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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2: 요한 묵시록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095 추천수0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요한 묵시록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

 

 

저자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전통적으로 사도 요한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유스티노, 클레멘스, 이레네오 등 많은 교부가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마르 1,19)이 요한 복음과 요한 묵시록의 저자라고 밝힙니다. 이런 의견에는 두 가지 사실이 근거로 제시됩니다.

 

우선 요한 묵시록의 저자가 자신을 “요한”(1,1.4.9; 22,8)이라고 스스로 밝힙니다. 저자는 자신을 “당신 종 요한”(1,1)으로, 나아가 환난에 함께하는 형제로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1,9) 때문에 파트모스 섬에 갇혀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근거는 요한 복음과 요한 묵시록의 공통된 사상입니다. 두 작품은 모두 생명의 물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으며(요한 4장; 묵시 7,17; 22,1-17 참조)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말씀임을 강조하고(요한 1,1; 묵시 19,13 참조) ‘어린양’이란 주제를 사용합니다. 이 모든 내용은 요한 묵시록과 요한 복음서의 저자가 동일한 인물, 곧 사도 요한일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현대의 학자들은 이런 전통적 의견과 달리 요한 복음서와 요한 묵시록의 저자가 동일인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공통된 사상이 있지만 차이점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중 하나가 언어의 문제입니다. 우리말로 보면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리스어로 보면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학자들은 요한 묵시록의 그리스어를, 그리스어에서 히브리어의 특성이 많이 나타나는 ‘셈족화된 그리스어’라고 부릅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육화(肉化)’에 대한 강조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상 중에서 육화는 가장 기초가 되는 사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은 요한 복음이 강조하는 내용이고, 이는 다른 모든 그리스도론의 기초가 됩니다. 하지만 요한 묵시록에서는 육화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요한 묵시록이 ‘묵시문학’이라는 유형에 속한다는 점입니다. 묵시문학은 대부분 환시를 사용하고 초월적 세상과 현실 세상을 구분하며, 종말을 심판이나 전쟁의 이미지로 표현한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그런데 빼놓을 수 없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차명성’입니다. 대부분의 묵시문학 작품의 저자는 자신을 누구라고 표현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요한 묵시록의 경우, 저자가 “요한”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당시의 명망 있는 사람의 이름을 빌려 사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학자들은 요한 묵시록의 저자가 요한 복음서의 저자와 같지 않으며, 실제의 요한이 아닌 익명의 예언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언의 말씀과 예언의 책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자신이 전하는 내용을 ‘예언’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1,3)라고 밝힙니다. 나아가 이런 내용이 천사의 입을 통해서도 표현됩니다(22,7.10.18.19 참조). 이 여러 본문은 저자가 자신을 예언자처럼 생각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그는 (순회) 예언자 중 한 사람으로 원래 팔레스티나 지역, 곧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스라엘 지역에 살다가 유다 전쟁(66-73년) 후 소아시아 지방으로 이주한 유다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언급한 것처럼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아 유배에 처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와 요한 묵시록

 

요한 묵시록은 분명히 박해 상황을 배경으로 삼습니다. 이미 소아시아 공동체에서는 박해로 인해 순교자가 생겨났다고 말합니다(2,13 참조). 그렇다면 언제쯤 요한 묵시록이 쓰였을까요? 이것을 찾아내는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기에 결과를 중심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7,9은 탕녀 바빌론에 대해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일곱 머리는 그 여자가 타고 앉은 일곱 산이며 또 일곱 임금이다.” 여기서 말하는 일곱 산은 로마라는 도시를 생각하게 합니다. 로마는 일곱 언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일곱 임금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요한 묵시록은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중에서 요한 묵시록이 쓰인 시기는 80년 이후로 여겨집니다. 로마를 ‘바빌론’으로 일컫는 것이나 ‘열두 사도’(복음서는 보통 ‘열둘’이라는 표현으로 제자들을 나타낸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80년 이후에 찾을 수 있는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내용을 만족시키는 것이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년)의 통치 시기입니다. 로마 제국은 시작부터 황제를 신격화하려 했습니다. 황제들은 재임기에 ‘신의 아들’이란 호칭을 사용하고, 죽은 뒤에는 ‘신’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런데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재임 중에 이미 ‘우리의 주님이시며 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소아시아의 많은 지역에 자신의 신상을 세워 경배하도록 했으며, 심지어 가정에서도 이런 황제 숭배 의식을 행하도록 했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황제 숭배 의식을 확장하고 예전보다 강하게 요구하였기에 그리스도인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황제 숭배는 유일신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상 숭배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소아시아에 살던 신앙인들이 황제 숭배 의식을 거부한 것이 그들을 박해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역사 기록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은 이런 배경에서 쓰인 책입니다. 점차 심해지는 박해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기 시작하고 신앙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그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려 합니다. 박해에 굴복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믿음을 지켜나가는 이들에게 ‘종말이 멀지 않았고 그때에 하느님께서 악의 세력을 모두 심판하실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을 아는 것은 요한 묵시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에게 전하는 계시의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2월호(통권 467호), 허규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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