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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성경 다시 읽기: 왕정(王政)의 시작, 사울과 다윗의 엇갈린 운명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07 조회수10,480 추천수0

[구약 성경 다시 읽기] 왕정(王政)의 시작, 사울과 다윗의 엇갈린 운명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2사무 7,5-17 참조)

 

 

왕정, 백성의 불신에서 피어난 구원의 시작

 

신명기계 역사서의 세 번째 책인 사무엘기는 이스라엘 왕정의 수립과 통일 왕국시대의 역사(판관시대 말엽~사울, 다윗의 치세)를 전합니다. 판관시대 말엽,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임금을 세워달라 요구했던 것은 그가 판관으로 세운 아들들의 자질부족과 비리 때문이기도 했지만(1사무 8,1-5) 무엇보다 이방 민족들을 효과적으로 물리치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부족동맹이나 판관제도가 아니라 임금의 지도력과 상비군에 바탕한 왕정제도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19-20절) 성경을 읽다보면 왕정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견해 모두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왕정은 이미 모세 시대부터 예비된 것으로 소급되거나(신명 17,14-20) 하느님께서 사무엘에게 직접 명하신 것으로 기록되기도 하고(1사무 8,7ㄱ.9ㄱ.22절), 반대로 하느님의 다스림을 거부하는 짓으로서(7ㄴ절) 백성에게 온갖 폐해를 가져오는 제도로 비판받기도 합니다.(9ㄴ-18절) 이러한 상반된 내용은 하느님께서 이랬다저랬다 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왕정에 대한 후대 역사가들의 상이한 평가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혹자는 임금을 세워달라는 백성의 요구가 당시 주변국들의 정세와 이스라엘의 혼란스런 상황(판관 21,25)을 고려할 때 당연한 것이었다고도 하지만 사무엘기 저자(신명기계 역사가)는 이 요구의 저변에 깔려있는 원의를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실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1사무 8,7ㄴ) 오직 하느님만이 모든 세상사를 주관하시며 위기 때마다 당신 백성을 반드시 구하신다는 사실을 더 이상 믿지 못했던 이스라엘의 가슴 아픈 불신과 함께 왕국시대(BC 1030-587년)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배신과 잘못된 선택,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언제나 더 큰 선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께서는 손수 임금을 세우시어 백성을 새롭게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임금, 사울

 

원래 사울은 힘센 용사로서 외모가 출중하고(1사무 9,1-2) 겸손하며(9,21; 10,22-24)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10,10-11; 11,6) 초창기의 사울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방민족들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며 백성을 구원했지만(암몬, 필리스티아, 아말렉과의 전투: 11장; 14장; 15장) 차차 마음속에 하느님께 대한 불신과 욕심이 자라나 결국엔 그 분을 저버리게 되었지요. 이런 사울의 결정적인 잘못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필리스티아와의 전쟁에서 포위를 당하여 하느님의 개입이 시급한 때에, 사무엘을 기다리던 사울이 다급하고 불안한 마음에 제 손으로 직접 번제를 바쳐버린 일이었습니다.(13장) 사울은 예언자를 통해 주어진 하느님의 약속을 의심했고 그분께서 세우신 사제직의 엄중한 질서를 훼손함으로써 하느님께 불순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고백하기는 커녕 소위 ‘급박한 상황논리’를 핑계로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기도 했지요.(11-12절)

 

둘째,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사울은 모든 포로와 전리품을 ‘완전봉헌물’(8월호 참조)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을 어겼습니다.(15장) 그는 적의 임금을 사로잡고 값나가는 전리품들을 챙김으로써 하느님을 속이고 기만했지요. 거기에다 사무엘에게 “저는 주님의 말씀을 이행하였습니다.” 하고 거짓말까지 하고, 잘못이 들키자 하느님을 위한 일이었다고 그분께 탓을 돌리기까지 합니다.(13-15절) 끝까지 순종하지 않는 임금 하나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나아가 온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게 하느님의 영은 사울을 떠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유일하신 임금은 하느님 한 분뿐이시라는 사실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그분의 다스림(神政)을 실현해야 할 본분을 잊고 제 뜻대로 살았던 사울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다윗에 대한 질투와 끊임없는 근심으로 점차 병들어 갔고(18-26장), 결국 필리스티아와의 전투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쳤습니다.(31,1-7) 사울은 다가오는 압박과 불안감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겨낼 용기도 믿음도 부족한 사람, 주변 사람들의 의견과 분위기에 휩쓸려 하느님보다 사람에게 좌지우지되는 사람, 잘못을 뉘우치기보다 변명하고 주저하는 사람의 전형입니다. 사울이 무심코 지나쳐 버린 사무엘의 질책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 이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15,22)

 

 

성왕(聖王), 다윗

 

다윗은 뛰어난 용사요 시인으로서, 이후 임금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정도로(1열왕 11,4.6; 15,3.11; 2열왕 18,3; 22,2 등)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임금입니다. 그는 조급함과 욕심으로 계속해서 하느님을 저버렸던 사울과는 달리, 그분께서 마련하신 때를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일찍이 사무엘의 도유를 받고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사울의 왕위를 억지로 찬탈하지 않았고, 하느님께 충실한 지도자로 성장해갔습니다.(1사무 16-30장)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이 죽자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유일한 임금이 되었고,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그곳에 계약 궤를 모심으로써 통일왕국의 기초를 다졌습니다.(2사무 5-6장) 이런 다윗에게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나탄을 통해 왕국의 정통성과 영속성을 보증해주셨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나탄의 신탁(神託)’입니다.(2사무 7장) 이 약속에 대한 희망은 왕국시대의 종말 후에도 이상적인 임금을 기다리는 ‘메시아 사상’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됩니다.

 

 

완벽하지만은 않았지만 회개할 줄 알았던 사람, 다윗

 

하느님과 그분의 율법에 충실했던 다윗은 노년에 이르러 눈에 띄는 잘못들을 저지르기도 했는데, 사실 이 점은 아들 솔로몬도 마찬가지였지요.(1열왕 11장) 사무엘기 하권의 내용은 다윗의 성공과 실패,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그의 실패와 시련의 시기는 자신의 죄(밧 세바를 차지한 일, 2사무 11-12장)와 함께 시작됩니다. ‘시련은 자기 죄의 결과이며, 하느님께 불충한 결과’라는 신명기적 상선벌악 원칙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지요. 다윗이 범했던 결정적인 잘못은 두 가지였는데,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를 빼앗은 일과 인구조사(병적조사)를 감행했던 일이었습니다.

 

첫째, 고대 근동 임금들의 첫째 의무였던 출전을 요압에게 미루고 왕궁에 머물러 있던 다윗은 “게으름은 악마의 일터이다.”라는 속담처럼 쉽게 유혹에 빠져 들었습니다.(2사무 11장) 충직한 부하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를 탐하고, 그녀를 빼앗기 위해 남편까지 죽이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한 순간의 쾌락이 다윗과 하느님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나탄의 예언 그대로(12,10-12) 다윗 가문에 피바람을 몰고 옵니다.(15-18장; 1열왕 2,13-25)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달았을 때 다윗이 보였던 모습입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2사무 12,13) 이 짧은 한마디 말에는 다윗의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젊은 시절 그 누구보다 하느님의 뜻을 잘 알고 따랐던 다윗이었기에, 밧세바를 취했던 날부터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수개월간 얼마나 큰 회한과 죄스러움을 가슴에 담고 살았을까 충분히 헤아려집니다. 짓무른 죄의 상처를 터뜨려 하느님께 참담한 마음으로 자비를 구했던 그 순간, 하느님의 용서와 치유가 즉시 시작됩니다.

 

둘째, 다윗은 말년에 인구조사(군인으로 징집 가능한 장정수 파악)를 했는데, 이는 자신의 군사력을 가늠하는 행위로서 오직 하느님께 의지해야 할 임금의 본분을 저버리는 일이었습니다.(24장) 이번에도 다윗은 “주님, 제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10절) 하며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느님의 처분에 오롯이 자신을 맡깁니다.(14절) 회개하는 다윗을 기억하신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해 손을 뻗치는 파멸의 천사를 멈추게 하셨는데, 바로 그 장소가 훗날 백성의 기도와 하느님의 자비가 마주 만나는 자리,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질 자리가 됩니다.(1역대 22,1; 2 역대 3,1)

 

사무엘기가 전하는 사울과 다윗 이야기는 통일왕국 수립에 관한 역사뿐 아니라 죄를 범한, 아니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간직해 나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지체없이 회개하여 돌아오는 이를 결코 내치지 않으시고 귀히 쓰시는 하느님, 그분 앞에 선 나의 모습은 요즘 어떻습니까? 잘못인줄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미루다 멸망으로 향한 사울이 아니라 나약하여 때로 죄도 짓지만 즉시 뉘우치고 하느님께로 서둘러 돌아가던 다윗의 삶을 잘 살고 계신가요. ‘완전한’ 성자가 아니라 ‘죄짓는’ 인간이었던 다윗이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성인이 되었듯, 초라하고 부족한 나 역시 진심을 담은 ‘회개’를 통해 성인이 되리라 다짐하며 새롭게 시작합시다.

 

[월간빛, 2018년 9월호,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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