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자료실

제목 [구약] 탈출기 말씀 피정13: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027 추천수0

탈출기 말씀 피정 (13)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번 호에서는 이집트에 내려진 열 번째 재앙과 파스카, 무교절에 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열 번째 재앙과 관련한 파스카 축제와 무교절은 이스라엘의 삼대 축제(파스카·오순절·초막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축제입니다. 곧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해방 축제입니다.

 

 

열 번째 재앙에 대한 예고(11,1-8 참조)

 

아홉 번의 기적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열 번째 재앙을 예고하십니다. “나는 이제 파라오와 이집트에 한 가지 재앙을 더 내리겠다”(11,1). 여기서 재앙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네가(גע ַנ‘( ֶ입니다. 이 말은 창세 12,17에서 ‘파라오가 받은 하느님의 처벌’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바 있습니다. 7,3에서 하느님께서는 표징과 기적을 많이 일으키시어 당신이야말로 참된 하느님임을 드러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파라오가 계속 완고함을 드러내자 재앙으로 파라오를 치고자 하십니다. 아홉 번의 기적이 참된 하느님임을 드러내고자 하는 표징이었다면, 열 번째 기적은 당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파라오에 대한 심판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하느님의 계획을 파라오에게 알립니다. 하느님께서 이집트 땅의 모든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를 모조리 죽음으로 내모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맏아들과 맏배는 아무도 죽음을 겪지 않으리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이집트인과 이스라엘인을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11,7 참조). 하느님께 속한 것, 곧 거룩한 것을 속된 것과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파라오와 신하들이 먼저 일어나 모세 앞에 엎드려 제발 떠나 달라고 청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땅을 떠날 것입니다. 모세는 이런 말을 전한 뒤 파라오에게서 떠납니다.

 

 

은붙이와 금붙이

 

11,1-8의 열 번째 재앙에 대한 예고를 읽다 보면, 다소 어색한 대목을 만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내쫓기듯 떠나게 될 터인데, 그때 은붙이와 금붙이를 요구하라고 하느님께서 명하시는 대목입니다(11,2-3 참조). 다소 뜬금없어 보이지만 이미 창세기에서 들어 본 적이 있는 내용입니다.

 

‘재앙’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창세 12,10-20을 보면, 기근이 들어 나그네살이하려고 이집트에 내려간 아브라함의 아내를 파라오가 탐하다가 큰 재앙(‘네가’)을 입는 이야기를 만납니다. 아브라함은 재앙을 겪은 파라오에게서 양과 소와 수나귀 등 많은 재물을 얻어 이집트를 떠납니다. 아브라함이 네겝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탐하다가 큰 재앙을 입게 된 아비멜렉에게도 양과 소, 남종과 여종들을 얻습니다(창세 20,1-18 참조).

 

이 두 이야기에서 파라오나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낳을 사라를 탐하다가, 곧 하느님의 계획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다가 큰 재앙을 당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재앙을 내려 당신의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하십니다. 이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큰 재물을 얻습니다.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 덕분에 얻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느님의 은총 덕에 타인의 재물을 바탕으로 자리 잡은 민족입니다. 탈출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방해하는 파라오와 이집트인들에게 마지막으로 큰 재앙을 내리십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은붙이와 금붙이, 옷가지 등을 얻습니다(12,35-36 참조).

 

이 재물은 약속의 땅에서 하느님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곧 주님의 성소를 짓고 그분을 섬기며 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재물이 이스라엘에게 걸림돌이 됩니다. 마음이 굳어진 그들이 하느님을 위해 마련된 재물로 수송아지 상을 만들기 때문입니다(32,1-6 참조). 하느님을 위해 마련된 재물로 우상을 섬겨 하느님의 계획을 방해한 이스라엘도 결국 큰 재앙을 당합니다(32,15-24 참조).

 

 

또 다시 편집한 흔적이?

 

11,9에서 하느님께서는 파라오가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 주십니다. 그런 뒤 뜬금없이 모세와 아론이 기적을 일으킨 과거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어떤 성경 번역(NIV)의 경우 11,9-10이 예전 이야기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회상 이야기’라고 여겨 이렇게 번역합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었다. … 모세는 이 모든 기적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이는 히브리어 문법에 맞지 않으므로 올바른 번역이 아닙니다. 결국 이 대목은 여러 자료를 편집하다가 생겨난 흔적이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11,9-10이 언급되고 나서 이야기의 분위기가 갑자기 전환됩니다. 파스카 축제와 무교절에 대한 세부 지침이 제시되기 때문입니다(12,1-20 참조). 그래서 11,9-12,20을 모조리 빼버리면 이야기가 좀 더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모세가 파라오에게 하느님의 계획을 알려 준 뒤, 이스라엘의 원로들을 불러 파스카 축제의 세부 준비 사항을 알려 주는 대목으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무교절 규정을 어길 때의 처벌을 제시하는 구절에는 ‘본토인’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누룩 든 것을 먹는 자는 이방인이든 본토인이든 누구든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잘려 나갈 것이다”(12,19). 이에 따라 12,1-20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에야 적용된 규정으로 보입니다. 성경 편집자가 자기 시대에 사용된 규정을 탈출 이야기 속에 넣었다는 말입니다. 파스카 축제와 무교절이 이미 탈출 사건 때부터 이어져 왔음을 부각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파스카 축제와 무교절

 

파스카 축제는 니산 달 14일에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서 마련한 짐승을 잡은 뒤, 그 피를 받아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는 의식, 그리고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서둘러 먹는 의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어로 ‘페샤’라고 불리는 파스카는 ‘건너뛰다’, ‘통과하다’는 의미를 지닌 ‘파샤’에서 나온 말로 여겨집니다. 이 축제와 더불어 일주일 동안 무교절을 지내는데, 이 기간에는 급하게 이집트를 떠났던 선조를 생각하면서 누룩 없는 빵을 먹습니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파스카, 무교절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공관 복음서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 파스카 만찬이었다고 전하고(마르 14,12-16; 마태 26,17-19; 루카 22,7-13 참조), 요한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때가 파스카 전날이었다고 전하여 이견을 보입니다(요한 19,14.31 참조). 그러나 네 복음서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파스카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집트 탈출 사건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한 예수님 파스카 사건의 예형(例型)입니다.

 

 

파스카 축제의 준비와 열 번째 재앙(12,21-42 참조)

 

모세는 앞서 언급한 규정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스카 축제를 준비시킵니다. 주님께서 이집트인들을 치러 지나가다가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른 피를 보시면, 그 문을 거르고 지나가실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명령에 따라 파스카 축제를 준비합니다. 이집트인들에게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의 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의 축제일이 됩니다.

 

이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에 따라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십니다. 그러자 파라오는 비로소 모세와 아론을 불러 제발 떠나 달라고 말합니다. 양과 소도 모두 가져가서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자신을 위해 복을 빌어 달라고 청합니다. 이집트인들 역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떠나 달라고 간청합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은 빵 반죽이 부풀기도 전에, 반죽 통째로 어깨에 둘러메고 이집트 땅을 서둘러 떠납니다. 은붙이와 금붙이와 옷가지를 요구하여 이집트인들을 죄다 털어 버립니다. 탈출기는 이렇게 라메세스를 떠난 이들이 장정만도 육십만 가량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살게 된 지 사백삼십 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되게끔 만들어 주는 축제

 

열 번째 재앙과 파스카 축제, 무교절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탈출기는 이 축제와 무교절에 대해 좀 더 자세한 규칙을 제공합니다(12,43-13,16 참조).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이집트 땅에서 구해 내셨는지, 곧 주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의 하느님임을 드러내셨는지 기억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은 매년 이 축제를 거행하면서 자신의 기원과 신원을 확인합니다. 파스카 축제와 무교절은 이스라엘 후손이 다시금 이스라엘 백성이 되게 하는 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날마다 미사를 거행하면서 예수님의 구원 업적을 기억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원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원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탈출기를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으로 이끄셨는지 되돌아보며 우리의 신원을 확인하도록 합시다.

 

* 염철호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우리 선조들이 전해 준 이야기》(공역) 등이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월호(통권 466호), 염철호 사도 요한]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