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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탄원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19 조회수5,975 추천수0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탄원(Die Klagen des Gekreuzigten)

 

 

주님 수난 성금요일의 전례는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의 전례만큼이나 아름답고 심오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는 기도하는 교회의 가장 장엄한 전례 가운데 하나이지요. 그 가운데 여기서는 한 가지, 곧 ‘비탄의 노래’만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금요일 전례에서 장대한 보편지향기도 다음에 십자가 경배가 이어집니다. 십자가를 특별히 성대하게 경배하는 이 예식은 1세기 교회 초창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아주 이른 시기에 이미 이 십자가 경배에서 이른바 ‘비탄의 노래’가 불리었습니다.

 

이 비탄의 노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대화의 형식은 구약성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요. 미카 예언서 6장에는 하느님께서 직접 하시는 말씀으로 된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하였느냐?

내가 무엇으로 너희를 성가시게 하였느냐?

대답해 보아라.

 

정녕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왔고

종살이하던 집에서 너희를 구해 내었으며

너희 앞으로 모세를,

아론과 미르얌을 보냈다.(미카 6,3-4)

 

이사야 예언서 5장에 나오는 유명한 ‘포도밭의 노래’에서도 예언자는 처음에 사랑의 노래를 선창하다가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묻습니다.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느냐?(이사 5,4)

 

구약성경의 이러한 형식적 요소들을 빌려와 성금요일의 비탄의 노래가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중간마다 세 군데에, 이사야 예언서 6장 3절에 나오는 ‘삼중의 거룩하시다’가 그리스어로 첨가되었습니다. 곧 비탄의 노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하기오스 호 테오스

거룩하신 하느님

하기오스 이스키로스

거룩하신 용사님

하기오스 아타나토스, 엘레이손 히마스.

거룩하신 불사신,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구약성경의 이러한 언어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제 ‘비탄의 노래’에서는 수난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께서 바로 그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던 부분, 하느님께서 한탄하시고 당신 백성을 이해시키려 애쓰시던 바로 그 부분에서 이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살아생전에 늘 하시던 그대로, 곧 하느님 아버지의 자리에서 말씀을 하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당신 백성에게 물으십니다. 마치 연인이 상대에게 묻듯, 막 자신을 떠나려는 참인 불충한 여인에게 하시듯 그렇게 백성에게 물으십니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하였더냐?

무엇으로 너희를 괴롭게 하였더냐?

대답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못한 것이 무엇이냐?

 

연인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계속해서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이 사이에 그동안 함께 있었던 모든 일을 하나하나 거명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의 땅에서 구해 냈건만 […]

나는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이끌어 만나를 먹이고

가장 좋은 땅으로 인도하였건만 […]

 

그리고 이렇게 계속해서 역사에서 늘 새롭게 행하신 하느님의 행위들이 언급될 때마다, 백성이 하느님의 행위에 어떤 식으로 응대했는지, 백성의 고약한 행동들이 나열됩니다. 그 가운데 여기서는 그저 한 가지 예만을 들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바위에서 솟는 구원의 물을 마시게 하였건만

너희는 어찌하여 나에게 쓸개즙과 신 포도주를 마시게 하였느냐?

 

이 ‘비탄의 노래’ 가운데 일부는 이미 7세기에 사용된 증거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전례에서의 원형은 그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그리스어 구절이 이 노래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흔적입니다.

 

구세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는 이 비탄의 노래가 성금요일의 전례 가운데 일부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예수님의 죽음을 일방적으로 가혹하게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비탄의 노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원인은 그분 백성의 행동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행동이, 그리고 성금요일에 모인 공동체의 행동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좀 떨어져서 보면, 비탄의 노래에 나오는 모든 말들은 재판정에서의 고발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계약을 파기하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십니다. 유죄 판결도 내리지 않으십니다. 다만 “대답해 다오!” 하고 애원하십니다(우리말 새 예식서에는 “대답하여라!”라고 되어 있다 - 옮긴이). 연인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새 사랑을, 새롭게 된 사랑을 얻으려 애를 쓰십니다. 다시 서로 함께하는 사랑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심오한 신학을 담은 이 비탄의 노래야말로 지극히 전적으로 현실적입니다. 이 노래는 우리를 성금요일의 깊은 의미로 안내하는 하나의 문과 같습니다. 성금요일의 전례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고통에 몰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의미가 아닙니다. 함께 아파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바로 그것 때문에 나도 애가 끊어지고 그것을 위해 나도 마음이 타오른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한 백성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 바로 그것을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그 백성을 통해 행동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이끄심을 기꺼이 따르는 백성, 서로 함께하는 거룩한 연대의 삶을 사는 백성이 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하기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최후 만찬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당신의 몸인 이 백성을 세우시고, 마침내 이 백성을 위해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한 백성을 모으고자 하셨고, 또 여전히 그것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교리 교육이나 사는 동안 그 어디서든 들어본 그리스도인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자주 듣는 말은, 각자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행실 바르고 착실하게 살면서 경건한 죽음을 맞이하고 부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가운데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마태 23,37)

 

성금요일의 비탄의 노래는 당신 백성을 모으시려는 예수님의 애원이고 사투입니다. 바로 우리를 모으시려고 그분은 애가 타십니다. 성금요일에 마치 처음이라도 된 듯 한번 십자나무를 바라보십시오. 처음 보고 깜짝 놀라기라도 한 듯 그렇게 그 나무를 바라보십시오.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옆구리 상처에서 교회가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그분의 죽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응답은 우리가 그분 몸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분의 몸입니다. 그러한 응답은 강요가 아니라 자유입니다.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것은 동정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 함께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께서 세상에서 하시는 일에 함께 참여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 참여가 본래 그리스도교적인 것의 핵심입니다.

 

자기 자신의 계획에만 의지해 사는 사람의 삶은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일에 참여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이미 지금 부활이 시작됩니다. 그런 이의 삶은 영원합니다.

 

* 게르하르트 로핑크(Gerhard Lohfink) : 세계적인 성서학자이자 사제로, 독일 튀빙엔대학교에서 신약성서 주석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가톨릭통합공동체(katholische Intergrierte)에서 복음 정신에 따라 살며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국내 출간된 저서로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예수마음코칭』 『주님의 기도 바로 알기』 외 다수가 있다.

 

* 번역 : 김혁태 - 전주교구 소속 사제로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Bible Insight) : 이 칼럼은 저명한 성서신학자인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가 매월 『생활성서』 독자들을 위해 보내오는 글로, 성경 안에서 길어낸 신앙과 삶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

 

[생활성서, 2019년 4월호,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 김혁태 신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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