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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하느님은 왜 사람이 되셨는가? -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457 추천수0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하느님은 왜 사람이 되셨는가?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캔터베리의 안셀무스(1033-1109)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강조했고, 이로 인해 ‘스콜라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존경받았다. 그렇지만 그가 마치 인간의 이성만으로 성경의 모든 신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이성적 논증의 영역을 확장한 것에 대해서는 반론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성경에는 이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현상이 자주 언급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이방인 철학자들과 그리스도교 지성인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했던 것이 ‘강생’ 또는 ‘육화’(incarnatio)의 신비이다.

 

영지주의자들이나 일부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육화의 신비를 비이성적이라고 여겨 아예 거부했다. 이와 달리 안셀무스는 육화의 신비를 신앙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이 신비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에 대해 이성적으로 탐구했다. 그 결실이 바로 안셀무스가 유배 시절에 집필한 《하느님은 왜 사람이 되셨는가?(Cur Deus Homo)》이다.

 

 

교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캔터베리의 대주교

 

1078년 안셀무스가 베크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을 때, 이미 그가 박학하고 덕이 높다는 소문이 당시 노르망디를 포함한 영국 전체에 퍼졌다. 1093년에 영국 왕 윌리엄 2세는 캔터베리의 대주교였던 란프랑쿠스가 사망하자 안셀무스를 후임자로 임명했다. 안셀무스는 세속적인 명성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노쇠함을 이유로 이 중책을 거절했으나 주위의 간청이 끊이지 않자 마지못해 수락했다. 안타깝게도 주교직 수락과 함께 안셀무스는 남은 생애 내내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는 영국 왕이 성직자들을 직접 임명하고 교황과의 연락을 제한하는 등 교회 직무에 간섭하자 강하게 반발했다. 성직 서임권 논쟁의 여파로 안셀무스 대주교는 두 번이나 영국을 떠나 유럽 대륙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이런 불안한 처지에서 그는 《하느님은 왜 사람이 되셨는가?》를 완성했다.

 

 

《하느님은 왜 사람이 되셨는가?》

 

안셀무스는 이 책에서 육화의 신비를 인간 구원과 관련해서 다룬다. 안셀무스 이전의 학자들은 오리게네스가 처음 표명한 소위 ‘속량(贖良) 이론’을 통해 인간 구원을 설명하려고 했다. 속량 이론에 따르면, 악마가 죄지은 인간들을 인질로 잡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자유를 되돌려 주려고 성자께서 인간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이 이론은 오랜 세월 교회를 지배했다. 그럼에도 안셀무스는 속량 이론의 이성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속량 이론은 악마의 권리를 지나치게 인정하여 하느님의 절대적인 권능을 위협하는 듯했다. 안셀무스는 하느님이 인간 본성의 미천함을 회복하고자 받아들인, ‘필연적인 이유’를 이성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썼다. 결국 그는 라틴 세계의 독창적인 구원론인 ‘대속(代贖) 이론’을 발전시켰다. 안셀무스에 따르면,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아름다운 질서(ordo)가 파괴된 것은 피조물의 대표인 인간이 자유를 잘못 사용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저지른 이 죄악은 너무나 커서 죽음으로도 보상할 수 없다. 그런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본래 인간이 하느님을 직관하는 가장 큰 행복(지복직관)에 이르도록 계획하셨다. 이 계획이 실현되려면 파괴된 세상 질서가 복구되어야만, 즉 손상된 하느님의 영예가 회복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만큼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의 자발적 보상이 필요하기에 성자의 육화가 필연적인 것이다. 성부께서 시작하신 구원 업적을 이루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Logos)인 성자가 자원하여 인간의 구체적 · 역사적 · 인격적 본성을 취했다. 이 육화를 통해 신적 로고스 안에서 인간의 본성이 치유되고 구원받게 된 것이다.

 

많은 학자는 안셀무스가 자신에게 익숙했던 사회법적인 표상에 따라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게르만족의 영예 회복 관습에 따르면, 영예가 손상된 자의 품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다투는 과정에서 때렸다면, 사과하고 화해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신의 상사나 국왕을 때렸다면, 아랫사람의 사과만으로 쉽게 해결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화해할 능력이 없는 인간을 위해서 인간이 되신 하느님인 그리스도가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용서와 화해를 성취하셨다는 것이다.

 

안셀무스는 육화의 이유를 찾아낸 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하느님의 육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은 실패할 수 없으리라는 교리가 필연적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각 사물에는 ‘올바름’, 즉 신적인 조화가 존재한다. 모든 피조물에 내재하는 올바름은 하느님께서 전능하시고 언제나 올바른 것만을 원하시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결코 실패할 수 없다.

 

 

안셀무스의 대속 이론에 대한 평가

 

안셀무스의 대속 이론은 많은 신학자의 환영을 받았다. 특히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이 자원하여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섭리의 필연성과 인간의 자유가 잘 조화된다는 사실이 주목을 받았다. 그렇지만 안셀무스의 구원론도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성자의 죽음이 지닌 효력만 강조되다 보니 그리스도의 고통이 갖는 구원론적인 가치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또한, 죄 없이 돌아가신 성자의 업적과 죄지은 인간들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다 보니, 교부들이 머리와 지체로 강조한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의 ‘유기적 연결’을 찾기도 어려워졌다. 이렇게 안셀무스의 대속 이론은 하느님과 외부 세계를 본질적으로 서로 반대되는 위치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드러냈다.

 

안셀무스의 대속 이론은 이후 신학사에서 많은 찬성자와 반대자를 만나게 된다. 안셀무스와 달리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후대 학자들은 인간의 이성만으로 해명할 수 없는 그리스도교의 초자연적인 신비들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육화의 신비를 완벽하게 해명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이론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성경에 담긴 놀라운 신비를 인간의 생각과 언어만으로 모두 다 표현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 신비를 알 수도 없고, 알아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침묵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안셀무스처럼 자신의 문화와 사고방식에 맞추어 설명함으로써 그 신비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는 시대를 뛰어넘어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 박승찬 님은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중세철학이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9월호(통권 486호), 박승찬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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