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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영적 해석과 문자적 해석의 균형 잡기 - 오리게네스의 다양한 주해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494 추천수0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영적 해석과 문자적 해석의 균형 잡기


오리게네스의 다양한 주해서

 

 

지난 호에서 다룬 <원리론>에서 보았듯이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년)는 영적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성경에 대한 정확한 문헌적 탐구를 경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전력을 다해 그리스 철학을 연구하고 히브리어를 배웠다. 성경 해석이 역사적·문자적 의미를 찾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먼저 성경 본문을 문헌학적·비평적으로 탐구했다. 사실 그는 고대 교회에서 어느 누구보다 역사-문헌 비평적 감각으로 충만한 주석가였다. 무엇보다 정확한 해석이란 성경 본문의 문자와 영을 연결하는 것이며, 문자적 해석은 일부 경우에만 결점이 있다(<원리론> 4.2.6; 4.3.4 참조)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리게네스는 230년경 구약성경에 대한 최초의 본문비평이라고 할 수 있는 <헥사플라>(Hexapla, 육중역본)를 편집하는 놀라운 작업을 이루어 냈다. 그는 여섯(hexa) 개의 사본, 즉 히브리어 원본과 히브리어 원본의 발음에 대한 그리스어 표기, 그리고 성령의 영감靈感을 받아 이루어졌다고 인정되던 그리스어 번역 ‘셉투아진타(칠십인역)’ 외에도 아퀼라 · 심마쿠스 · 테오도시우스의 번역본을 함께 수록했다.

 

이러한 문헌 연구는 그에 의해 영지주의에서 벗어난 암브로시우스라는 부자가 일곱 명 이상의 속기사를 제공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정도로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오리게네스는 성령의 영감을 받은 성경에 오류나 모순된 내용이 있을 수 없으며, 기껏해야 본문을 변질시킨 인간의 잘못이 문제라고 믿었기에 문헌을 정교하게 비판하여 인간의 오류를 수정하려고 노력했다. 더욱이 히브리 성경만을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한 라삐들과 논쟁해 가면서 문헌 연구를 하였기에 본문 해석의 기반이 한층 확고하게 마련되었다.

 

 

영적인 사람만 이해하는 ‘영적 의미’

 

오리게네스에게 문자적 의미는 독자들이 이해의 낮은 차원에서 더 높은 차원으로 갈 수 있게 한 교육의 출발점이었다. 성경 본문의 문자는 마치 그리스도가 취하신 인간 육체처럼 신적 로고스를 둘러싼 외피로 기능한다. 따라서 <헥사플라>와 같은 텍스트를 완성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오리게네스는 당시의 모든 연구 방법을 성경 해석에 적용하였다. 정확한 연구 방법은 당대의 영지주의자들이 영적 의미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저지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었다.

 

지난 호에서 다룬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해석에서 잘 드러나듯이, 문자적 의미는 중요하지만 성경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영적 의미를 발견하는 깊은 이해를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영적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것이 문자적 표현으로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리게네스는 모든 사람이 성경의 깊은 영적 의미를 파악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성령이 성경의 영적 의미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진리의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하지 못하는 이들이 진리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모든 율법은 영적이지만, 율법이 영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모든 이가 아는 것이 아니고, 지혜와 지식과 말씀 안에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이들만 알고 있을 따름이다”(<원리론> 1, 서론).

 

따라서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까닭에 오리게네스는 예언서나 복음서를 읽을 때 자신이 생각한 의미를 그리스도의 의미로 전가하지 말라고 늘 경고했으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권고했다(<편지> 3 참조).

 

또 오리게네스는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수련만이 아니라 종교적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경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별안간의 깨달음’이란 표현에서도 나타나듯 영감이나 조명이 필요한 ‘신비로운’ 체험이다. 그러므로 오리게네스가 사도 바오로를 따라 자주 말했듯이, 오직 영적인 사람만이 영적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따라서 영적 해석은 문자적 해석과 연관해서 검토되어야 하며 성경의 다른 구절로 입증되어야 한다(<원리론> 4.2.9 참조).

 

 

영적 해석의 불분명함으로 인해 드리워진 그림자

 

그러나 그리스 철학을 적극 수용하고 그것으로 그리스도교의 진리 탐구와 의미를 갈구했던 오리게네스는 그 열정이 지나쳐 몇 가지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그의 놀라운 신학 위에 드리운 그림자는 그리스도교 초기에 나타난 이단이 그랬던 것처럼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 그가 적극 활용한 플라톤주의 등 당대의 철학 체계였다.

 

예를 들어 오리게네스는 삼위일체론에 대해 교의상 큰 논란을 일으켰는데, ‘성자는 성부보다 낮고 성령은 성자보다 낮다’는 종속설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1코린 15,24)라는 구절을 토대로 만물 복귀설(apokatastasis panton)을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만물은 종말에 자신의 궁극적 근원으로 되돌아가며, 신은 모든 것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된다. 그러므로 성자의 구원 행위는 모든 영혼, 심지어 악령과 악마도 정화의 고통을 겪어 마침내 신과 일치하게 한다. 이는 지옥에 관한 정통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또 플라톤주의의 영향 하에 영혼의 선재설(先在說)과 정령설을 인정했다. 인간의 영혼은 세상 이전에 창조되었는데 영혼이 타락한 천사들과 함께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서, 어떤 정령은 별이 되고 어떤 정령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육체에 갇혀 인간이 됐다는 것이다. 나아가 신의 자유로운 창조를 주장하는 정통 교리와 달리 창조를 필연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오류로 인해 오리게네스는 후대에 평가절하되었으며, 그가 죽고 난 뒤 200년이 지났을 때 그의 이론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면서 안타깝게도 그리스도교 교회 회의에서 단죄되고 말았다.

 

 

영적 해석의 창의성과 철저한 비판 정신의 조화

 

오리게네스는 성경과 독자의 관계를 정적으로 보지 않고 동적으로 파악했다. 그리하여 주석가는 자신의 노력으로 메마르지 않는 하느님 말씀의 깊은 의미를 간파할 수 있지만 모든 말씀을 완전하게 터득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탐구하면서 향상되고, 열성적인 연구로써 진보하며, 하느님 은총의 도움을 받고 이성의 조명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는 연구의 최종 목적지에 결코 다다를 수 없을 것이다”(<마태오 복음 주해> 14,6).

 

오리게네스가 보여 준 영적 해석의 놀라운 창의성과 철저한 비판 정신의 조화는 그 후 모든 성경 해석의 귀감이 되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성경을 탐구했지만, 그리스도교의 발전 과정에서 확정될 모든 신학에 대한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저술을 직접 읽어 보면 오리게네스가 성경에 탄탄한 토대를 두고 ‘신앙의 규칙(regula fidei)’에 얼마나 충실하려 했는지 발견하게 된다. 더욱이 그는 “교회 전승에서 전해진 것 이외에 다른 어떤 것을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마태 복음 설교> 46)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오리게네스는 성경에서 단순한 지식을 얻으려고도 교회 신앙의 전통적 길에서 벗어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성경은 그에게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며, 그의 영적 해석은 단지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구체화하는 방법이었을 뿐이다. 그가 완결하지 못한 성경 해석의 풍부한 가능성은 안티오키아 학파와 후대 학자들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 박승찬 님은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중세철학이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7월호(통권 472호), 박승찬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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