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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일상에서 열매 맺는 예수님의 비유: 복권 당첨 - 하느님의 초대 (1)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192 추천수0

[일상에서 열매 맺는 예수님의 비유] 복권 당첨 - 하느님의 초대 (1)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마태 25,14-15).

 

한 선배 신부가 농담 어린 말을 건넨 적이 있습니다. “복권에 당첨되면, 우선 절반을 교구에 기증한 후에 ‘당분간만 저를 찾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주교님께 말씀드리겠다.” 요즘같이 경기가 어렵고 불안할 때면 사람들은 복권에 당첨되는 상상을 할 것 같습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당첨된다면 어떻게 사용할지 한번쯤 상상해 보았을 법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한 첫 질문은 ‘복권 당첨’입니다. 뜻하지 않게 큰돈이 생겼을 때의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복권에 당첨된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에 청년들의 대답은 다채로웠습니다. “먼저 사직서를 내고, 고급 승용차를 사고, 나머지는 은행에 넣어 두겠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대답입니다. 더 구체적인 대답을 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5억 원은 비영리단체에 기부하고, 5억 원은 가족에게 주겠다.” “건물을 사서 1층에는 커피점과 꽃가게, 2층에는 와인바를 열겠다.” 여러분은 복권이 당첨된다면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하겠습니까?

 

오늘 비유에서 주인은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고 떠납니다. 각각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를 주고 떠납니다. 이 비유에서 탈렌트라는 단어는 개인의 능력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탈렌트는 귀금속의 무게를 재는 단위로 금전적 가치를 나타냅니다. 한 탈렌트는 육천 데나리온의 값어치를 지니고, 한 데나리온은 최소한 하루 품삯이라는 점을 계산해 보면, 주인은 실제로 엄청난 금액을 맡기고 떠난 것입니다. 종들에게 매우 큰 책임을 맡겼다는 뜻입니다. 세간의 표현대로 종들은 로또 맞은 것입니다. 그러나 각자의 삶이 달랐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 종과 두 번째 종은 매우 바빴습니다. 맡겨진 탈렌트로 ‘거래’를 하였습니다. 장사를 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종은 돈을 잃어버릴까 걱정하여, 즉 나중에 벌을 받을까 ‘두려워’ 한 탈렌트마저 땅 속에 묻어 둡니다. 이것은 고대 사회에서 보물을 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주인은 돌아와서 처음 두 종에게는 칭찬을 했지만, 마지막 종에게는 화를 냈습니다. 첫 번째 종과 두 번째 종은 ‘위험’을 감수하고 거래하는 쪽을 ‘선택’했지만, 마지막 종이 보인 삶의 선택은 게으름입니다. 그의 잘못은 책무를 다하지 않고 인생을 낭비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재화를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행위를 선택한 이면에는 그 사람의 ‘성품’과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주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던 마지막 종은 앞선 동료들과 다른 행동을 선택했습니다. 선택은 단순한 결심의 차원을 넘어 한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와 마음 상태를 보여 줍니다. 선택에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케빈 페로타에 의하면, 오늘의 비유에서 중요한 요소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매일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에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그분이 베푸시는 기쁨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두려워하며 기다리다가 다른 이들의 기쁨을 쳐다보기만 할 것인가, 그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묻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도 게으른 종으로 전락하여 멀찌감치 떨어져서 주님의 일을 바라보기만 하는 구경꾼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인생을 조심스럽게 사는 자세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하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그렇게 태만하게 살 때, 신앙에서도 마지막에 잃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이 비유를 우리 삶에 적용해 볼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첫 번째 종과 두 번째 종은 손해를 감수했던 선택으로 상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위험을 감수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된 경험을 이야기해 봅시다. 그리고 여러분의 전 생애를 걸고 예수님을 따르는 데 두려웠던 적이 있습니까? 무엇을 잃을까 두려웠습니까? 비유의 말씀은 여러분의 두려움에 대해서 어떤 조언을 줍니까?

 

낙태에 대한 갈등을 토로한 자매가 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셋째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을 뜻했다고 합니다. 자녀를 낳기로 한 것은 어느 때보다 두려운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참 귀한 선택이었다는 심정을 고백합니다. 또 나이가 들수록 안전한 것을 추구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청년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신학교를 가려고 했지만, 공부와 직장 생활을 해 보고 가라는 부모님의 권유를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제서야 낯선 신학교 생활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청년은 조금 늦었지만, 지난 1년간 성경 나눔을 마치고 지금 다시 신학교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합니다. “주님, 당신께서 제 삶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면서. 두려움의 문제는 근원적으로 누구를 더 의지하고 있는지를 반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위험을 감수하게 될까요? 사랑의 체험과 마음 상태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가 아프거나 힘들 때 위험을 감수합니다. 자녀는 그런 부모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자유를 느낍니다. 노예는 두려워하지만 자녀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비유에서 엄청난 선물을 받고 기쁨으로 살았던 종과 두려움으로 살았던 종의 차이는 근원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는지의 여부에 있습니다. 자녀 됨의 정체성과 우리를 초대한 분이 누구신지를 알았던 종은 자유로웠고, 주인이 감당하지 못할 책무를 줬다며 두려워한 종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자각(영성 생활)이 우리에게 다른 행위(도덕적 삶)를 ‘선택’하게 합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 비유의 질문은 결국 내가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여기는지 묻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만이 손해를 감수합니다. 복권에 당첨되면 어떤 일을 하겠느냐는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채로웠지만,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를 어떻게 나누겠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하기 곤란했던 제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두 질문은 결코 다른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 거저 받은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고, 누가 주신 선물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미 하느님 아버지께 엄청난 사랑의 초대를 받았지만(영적 체험) 그것을 두려워하며 일상에서 그에 응답하지 않는다면(도덕적 삶), 우리는 아직 제자 되어 살아가는 길에서 충분한 ‘선택’을 하지 못한 것인지 모릅니다.

 

사랑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께, 여러분은 오늘 어떤 응답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 최성욱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1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미국 산타클라라 대학에서 성윤리를 전공하였으며,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역서로 리처드 M.굴라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 그리스도인의 삶과 제자 됨의 영성》(2015) 등이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0월호(통권 475호), 최성욱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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