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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창세기 인물 열전: 에돔의 조상 에사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11,060 추천수0

[창세기 인물 열전] 에돔의 조상 에사우

 

 

에돔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민족이다. 성경에는 자주 나오지만, 정작 그들에 대해 아는 바는 많지 않다. 대부분 에사우가 그들의 조상(36,1)이라는 정도에 그친다. 그렇지만 모세의 형 아론이 에돔 땅 경계에 있는 “호르 산”에 묻혔고(민수 20,22-29),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한 헤로데가 부계 혈통으로 에돔인임을 감안하면, 에돔에 얽힌 사연들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에사우와 야곱

 

에돔의 조상 에사우는 창세기 25장에 처음 나온다. 육체적으로는 에사우가 동생 야곱보다 강했지만, 선택받은 아들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인생의 무게가 덜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배고픈 형에게 그냥 줘도 됐을 콩죽으로 장자권을 가져가고 형으로 분장해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보다, 야뽁 강에서 재회한 동생을 기탄없이 용서한 에사우의 호방함(33,4)이 마음에 든다. 그렇지만 에사우는 순간의 배고픔 때문에 맏아들 권리를 경시하는 우를 범하여 아우에게 뒤꿈치를 잡힌다. 실제 역사에서도 에돔은 맏이답게 왕국을 먼저 확립하지만(36,31), 결국 다윗에게 정복당해(2사무 8,14) 야곱의 우월성을 증명해 준다. 사실 우리는 에사우와 야곱의 장자권 쟁탈전에 대해 읽을 때마다, 동생이 콩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부도덕하게 가로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고대 근동 문헌들은 이에 대해 좀 더 색다른 면을 보게 해 준다.

 

 

맏아들 권리

 

성경은 장자를 중히 여겼다(탈출 13,2; 민수 3,13 참조). 맏아들 권리는 한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통솔권이므로, 우리나라 장남이 누렸던 전통적 위상과 흡사하다. 아버지 재산을 나눌 때는 다른 형제들의 두 몫을 상속받고(신명 21,17), 아버지의 뒤를 이어 후계자를 축복하는 권리도 가졌다. 그렇지만 장자권이 반드시 탄생 순에 따라 주어지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야곱이 선택되었다는 창세 25,23에서나, 야곱이 요셉의 차남 에프라임을 장남 므나쎄보다 앞세운 창세 48,13-20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장자권은 양도도 가능했다. 르우벤은 아버지에게 불충을 저지른 죄(35,22)로 장자권을 양보해야 했다(1역대 5,1 참조). 이렇듯 장자권이 고정된 권리가 아님을 알았기에, 야곱이 그것을 탐내게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고대 근동 유적지 가운데 ‘누지’나 ‘알라라크’에서 발견된 비문에 따르면, 그곳에서도 아버지가 장자권을 받을 아들을 정할 수 있었던 듯하다. 누지 비문에는 양 세 마리를 ‘즉시’ 받는 조건으로, 자기 형제에게 ‘미래의 상속 재산’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내용도 나온다. 이는 에사우가 ‘당장의’ 허기를 해결하려고 장자권을 콩죽과 바꾼 사건을 떠올리게 하므로, 에사우가 콩죽의 대가로 판 것은 미래에 받을 ‘상속 재산’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야곱이 콩죽으로 장자권을 사들인 행위가 고대 근동에서는 크게 부도덕한 행위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점도 추측하게 한다. 그렇지만 “형제들의 지배자”가 되는 장자권은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축복을 통해 최종적으로 주어지므로, 그의 부도덕성은 에사우로 분장해 아버지를 속인(27,1-29) 지점에서 부각된다.

 

야곱은 소원대로 맏아들 권리를 쟁취하지만, 형과 아버지를 속인 죄는 정당화되지 못했다. 그가 치른 죗값이 성경 곳곳에 암시된다. 첫째, 아브라함이나 이사악은 평화롭게 살다가 조상들 곁으로 간 반면(25,8; 35,29), 야곱은 이십 년 동안 외숙 집에서 피난살이를 해야 했다. 둘째, 그가 아버지와 형을 속였듯, 자신은 외숙 라반에게 속고 이용당한다(29,25; 31,7). 셋째, 라반에게서 도망친 이후에는 에사우를 대면해야 하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32,8.12). 넷째, 가장 사랑한 아들 요셉이 제 형들의 기만으로 이집트에 팔려가 오랫동안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야곱의 아들이 또 다른 아들들의 계교에 말려 아버지의 업을 그대로 돌려받은 것이다. 이 때문에 야곱은 스스로도 불행했다고 고백하였으며, 끝내는 이집트에서 고향을 그리다 세상을 떠난다(47,9.29; 49,33).

 

에사우는 아우에게 속아 아버지의 축복까지 빼앗긴 뒤, 앙심을 품고 야곱을 죽이려고 했다(27,41). 그래서 증오의 배경과 등장인물의 성격은 다르지만, 동생 살해를 계획한 에사우에게서 우리는 또 다른 카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사악이 야곱에게 해 준 축복대로, 에사우의 후손 에돔은 왕정 시대 내내 이스라엘을 이기지 못했다. 기원전 6세기 유다 왕국이 바빌론의 손에 망했을 때에야 마침내 자기 목에서 이스라엘의 멍에를 떨칠 수 있었다(27,40 참조). 그리고 바빌론 유배 뒤, 곧 제2성전기 동안에는 에돔이 이스라엘의 남부지방으로 침투해 온다. 그래서 본래는 이스라엘 남동쪽이던 그들의 위치가 바뀌게 되었으며, 이름도 ‘이두매아’라 칭해진다(1마카 5,3 참조).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한 헤로데의 아버지가 바로 이두매아 출신이다. 곧, 질곡의 세월 끝에 에사우의 후손이 이스라엘 임금이 되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보면 에사우는 헤로데를 통해 과거의 앙금을 묘하게 설욕한 셈이 아닌가?

 

* 김명숙 님은 예루살렘의 히브리대에서 구약학 석사 ·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루살렘의 홀리랜드대와 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과 수도자 신학원에서 구약학 강의를 하였고,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이다.

 

[성서와 함께, 2017년 7월호(통권 496호),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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