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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성경 내용의 충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아벨라르두스의 그렇다와 아니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480 추천수0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성경 내용의 충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아벨라르두스의 《그렇다와 아니다》

 

 

“이런, 분노가 이성을 지배하고 격정이 판단력을 흐리는구나”(《오셀로》, 셰익스피어). ‘애덕의 성인’으로 불리던 베르나르두스도 아벨라르두스(Abaelardus, 1079-1142)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결국 베르나르두스는 상스 공의회에서 사전 담합이라는 부당한 수단까지 동원해 아벨라르두스를 단죄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명성에 크나큰 오점을 남겼다. 많은 역사가는 베르나르두스가 아벨라르두스의 새로운 정신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벨라르두스는 누구이며 어떤 정신을 새롭게 도입한 것일까?

 

 

논쟁을 통해 명성을 얻은 아벨라르두스

 

기사의 아들로 태어난 아벨라르두스는 논리학을 섭렵한 후 지방에서 사립학교를 열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파리에까지 진출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진 못했다. 그러자 노트르담 주교좌성당 학교에 학생으로 등록했다. 아벨라르두스는 당시 스승이었던 샹포의 기욤(Guillaume de Champeaux, 1070?-1121)을 비롯한 수많은 유명 교사와 공적인 논쟁을 벌여 승리했다. 또한, 논리학에 관한 주해서와 저서를 집필하며 독창적인 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다른 교사들이 그가 제시했던 이론을 공격하면, 아벨라르두스는 새롭게 발전시킨 이론으로 응수했다. 그 결과 그는 젊은 나이에 ‘최고의 논리학자’라는 명성과 많은 추종자를 얻었다.

 

논리학 분야를 평정한 아벨라르두스는 ‘모든 학문의 여왕’으로 인정받던 신학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라옹의 안셀무스에게서 신학을 배웠지만, 그 교육 방식에 만족하지 못했다. 아벨라르두스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그를 곤경에 빠뜨렸고, 논리학 지식을 신학에 응용함으로써 금세 신학 분야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학자로 부상했다.

 

 

엘로이즈와의 사랑이 가져 온 불행

 

당대에 누렸던 인기에도 불구하고 아벨라르두스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가 그의 자서전 《내 불행의 역사》에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아벨라르두스가 파리에서 신학과 논리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자 학생들이 몰려들어 그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다. 이때 그는 노트르담 대성당 참사위원 풀베르투스(Fulbertus)의 청에 따라 그의 조카딸 엘로이즈(Heloise)의 개인교사가 됐다. 그런데 그는 스무 살가량이나 어린 엘로이즈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임신시켰고, 결국 엘로이즈를 자신의 고향 브르타뉴로 데려가 아들을 낳게 한 뒤 비밀리에 결혼했다. 그의 배신에 진노한 풀베르투스는 사람을 고용해 그를 거세시키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아벨라르두스는 그의 학문적 성과보다 엘로이즈와의 연애 사건으로 더 화제가 됐다. 그 후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은둔 생활을 했지만, 그가 머무는 곳이 알려지자 학생들이 모여들어 다시 강의를 시작했다. 여러 수도원을 전전한 끝에 다시 파리로 돌아온 아벨라르두스는 생 주느비에브 학교에서 정열을 불태우며 많은 글을 써서 다시 명성을 얻었다.

 

 

아벨라르두스가 제시한 신학방법론과 그에 대한 비판

 

아벨라르두스는 자신의 주저인 《그렇다와 아니다(Sic et Non)》의 서문에서, 성경에 사용된 단어들의 다양한 의미를 구별하고, 내포된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한 기초적인 규칙들을 체계화했다(예를 들어, 같은 낱말도 여러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문장들은 문맥에서 따로 떼어 놓으면 종종 잘못 해석되기 쉽다, 심지어 성경도 필사 과정의 잘못으로 왜곡될 수 있다 등등). 또한, 그는 교부들의 다양한 의견을 신학적인 종합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는 신학 문제에 관한 정확한 해답을 얻기 위해 서로 반대하는 양쪽의 가장 권위 있는 견해들을 대비시켰다. 그리고 이렇게 대비된 권위 중 어떤 것이 더욱 타당한 근거를 지니는지를 이성적으로 판단함으로써 진리를 찾아가는 방법을 제시했다. 아벨라르두스는 이전 신학자들이 허용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큰 영역이 이성적 능력에 의하여 접근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서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벨라르두스는 당대의 유명한 학자들을 비판하고 전통적인 신학의 가르침을 수정함으로써 많은 신학자에게 적대감을 샀다. 비판자들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해명의 발상’이 사회 전체를 위협한다며 아벨라르두스를 비난했다. 또한,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학자들은 아벨라르두스가 논리학에서 배운 방법을 그대로 신학에 적용한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아벨라르두스는 하느님, 삼위일체, 그리고 은총과 구원에 대한 모든 신비조차도 무의미한 것으로 밝히려고 지성주의적으로 접근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렇다면 아벨라르두스는 정말로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비를 부정하려 했던 것일까?

 

 

신앙을 해명하기 위해 사용된 이성

 

아벨라르두스는 신앙의 뿌리를 흔들려는 회의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영혼의 구원은 결국 성경에서 오는 것이지 철학자들의 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아벨라르두스는 수녀원장이 된 옛 애인 엘로이즈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는 성 바오로를 거슬러 철학자이고자 하지 않으며 그리스도한테서 떨어져 아리스토텔레스이고자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나를 구원하는 그 이름이 하늘 아래 그리스도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내 의식의 기초로 삼은 바위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세운 바위이다.”

 

아벨라르두스는 성경의 권위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권위를 옹호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하고자 했다. 그는 논리학의 중요한 역할이 신앙의 진리를 해명하고 불신자를 반박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론도 개발했던 것이다. 그가 《그렇다와 아니다》에서 사용했던 방법은 중세 대학 설립 이후에도 정규 토론과 자유 토론 등에서 계속 사용되었다. 이 방법은 스콜라 철학의 ‘고유한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화합할 수 없어 보이는 모순들을 발견해도, 무시하고 넘어가거나 잠시 고민하다 해결을 포기한다. 그렇지만 아벨라르두스는 성경의 문장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들을 치열한 지성적 토론으로 극복하려 노력했다. 그의 진지한 학문적 자세와 열린 마음은 성경에서 하느님이 계시하신 진리를 찾으려는 지성인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 박승찬 님은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중세철학이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11월호(통권 488호), 박승찬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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