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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12: 여인과 용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362 추천수0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여인과 용

 

 

여인의 적대자 용

 

묵시 12장은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12,1)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이 표현은 창세 37,9에 나오는 요셉의 꿈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 꿈에서 해와 달은 요셉의 부모를, 열한 개의 별은 그 형제들을 의미합니다. 또 여인의 이미지는 구약성경에서 믿는 이들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비유적 의미로 사용된 여인의 모습은 ‘열두 개로 된 관’이라는 표현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열두 별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또 ‘관(stéphănos)’은 일반적으로 승리를 나타내는 상징이고, 특히 요한 묵시록에서는 ‘종말에 성취하게 될 승리’를 표현합니다.

 

12장은 이 여인이 아기를 배고 있고 해산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이 여인의 적대자로 등장하는 존재는 용입니다. 이미 살펴보았던 것처럼 ‘붉은 용’은 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용의 활동이 아직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붉다’는 표현에서 용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용은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12,3)을 쓰고 있다고 표현됩니다. 용은 여인이 해산하는 아이를 없애고자 여인의 곁에서 기다립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인은 사내아이를 낳습니다. 이 사내아이는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12,5)으로 소개됩니다.

 

여인이 아이를 낳자 아이는 하느님께로 들어 올려지고 여인은 하느님의 보호 아래 보살핌을 받습니다. 여인이 보호를 받는 기간은 천이백육십 일(12,6)과 일 년과 이 년과 반 년(12,14)입니다. 수에 대한 상징에서 본 것처럼 천이백 육십 일은 3년 반을 의미하고 12,14의 시간 역시 이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7이라는 숫자의 반에 해당하는 3½은 영원하지 않은 시간, 곧 잠시 후에 지나갈 시간을 나타냅니다. 그렇기에 여인이 하느님의 보살핌을 받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며, 또 곧 지나갈 것이라는 점이 이 숫자들 안에 담겨 있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하늘에서는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 그리고 용과 그의 부하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용과 부하들은 이 전쟁에서 패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용은 여인을 쫓아가 해치려고 하지만 그 계획도 무산됩니다. 마지막으로 용은 여인의 후손들을 괴롭히기 위해 떠나갑니다. 이 용에 대해 요한 묵시록은 “그 옛날의 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12,9)라고 소개합니다.

 

 

‘여인’이 상징하는 것은?

 

가장 먼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과연 이 여인이 무엇을 나타내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해석은 여인을 마리아와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이 해석은 가톨릭교회에서 큰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쇠 지팡이로 다스리는 사내아이가 메시아를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 해석은 여인을 마리아로, 사내아이의 출산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여인의 이미지가 한 개인을 나타낸다고 생각할 때 가능합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에서 많은 경우 여인의 이미지는 한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잘 들어맞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많이 대두되는 해석은 여인을 구약과 신약에서 언급하는 ‘구원의 공동체’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메시아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태어났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신약의 열두 사도로 이어지는 공동체로 지속된다는 점에서 이 여인을 구원의 공동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의 나머지 후손들, 곧 용이 마지막으로 싸우고자 하는 이들은 그 구원의 공동체에 속하게 된, 요한 묵시록이 쓰일 당시 고통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로 이해됩니다.

 

미카엘 대천사와 용의 싸움은 종말에 있을 하느님과 악의 세력 간의 싸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카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백성을 수호하는 천사로 인식되어 왔으며, 종말 때에 하느님을 반대하는 자들과 싸우는 역할로 구약성경에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다니 10,13.21; 12,1-3 참조). 그렇기에 저자가 용에 대해 “그 옛날의 뱀”이라고, 첫 인간들의 원죄에 등장하는 뱀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에서 용은 하느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악의 세력을 나타내는 상징이라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이야기의 흐름은

 

여인과 용의 환시가 담겨 있는 12장부터 14장까지의 환시는 요한 묵시록이 전하는 환시들 전체에서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이 단락에서 로마제국에 대한 상징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 공동체는 서로 대조됩니다. 이제부터 요한 묵시록의 환시들은 마지막에 이루어질 재앙과 심판을 향해 조금씩 전개됩니다. 이 단락 이후에 오는 것은 ‘일곱 대접’(16,1; 21,9)을 통해 드러날 재앙입니다. 이 재앙 이후에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재앙 이후에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심판만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12장의 마지막 표현은 용이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다는 내용입니다. 이 마지막 절은 오히려 13장의 시작과 더 잘 어울립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보일 환시에 등장하는 첫째 짐승 역시 바다에서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바다는 레비아탄과 용이 머무는 장소로 소개되고, 이들은 모두 악마의 이미지를 나타냅니다(시편 74,14; 104,26; 이사 27,1; 에제 32,2). 이러한 생각은 묵시 21,1에서 새롭게 만들어질 세상에 대한 표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세상에서 악마의 세력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환시들이 재앙을 통해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성격이 강했다면 이제부터 요한 묵시록의 환시는 종말 사건을 향해 갑니다.

 

*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2월호(통권 477호), 허규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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