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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관
작성자정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1-01-24 조회수6,133 추천수0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하느님은

어렴풋한 저 너머 ’어딘가’에 계시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구체적이고도 일상적인

삶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 삶의 바탕이요 중심으로 살아 계시는 분이셨다.

그러기에 그들은 그러한 그들의 하느님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으로 호칭하였다.

즉 ’지금 그리고 바로 여기’

그들의 역사 현장과

인격적으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언제나 살아 계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하느님관’은 흔히 생각하듯

신학자나 철학자들에 의해

사변적이고 이론적으로

창출되고 정립된 것이 아니다.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사건’을 비롯하여

갖가지 역사 사건을 겪으면서,

그를 통해 몸소 그들을 이끄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깊이 깨달으며 지니게 된

’신체험(神體驗)’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그 당시 고대 중근동 지역의

보편적인 ’신관’과는 전혀 구별되는

고유함과 독특함을 지니게 되었고,

동시에 우리가

’성서의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확인하듯

불멸의 생명력마저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들 이스라엘 백성이 드러내어 준,

달리 말한다면 하느님 자신이 스스로를 계시하신

’성서의 하느님’은

’영원한 젊음’이라 표현될 만큼

역동성을 지닌 존재이시다.

그것은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마태 22.32)이요,

"모든 것을 살리시는 분"(루가 9,55)

곧 "생명의 존재"(신명 30,19)라는

그들의 체험적 확신에서 연유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그들의 세계관 및 우주관

곧 창조관 역시 그 근거를 마련한다.

"삶과 생명의 주관지"로서의 하느님은

동시에 "우주만물의 창조주"로도 되신다.

’창세기’의 기본적인 사상의 축은

다름 아닌

"그들 이스라엘 백성의 삶과 함께 하시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은

바로 이 우주를 지으시고 움직이시는

삼라만상의 창조주요 주재자이신

그 분이시다"라는 신앙 고백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본회퍼의 표현대로

"세계에 대한

우리의 부족한 지식을 채우는 분도 아니요,

개인적인 문제와 인간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의 원천인 분도 아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은 우리가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에야

만나게 되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반대로 그분은

우리 실존의 바탕이고 중심이시며,

비록 우리 자신이

그분을 ’향해서 가고’ 있고

일상생활의 울타리를 넘어

그분께 이른다고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출발하고

우리의 실존과 현실의 근본바탕인 그분 안에서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이다.

참으로 그분은

알려지지 않는 그늘에 숨어 계셔서

우리가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멀리 밀려 나가는 그런 분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의 바탕 그 자체요,

우리 앎은 그분이 스스로를 보여주는 것,

다시 말해 그분은

실재하는 모든 것의 원인이 아니라

실재 그 자체가

그분의 현현이라는 말이다"(’옥중서간’에서).

다시 말해 성서가 증거하는 하느님은

인간의 욕구와 열망의 부스러기가 투영되어

우리들의 삶의 주변에 세워지는

우상(偶像)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노동,

동료들의 관계,

아내와 자식에 대한 사랑,

놀이와 즐거움 등등

우리의 모든 삶 한가운데서

현존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관’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성서를

아주 현실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성서는 철학적인 이론서도 아니요,

동화나 전설 같이 꾸며낸 이야기책도 아니다.

성서는

역사나 사건과 같은 현실을 통해 그들이 만난,

달리 말한다면

하느님이 자기를 계시하신 체험을

신앙적인 관점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러기에 성서 속의 세계는

시대를 뛰어넘어

바로 우리 시대의 이야기가 되고,

성서 속의 인물은

성서를 접하는

지금의 우리 자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동시에 성서 속의 하느님은

다름 아닌 우리에게 말을 건내시고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는

’지금 바로 여기’의

우리 하느님도 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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