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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 말씀 피정1: 탈출기 여정을 떠나기에 앞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7,274 추천수0

탈출기 말씀 피정 (1) 탈출기 여정을 떠나기에 앞서

 

 

하느님 말씀인 성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을 하나 꼽으라면 탈출기를 들 수 있습니다. 탈출기는 아브라함과 이사악, 그리고 야곱과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신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집트 땅에서 힘겹게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건져 내신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이 이집트 탈출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것, 곧 ‘임마누엘 하느님’임을 보여 준 사건입니다. 그런데 탈출기는 탈출 사건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고,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 위에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은 사실도 생생히 전해 줍니다. ‘탈출’과 ‘계약’, 이는 구약성경의 전체를 흐르는 큰 주제입니다. 탈출기 여정을 떠나기에 앞서 먼저 탈출기에 대한 기본 내용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이름들의 책

 

이스라엘 사람들은 탈출기를 ‘워엘렛 셔못(그리고 이것들은 이름들)’, 줄여서 ‘셔못(이름들)’, 또는 ‘세페르 셔못(이름들의 책)’이라고 부릅니다. 과거에는 책의 첫 단어나 문장을 제목으로 삼곤 했는데, 탈출기 히브리어 본문이 ‘워엘렛 셔못’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탈출기란 이름이 붙었을까요?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이들이 이 책에 ‘엑소도스’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인데, 이 말이 바로 ‘탈출’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탈출’이란 말에 이집트를 뜻하는 ‘애굽’이란 말을 붙여 ‘출애굽기’라고 번역했습니다. 새 번역 《성경》에서는 ‘엑소도스’를 글자 그대로 번역해 ‘탈출기’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잠깐! 그리스를 여행하다 보면, 고속도로 곳곳마다 ‘엑소도스(ΕΞΟΔΟΣ)’라는 표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고속도로 출구를 의미합니다.

 

 

탈출기의 구조

 

탈출기의 전체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파라오의 지배 아래 있는 이스라엘(1,1-16,36)

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해방 계획을 드러내심(1,1-6,27)

② 파라오의 방해로 인해 그 해방이 즉시 오지 않게 됨(6,28-11,10)

   - 외적 방해: 파라오의 마음이 딱딱해짐

③ 약속의 실행: 하느님께서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당신 백성을 끌어내심(12,1-16,36)

 

2) 시나이 산에서의 이스라엘: 하느님께서 당신의 위대함을 드러내심(17,1-24,11)

3) 백성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24,12-40,38)

① 성소 건립을 위한 지침(24,12-31,18)

② 이스라엘의 죄(32-34장)

   - 내적 방해: 이스라엘의 마음이 딱딱해짐

③ 야훼의 성소 건립(35,1-40,38)

 

이 구조는 로마 성서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바르비에로 신부가 제시한 것입니다(아직 책으로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이 구조에서 볼 수 있듯 탈출기는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파라오의 지배 아래 있던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뒤, 시나이 산에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며 당신만이 참으로 위대한 하느님임을 드러내시고, 또 만남의 장막에서 그들과 함께 머무르시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파라오가 하느님을 방해하기도 하고, 백성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계획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든 방해 요소를 없애시고 모세를 통해 당신의 계획을 완성하십니다.

 

 

탈출기의 중심 주제

 

탈출기라는 제목 때문에 이집트 탈출 사건이 본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탈출 사건 자체보다 ‘왜 탈출하게 되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셨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기 위해서입니다. 탈출기에서 이집트 탈출과 관련된 분량은 열다섯 장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어떻게 계약을 맺으시는지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결국 탈출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을 단순히 기억하는 책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온전한 계약을 기억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세 오경(창세기·탈출기·민수기·레위기·신명기) 전체를 놓고 본다면, 가장 길게 다루어지는 부분이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입니다. 계약과 관련된 대목은 탈출기에서 시작해서 민수기까지 이어집니다.

 

 

약속의 성취

 

계약과 관련하여 한 가지만 더 지적하고자 합니다. 탈출 사건과 계약 사건은 모두 하느님께서 창세 15,13-21에서 아브라함에게 밝히신 당신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이 장면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남의 나라에서 나그네살이를 하지만, 그의 후손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탈출 2,23-25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맺으신 바로 그 약속을 기억하시어 탈출 사건과 계약 사건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이렇게 본다면 창세기에서 이루어진 하느님과 선조들의 약속 또한 탈출기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탈출과 계약 사건은 하느님께서 아담, 노아,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약속과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그것은 바로 땅에 대한 약속과 그 땅을 차지할 자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뒤 그들에게 땅과 자손을 약속해 주십니다(창세 1,28 참조). 물론 인간의 죄 때문에 당신이 내려 주시는 복이 이루어지지 않을 상황에 처해지기는 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약속을 취소하지 않고 노아(창세 9,1-17 참조), 아브라함(창세 12,1-3 참조), 이사악, 야곱을 통해 그 약속을 이어 가십니다. 무작정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분은 아니기에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계명을 지켜야 하지만, 잘못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매달리고 그분께 울부짖으며 돌아서기만 하면,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어 줄 분이십니다. 탈출기는 하느님의 계획이 탈출 사건과 계약 사건으로 비로소 이루어지기 시작했음을 알려 줍니다.

 

 

모든 이야기는 말씀으로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탈출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말씀드리면서 첫 번째 피정을 마칠까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결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관련된 내용으로 읽지 못한다면, 구약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8항이 이야기하듯, 그리스도교는 경전의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곧 살아 계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종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그 결과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귀결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면 탈출기에서 우리는 어떤 부분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할 수 있을까요?

 

신약성경 저자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것을 이집트 탈출 사건과 연결합니다.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 때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도 그렇고, 시나이 산 계약을 기념하는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사도 2장 참조)도 그렇습니다. 모든 내용이 탈출기와 연결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우리 모두 죄에서 벗어나(탈출), 하느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고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고 전합니다(로마 6,1-14 참조). 믿음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야말로 참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분명히 밝힙니다(로마 4,13-25 참조).

 

마지막으로 복음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약속된 땅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땅과 자손과 관련된 하느님의 약속이 탈출 이야기에서 시작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전히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탈출기를 읽고 묵상한다는 것은 결국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학문으로 성경을 연구할 때에는 달라야 하겠지만, 피정이라는 제목으로 탈출기를 읽는 이상 우리 이야기의 끝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이 피정에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탈출기를 통해 걷는 이 여정이 여러분의 신앙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 염철호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월호(통권 454호), 염철호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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