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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 구유도 목자도 없는 성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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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14 조회수926 추천수0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 구유도 목자도 없는 성탄(Weihnachten ohne Krippe und Hirten)

 

 

주님 탄생 대축일 전야 미사

 

주님 성탄 축제의 전례에는 루카 복음서의 영향이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는 성탄의 본래 복음이 루카 복음서 2장 1-20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복음서 대목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칙령, 구유, 갓난아기를 싼 포대기, 목자들에게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전갈, 갑자기 나타난 하늘 군대의 찬미 등 우리에게 친숙한 성탄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루카 복음서의 이 대목은 엄청난 영향을 주었고, 그리스도교의 성탄 축제는 이 대목을 빼놓고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전례는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한층 더 신중하고 분별이 있습니다. 곧 성탄과 관련해 교회 전례는 루카 복음서의 이야기와 그 장면들만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에서는 요한 복음서의 ‘머리글’(요한 1,1-18)이 봉독됩니다. 이 머리글은 루카 복음서의 이야기와는 신학적으로 전혀 다른 면을 강조합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바로 앞에 위치한 ‘전야 미사’에서는 신자들에게 마태오 복음서의 성탄 이야기가 제시됩니다. 이 이야기도 루카 복음서 2장 1-20절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러니 여기서 이 마태오 복음서의 성탄 이야기를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습니다. 루카 복음서의 성탄 이야기도 결코 목가적인 이야기가 아니지만, 마태오 복음서의 성탄 이야기는 더더욱 서정적이고 평화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태오 복음서의 성탄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탄생 자체는 그저 짧은 구절로 간단히 언급될 뿐입니다(1,25 참조). 게다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칙령, 구유, 갓난아기를 싼 포대기, 목자들에게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전갈, 갑자기 나타난 하늘 군대의 찬미에 관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예고도 마리아가 아니라 요셉에게 전달됩니다. 꿈에서 요셉이 그 예고를 듣습니다(1,20-21 참조).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바로 요셉이 주인공입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중요한 기본적인 물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은 어떻게 오시는가?(1,21 참조) 달리 말해, 메시아는 세상에 어떻게 오시는가?(1,16 참조) 이는 동시에 이런 물음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메시아의 백성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 두 물음은 서로 뗄 수 없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서로 하나로 묶인 이 두 물음에 세 가지 답변을 줍니다.

 

 

메시아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마태오 복음서가 제시하는 첫 번째 답변은 “메시아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태오 복음서가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의 47명의 이름이 나열된 긴 족보를 통해 그런 말을 합니다. 예수님까지는 말하자면 앞서 긴 역사가 존재합니다. 아브라함 이래로 계속된 하느님 백성의 역사가 그것이지요. 이 역사를 가리켜 ‘전사前史’라는 말을 쓰는 것은 본래 맞지 않습니다. 이 역사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는 예수님이 선 토대이고, 그분의 뿌리입니다. 수백 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가 없었다면 예수님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안에서 믿음을 지키는 수많은 이들의 충실함이 없었다면, 구약 하느님 백성의 얽히고설킨 긴 역사가 없었다면, 메시아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역사에 바로 룻과 같은 이방 여인도(1,5 참조), 우리야와 같은 죄 많은 여인도(1,6 참조) 포함됩니다.

 

똑같은 의미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없었다면, 교회의 역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를 가리켜 올바르게도 ‘메시아 백성’이라고 부릅니다(「교회 헌장」 9항 참조). 마태오 복음서는 메시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늘 메시아 백성을 함께 염두에 둡니다. 이는 이미 구약성경에서 그러합니다. 아담을 이야기할 때, 아담은 동시에 온 인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동시에 그 후손을 포함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와 동일하게, 메시아는 언제나, 하느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메시아 백성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순전히 이스라엘만의 업적이 아니다

 

메시아와 그 백성은 오랜 역사를 거쳐 도래합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생겨납니다. 예수님과 그분을 따르는 이들에 의해 이 역사가 중단되는 게 결코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님과 그분을 따르는 이들에 의해 그 역사가 충만함에 이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다고 해도, 메시아와 그 백성이 순전히 이스라엘만의 업적인 것은 아닙니다.

 

메시아와 그 백성이 순전히 이스라엘만의 업적이 아니라는 게 바로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은 어떻게 오시는가?” “메시아는 세상에 어떻게 오시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마태오 복음서의 두 번째 답변입니다. 예수님은 그저, 아브라함 이래로 이어진 모든 역사의 총합과 그 결과에 지나지 않는 분이 아니십니다. 마태오 복음서의 족보에서 길게 이어지던 출생의 나열은 예수님에 이르러 갑자기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입합니다. 예수님에게서는 더 이상 “야곱은 요셉을 낳고 요셉은 예수를 낳았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메시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1,16)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조금 뒤에, 마리아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합니다(1,20 참조).

 

이로써 마태오 복음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마태오에 따르면, 이스라엘 역사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예수님은 이 백성의 가장 좋고 가장 귀한 결실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분은 이스라엘에게 하나의 기적과 같습니다. 그분과 같은 이가 세상에 오는 것은 순전히 은총, 순전히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인간도 계획하거나 만들어낼 수 없고, 스스로에게서 끄집어낼 수도 없는 선물입니다.

 

이와 동일하게, 마태오 복음서의 의미를 따라 이런 말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곧 이스라엘 없이는 교회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종말론적 이스라엘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회가 순전히 이스라엘 역사의 총합인 것만은 아닙니다. 교회는 이를테면 새것입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교회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서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곧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은 어떻게 오시는가?” “메시아는 세상에 어떻게 오시는가?”라는 물음에 세 번째 답변을 줍니다. 그 답은, 하느님 백성이 스스로 자기 메시아를 만들어낼 수 없다면, 백성은 결국 그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분은 오실 수 없습니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이 ‘받아들임’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이루어집니다. 마리아는 결정적인 말을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마태오 복음서도 동일한 내용을 전합니다. 하지만 이는 오롯이 요셉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마태오 복음서의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마태오는 여기서, 메시아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메시아 백성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에 대해서도 아주 세심한 숙고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소녀들은 보통 12-13세가 되면 약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약혼은 법적으로 이미 혼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약혼 후 1년이 지나면, 신랑이 와서 소녀를 자기 부모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녀를 ‘데려가는 것’ 자체가 가정 공동체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에 따르면, 요셉은 어느 날,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데려오기 전에 마리아가 이미 임신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됩니다(1,18 참조). 토라의 율법에 의하면, 이 상황에서 요셉에게 주어진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약혼녀를 법적으로 고발하는 것입니다. 곧 두 사람의 증인을 동원해 자신의 약혼녀가 자유로이 다른 남자와 내통했음을 증명하면 됩니다. 두 사람의 증언이 실제로 들어맞을 경우, 마리아는 돌을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신명 22,23-24 참조). 하지만 요셉에게 이를 증명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혼인을 파기하는 것입니다. 곧 신명기 24장 1절의 규정에 따라 마리아에게 이혼 증서를 써주면 됩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이 두 번째 가능성에 대해 말합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1,19) 요셉은 마리아에게 이혼 증서를 써주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말은, 그가 토라에 충실한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마태오 복음서에 따르면, 요셉은 유다인으로서 시나이의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는 토라의 규정들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가 일상에서 추구하는 삶은, 율법 안에 명문화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마태오 복음서 1장 20-25절에 매우 의미 있는 신학적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곧 마태오에 따르면, 신중하게 토라를 따라 사는 삶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마태오는 말합니다. 이스라엘 안에 메시아라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이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새롭게 행동하실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은 하느님 백성이 스스로를 내려놓고 새것을 받아들이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이 사실을 마태오 복음서는 아주 선명하게 표현합니다. 곧 요셉은 의로운 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토라를 잘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지금 그를 인도하려는 천사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는 마리아를 자기 부모 집으로 데려와야 합니다. 물론 그는 아직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1,20 참조). 의로운 것도 좋고, 토라도 좋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무엇인가 본질적인 것이 추가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로 지금 오늘에 믿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 천사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 하느님의 살아 있는 섭리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 말입니다.

 

요셉은 순종합니다. 마태오 복음서의 이야기는 끝에 가서 명확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1,24) 그리하여 이제 메시아가 세상에 올 수 있습니다. 아니 메시아만이 아니라, 메시아 백성도 세상에 가능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메시아 백성도 내적으로 동일한 법칙에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곧 종말론적 이스라엘인 메시아 백성은 전적으로 토라에, 주님의 계명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교회는 어떻게 자신이 메시아 백성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자신이 ‘그리스도인’, 곧 메시아의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살아 있는 뜻에 따라 행동할 때뿐입니다. 그분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내어맡기고, 날마다, 아니 매 순간마다 하느님의 행동하심을 살펴 그에 응답하는 삶을 살 때뿐입니다. 그리 될 때만 교회는, 곧 우리는 참으로 성탄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백성을 가리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이사 62,5)

 

게르하르트 로핑크(Gerhard Lohfink) - 세계적인 성서학자이자 사제로, 독일 튀빙엔대학교에서 신약성서 주석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가톨릭통합공동체(katholische Intergrierte)에서 복음 정신에 따라 살며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국내 출간된 저서로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예수마음코칭』 『주님의 기도 바로 알기』외 다수가 있다.

 

* 번역 : 김혁태 - 전주교구 소속 사제로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Bible Insight) : 이 칼럼은 저명한 성서신학자인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가 매월 『생활성서』 독자들을 위해 보내오는 글로, 성경 안에서 길어낸 신앙과 삶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

 

[생활성서, 2018년 12월호,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 김혁태 신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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