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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구원받을 사람은 미리 정해져 있나요? - 예정론 논쟁과 에리우게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328 추천수0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구원받을 사람은 미리 정해져 있나요?


예정론 논쟁과 에리우게나

 

 

신문이나 잡지에 별점이나 사주 항목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사람들 대부분은 미래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신앙인들에게는 세속적 성공에 대한 궁금증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성경 곳곳에 나오는 구원과 심판에 대한 언급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하느님께서 구원받을 자와 영벌을 받을 자를 미리 정해놓으셨는가?’ 하는 ‘예정론(豫定論)’ 논쟁이 이미 스콜라 철학이 태동하던 9세기에 벌어졌다.

 

 

스콜라철학 초기에 나타난 고트샬크의 이중 예정론

 

예정론 논쟁은 카롤루스 대제의 문예부흥의 결실로 학교 제도가 개편되고, 논리학과 문법학을 포괄하는 ‘변증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논쟁을 일으킨 사람은 어린 나이에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던 고트샬크(Gottschalk, 808-867?)였다. 고트샬크는 변증론과 성경 공부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스승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렇지만 정작 사춘기에 접어든 고트샬크는 수도원에서 평생을 살아갈 마음이 없었다. 스승들에게 수도원 학교를 떠나기를 청했지만, 그의 재능을 아꼈던 수도원장과 주교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고트샬크는 수도원 학교의 교사로 살게 되었고 자신의 뛰어난 재능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나라에 속할 사람과 악마의 노예가 될 사람을 이미 결정해 놓으셨다는 ‘이중 예정론’을 주장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고트샬크는 개인의 자유를 무시당한 자신의 부정적 체험 때문에 이런 이론을 주장하게 된 것일까? 수도회의 장상과 주교가 보기에 그의 이론은 영원한 운명이 우리의 행위와 무관하게 예정되어 있다고 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선교 활동을 폄하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입장을 철회시키고 싶었지만, 이미 변증론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갖춘 교사 고트샬크는 더 이상 윽박지를 수 있는 어린 소년이 아니었다.

 

 

예정론 문제를 해결하며 등장한 에리우게나

 

곤경에 빠진 교회 지도자들을 구해 줄 뛰어난 학자가 혜성같이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요한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Johannes Scotus Eriugena, 810-877)였다. 교육 수준이 높았던 아일랜드에서 자라난 그는 라틴어는 물론 그리스어까지 능통한 뛰어난 실력자였다. 그는 고트샬크의 책을 읽고 그의 주장을 논박하기 위해 자신이 지닌 뛰어난 변증론의 지식을 활용했다. 에리우게나에 따르면, 하느님은 절대적 단순성을 지니고 계시므로 예정론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하느님은 흘러넘치는 선(善)이시기 때문에,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으시며 모든 인간의 구원을 원하신다. 죄인에 대한 진정한 벌은 그 죄인이 자신에게 내릴 뿐이다. 에리우게나는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변증론을 활용한 치밀한 논변으로 고트샬크의 주장을 무력화시켰다. 교회 지도자들은 위험한 고트샬크를 무찌른 에리우게나에게 찬사를 보냈지만, 이후 그가 더 위험해 보이는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에리우게나는 이중 예정설을 반박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성경 연구를 통해서 찾아낸 종말론에 대한 여러 생각을 가르쳤다. 예를 들어 그는 이중 예정을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며 어떠한 예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죄를 지은 자들에 대한 처벌은 불길이 치솟는 지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인의 후회가 바로 지옥이라고 했다. 지옥을 특정한 장소적 개념으로 보지 않은 에리우게나의 주장은 당시 뜨거운 불이 타고 있는 땅 밑의 지옥만을 생각하던 신자들에게 청천벽력 같았다. 에리우게나의 주장은 고트샬크의 이론보다 더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교회에서 단죄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성경 연구를 위해 변증론 논의를 수용한 에리우게나

 

마침 에리우게나의 재능을 아꼈던 카롤루스 대머리왕(Charles the Bald)이 직접 개입하여, 그에게 새로 발견된 《위(僞) 디오니시우스 전집》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맡겼다. 이는 자신의 왕국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자를 보호하려는 조치였다. 에리우게나는 이 작업을 훌륭하게 완성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존 신학 지식과 번역 작업을 통해 새롭게 얻게 된 통찰력을 집대성하여 《자연 구분론》이라는 대작을 남겼다. 그 안에서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된 ‘자연’을 분석했다. 에리우게나는 이 저작을 통해 신이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한 순간부터 아담의 추방, 육화로 이어지는 역사를 통해 우주의 통일성 있는 원리를 설명하고, 세계의 기원이 되었던 신과 다시 합일되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에리우게나는 이렇게 자신이 철학에서 배운 용어들을 토대로 백과사전적 지식을 총정리했지만, 그의 핵심적인 관심은 성경을 통해서 얻은 지혜였다. 그는 자연과 성경을 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두 장소라고 믿었다. 성경은 진리의 지식을 향한 길을 보여 주고, 구체적인 언어로 표시된 성경의 내용은 암시적이고 표징을 가득 담고 있는 자연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그는 ‘영적 독수리’라는 별명을 지닌 성 요한 복음사가를 지성인의 표상이라고 칭송했으며 특별한 애정을 지니고 《요한 복음서 서문에 대한 주해》를 저술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유학예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이성적 규범이 적절하게 응용된다면 신학적 논제를 전개하는 데도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카롤루스 대제의 문예부흥을 통해 알려진 그리스-로마의 전통에서 유래한 변증론을 바탕으로 성경을 주의 깊게 분석하는 과정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진정한 종교와 진정한 철학은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르는 것이었다.

 

많은 신앙인이 자신이 구원받을지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는 인간의 자유를 없애 버리는 강제력을 지니지 않는다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여러 학자가 강조해 왔다. 이 지상에서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결코 알 수 없는 결론에 대해 지나친 호기심을 가지거나 불안에 떨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모든 이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느님을 신뢰’하며, 에리우게나처럼 주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다해 애쓰면서 그분의 뜻에 맞도록 노력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 박승찬 님은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중세철학이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6월호(통권 483호), 박승찬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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