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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 말씀 피정24: 참지도자 모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278 추천수0

탈출기 말씀 피정 (24) 참지도자 모세

 

 

탈출기 말씀 피정의 마무리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황금 수송아지로 인한 계약 파기와 모세의 중개를 통한 재계약 이야기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황금 수송아지 상 이야기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사십 일을 머무는 동안(24,12-18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불안에 떱니다. 자신들을 이끌던 모세가 보이지 않자, 아론에게 자신들을 이끌 신을 만들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아론은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가져 올라가게 하시어 당신의 일을 위해 쓰고자 하셨던 금 고리들을 모아 수송아지 상을 만든 뒤,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32,8)라고 선포합니다. 누구도 볼 수 없는 하느님(33,20 참조)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사람들이 안심하도록 만든 뒤, 그 앞에서 야훼, 곧 “주님을 위한 축제”(32,5)를 벌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론과 백성의 이러한 우상숭배를 보시고 크게 진노하십니다. 그러면서 모세에게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32,7)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가” 데려온 “모세의” 백성으로 부르신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데려오신 분이 하느님이시고,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지금 그들을 모세의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사실, 이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앞서 말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이 대목 시작에서 자신들을 데리고 올라온 이가 모세라고 고백합니다(32,1 참조). 그들은 여러 가지 기적적인 사건을 통해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모세가 자기들을 이집트에서 빼내어 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백성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뿐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섭섭한 감정이 느껴집니다.

 

 

하느님의 진노와 모세의 중개

 

파라오는 처음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마음이 딱딱해져 하느님의 계획을 방해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성이 목이 뻣뻣해져 하느님의 계획을 틀어놓습니다. 굳은 마음을 지닌 백성이라는 주제는 성경 전체를 흐르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결국, 이런 백성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진노를 터트리십니다. 모세는 진노하시어 백성을 버리려 하시는 하느님께 애원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다시 바로잡아 드립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것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시며, 이 백성은 자신의 백성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이라고 말합니다(32,11). 그러면서 당신 자신을 걸고 후손을 별처럼 많게 해 주고 땅을 차지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아브라함, 이사악, 이스라엘을 기억해 달라고 청합니다(32,13 참조).

 

약속을 기억하시는 하느님이라는 주제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창세 15,13-21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당신 계획을 밝히셨습니다. 이 약속은 오직 당신에게만 매인다는 의미로, 당신 자신이 쪼개진 짐승들 사이로 지나가신 바 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 역시 하느님과의 계약을 지켜야 하지만, 이 계약은 하느님 편에서 하신 일방적인 약속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어기시면, 당신의 이름이 민족들 사이에서 더럽혀지게 되는 그런 약속입니다. 모세는 하느님께 바로 이 점을 들어 말씀드린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보시고 진노하시어 그들을 처벌해 버리신다면, 이집트인들까지 하느님을 두고 비아냥거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모세의 말을 들으시고 재앙을 거두십니다.

 

 

아론의 변명과 모세의 단죄

 

하느님께서 마음을 돌리시어 재앙을 거두시자, 하느님을 대신하여 모세가 백성에게 분노를 터트립니다. 모세는 우상 숭배 장면을 보자마자 분노가 치밀어올라 하느님이 직접 만드신 두 증언판을 내던져 깨 버립니다. 하느님은 재앙을 거두셨지만, 모세 편에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이 깨어졌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모세는 수송아지를 불에 태우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 물에 뿌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 합니다. 그런 다음 모세는 아론에게 백성을 도대체 어떻게 방치하였기에 그들이 이렇게 큰 죄악을 저지르도록 두었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대답이 가관입니다. 아론은 모세에게 백성이 악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알지 않았느냐며, 모든 것을 백성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고는 금을 그들 손에서 받아 거푸집에 부어 직접 자신이 수송아지 상을 만들었음(32,4 참조)을 부인하면서, 자신이 금붙이를 불에 던졌더니 수송아지가 나왔다고 변명합니다(32,24). 백성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감싸려던 모세와 아론은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아론을 추궁한 뒤 모세는 백성을 바라봅니다. 그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한 아론 때문에 화가 났지만, 제멋대로 구는 백성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느님이 적들에게 이미 조롱거리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백성에게 결단을 요구합니다. 주님의 편에 서든지, 계속 주님의 적이 되든지 선택하라고 말입니다.

 

이때, 모세의 편에 선 인물들은 레위의 자손들뿐이었습니다. 비록 창세기에서는 폭력적인 집단으로 이름을 날리긴 했지만(창세 34,25-29; 49,5-7), 레위의 자손들은 모세와 아론이 속해 있던 지파로서 하느님의 것으로 성별될 그런 지파였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죄를 저지른 이들을 만나는 대로 죽이라고 명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날 백성 가운데 삼천 명 가량이 쓰러지게 됩니다. 사실 이집트를 떠나올 때 아이들을 빼고 걸어서 행진하던 장정만 육십만가량 되었던 점을 고려해 보면(12,37 참조), 삼천 명은 0.5%밖에 안 되는 수였습니다. 아마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큰 죄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편에서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의 단죄가 이루어진 뒤에야 비로소 죄에 대한 모든 처벌이 마무리됩니다.

 

 

모세의 두 번째 중개

 

증언판을 깨뜨려 계약을 원점으로 돌려 버린 모세는 다시금 하느님께 용서를 청합니다. 그러면서 백성을 용서해 주지 않으시려거든 당신의 책에서 자신의 이름도 지워 달라고 청합니다. 자기 생명을 걸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간구하는 모습에서 또다시 아론과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닌 모세를 발견하게 됩니다(32,31-33). 백성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면서도 그들의 죄를 물어 하느님을 대신해 먼저 벌을 내린 모세. 하지만 하느님과 백성의 관계가 더 이상 틀어지지 않도록 자기 목숨을 걸고 백성의 용서를 간청하는 모세. 정말 이상적인 지도자요 중개자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은 모세의 청을 듣고 당신의 천사를 보내 줄 테니 그 천사와 함께 시나이 산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고 명하십니다. 하지만 당신은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33,3)고 말씀하십니다. 그들과 같이 가다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없애버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께 다시 간청합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가지 않으시겠다면 누구를 함께 보낼지 알려 달라고, “당신의 길”(33,13)을 가르쳐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면서 이 백성이 하느님 “당신 백성”(33,13)이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는 하느님이 아니면 누가 이스라엘과 함께 가겠느냐는 외침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이런 모세의 모습을 보시고 마음을 바꾸시어 그의 간청을 들어주십니다. 당신이 직접 백성과 함께 가기로 결심하신 것입니다(33,17).

 

 

하느님의 현현과 계약 갱신

 

모세는 하느님께 확실한 징표를 받아 내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 청합니다. 그의 앞에 나타나시어, 다시 계약을 맺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시금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야훼라는 당신의 이름을 다시금 선포하시고, 당신이야말로 참으로 자비와 동정이 가득한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34,6-7) 계십니다. 만약 하느님이 자비와 동정이 가득한 분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진작부터 파멸되었을 것이 뻔합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매번 자애롭게만 돌보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계약을 어겼을 때에는 징벌을 내리십니다. 하느님은 결코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벌하지 않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34,7 참조).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신 뒤, 이스라엘 백성과 다시 계약을 맺으십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느님께서 돌 판에 당신의 계명을 적어 주지 않으시고, 모세가 계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직접 판에 기록하게 하십니다(34,28). 이렇게 계약이 이루어진 뒤 모세는 빛나는 얼굴로 산에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계약 말씀에 따라 성막을 만들고, 이스라엘 가운데 머무시는 하느님의 거처를 마련합니다. 이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다시금 이스라엘과 함께 머무시게 됩니다.

 

이 만남의 장막은 항상 구름으로 덮여 있었으며, 주님의 영광이 그 안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불 기둥이 구름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남의 천막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머무시는 것을 드러내는 표징이 되었으며,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에서 항상 그들과 함께했습니다. 모세는 이 성막 안에서 하느님께 말씀을 전해 들으며,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게 됩니다.

 

이제 탈출기 묵상을 마무리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하신다는 사실은 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탈출을 경험하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을 통하여 당신 약속의 역사를 끊임없이 이끌어가고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

 

* 염철호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우리 선조들이 전해 준 이야기》(공역) 등이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2월호(통권 477호), 염철호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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