온 몸으로 성경을 읽는’ 신심행위다. 오늘날에는 성경 필사는 신심행위 중 하나일 뿐이지만, 성경 필사는 성경의 긴 역사와 함께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 13세기 스페인 ‘토라’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불타버린 토라의 일부분. CNS 자료사진.

 

 

성경의 기원, 성경 필사

 

성경은 부모가 자식에게, 선대가 후대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하던 내용을 글로 적어 내려가면서 기록되기 시작했다. 성경은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전해진 기록물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성경 필사의 힘이었다. 그 시기는 대략 기원전 1000년경이라고 알려졌는데, 인쇄기술이 없던 당시에 성경을 기록하는 방식은 당연히 ‘필사’였다. 사람들은 누군가 기록한 인간의 역사에 함께한 하느님 이야기들을 옮겨 적었고, 이를 모아 책으로 엮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성경이 됐다.

 

하지만 기원전 1000년경에는 성경을 기록할 종이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초기의 성경 필사는 자연물에 이뤄졌다. 그 대표적인 기록매체가 파피루스다. 파피루스는 식물의 줄기로 만든 자연물인 만큼 내구성도 약하고, 습도에도 취약했지만, 가볍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어 글의 분량이 많은 성경을 기록하는데 적합했다. 이 파피루스의 중심 무역지로 고대 페니키아의 항구 ‘비블로스’가 유명했는데, 이 지명이 그리스어의 ‘책’이라는 말로, 영어의 ‘바이블(Bible)’이라는 말로 이어졌다.

 

파피루스와 함께 성경 필사자들의 사랑을 받은 기록매체는 소·양·새끼염소의 가죽을 표백한 후 얇게 가공한 양피지다. 유다인들은 바빌로니아 유배 후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우고 양과 염소를 잡아 하느님께 제사를 바쳤는데, 이때 바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성경을 필사하는데 사용했다.

 

 

수도원의 필사실

 

성경 필사를 해 본 이라면 알겠지만, 성경을 필사하다보면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단어나 부분을 빠뜨리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잘못 쓰기도 한다. 옛 성경 필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당시에는 성경을 필사하는 일은 굉장히 느리게 진행했다. 일반적으로 파피루스 한 장에 140단어를 담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한 장을 필사하는데 2시간가량 걸렸다고 한다.

 

수도자들은 성경 필사를 위해 수도원에 ‘필사실(Scriptorium)’을 만들었다. 특히 필사는 훈련 받은 수도자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활동이었다. 덕분에 수도원은 성경을 양산하고 보관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수도자들의 활동은 기원전부터 이어왔는데, 사해 연안동굴에서 생활하던 에세네파 쿰란(Qumran) 수도자들이 잘 알려졌다. 기원전 2세기부터 활동하던 쿰란의 수도자들은 성경 필사실을 갖추고 성경 연구와 성경 필사에 매진했다. 그러나 로마군이 이스라엘로 진격하자 모든 필사본들을 동굴에 숨기고 흩어졌다. 이 성경 필사본이 1947년 우연히 발견됐는데, 이 필사본의 발견으로 구약성경의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

 

중세교회의 수도회 역시 성경 필사를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다. 그래서 베자 캠브리지 사본, 클레르몽 사본, 시나이 사본, 코리데티 사본 등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오랜 성경사본 중 대부분이 수도회가 보관해오거나 수도원에서 발견된 필사성경들이다.

 

15세기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성경을 인쇄한 이래, 인쇄된 성경이 빠르게 보급됐지만, 성경 필사는 여전히 중요한 일로 여겨졌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정성스럽게 성경을 필사하면서, 성경 필사가 단순히 성경을 양산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기도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슈폰하임 수도원 원장이었던 요하네스 트리테미우스(1462~1516)는 「필사생의 찬미(De laude scriptorum manualium)」라는 책에서 성경 필사를 통해 “소중한 시간이 가치있게 쓰이고, 성경에 관한 이해가 높아지며, 믿음의 불꽃이 밝게 타오르고, 내세에 큰 보상을 받게 된다”고 성경 필사의 유익함을 전한 바 있다.

 

세비야의 이시도루스가 쓴 「에티몰로기에」에 실린 그림의 일부.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성경 필사로 뿌리내린 한국교회

 

우리나라의 신앙선조들은 누구보다도 성경 필사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한글 성경 필사는 초기 한국교회 선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활동이었다.

 

물론 신앙선조들에게는 완전히 번역된 성경도 없었고, 모든 성경을 필사할 만큼의 여력도 없었다. 그러나 더 많은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복자 최창현(요한)은 전례에 따른 성경과 묵상, 해설이 담긴 「성경직해광익」과 성경의 일부가 인용된 여러 교회서적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또 성 민극가(스테파노), 복자 정광수(바르나바)·윤운혜(루치아)·김사집(프란치스코) 등 수많은 신앙선조들이 이를 필사해 스스로 익히고 또 보급했다.

 

1864년 성 베르뇌(시메온) 주교가 목판 인쇄소를 만들기 전까지 신앙선조들은 필사에 필사를 거듭해 한글로 성경의 말씀을 전했고, 이를 통해 빠르게 신자가 늘어났다. 이미 1801년 신유박해 당시에도 박해자들이 압수한 책 목록에 한글로 필사한 「성경직해광익」이 포함돼있었다고 한다.

 

 

다양한 성경 필사

 

오랜 역사 속에 신앙인들과 함께 해온 성경 필사, 오늘날에도 성경 필사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성경 필사에 동참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생활성서사가 보급하고 있는 「은총 성경 쓰기」는 성경과 공책을 한 권에 담아 성경 필사를 위해 성경을 찾아보는 수고를 덜어준다. 또 홀리이데아출판사가 간행한 「성가정 필서성경」은 연한 글씨로 인쇄된 성경 본문 위에 따라 쓰듯 바로 필사할 수 있어,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쉽게 성경 필사를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나 모바일을 사용해 성경을 필사하는 것도 성경 필사의 한 방법이다. 특히 온라인으로 함께 성경을 필사하면 서로 독려가 되기도 한다. 2006년부터 온라인 성경필사 서비스를 제공해온 서울대교구 굿뉴스(maria.catholic.or.kr)가 대표적이다.

 

[가톨릭신문, 2019년 11월 24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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