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Re:마르코복음 11장 12절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다 부분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문의드립니다.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16 조회수4,075 추천수0 신고


 성경을 보실 때는 한 문장, 한 단락만 보지 마시고

앞 뒤 문맥을 보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마르코복음 11장은 10장에서 수난 예고후 예루살렘 입성하신 후 벌어지는 장면입니다.

성전정화 사건 앞에 붙어있는 무화과 나무 저주사건 이지요.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는 율법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봅니다.

오늘날 교회지도자들, 특히 성직자들을 빗댄다고도 보면 될듯하네요.

참 진리를 외면하고 교회의 몸집만 키우는 교회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영적 시장하심이 느껴집니다.

 

 이어서 정화 사건으로 이어지죠.

지금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우리 교회를 가만 두실까요?

채찍이 아니라 몽둥이로 패실듯 싶습니다.

잎만 무성한 교회, '말씀'은 빠지고 '말'들만 무성한 교회모습을 봅니다. 

좋은 묵상 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참고로보세요.



연중 8주 금 마르 11,11-25(2016.5.27)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마르 11,17) 

 

Cleansing of the Temple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배고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다음날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린 것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믿음을 두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행동은 예언적인 것으로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화과나무가 아니라 성전입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기대에 응답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기대했던 열매를 맺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고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믿음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믿음으로 기도하며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고, 형제들의 죄를 용서함으로써 자기 죄의 용서를 비는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배고픔’(11,12)은 육체적인 굶주림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서 정의의 열매를 애타게 찾으신 것이지요. 그런데 ‘무화과철이 아니었습니다.’(11,13) 곧 이스라엘은 이미 회개의 시기를 놓쳐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등지고 신앙을 거부한 탓에 ‘뿌리째 말라버렸습니다.’(11,12)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악행을 감추려고 성전을 강도의 소굴(11,17)로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하십니다. 한마디로 성전의 제사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만 하고 회개시키지 않음으로써 결국 성전을 세속적인 장터로 바꿔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품고 실천하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2코린 6,16)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하는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곧 기도할 때 내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그 뜻을 행동으로 담아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갈망하고 실천하는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미움이 아닌 하느님의 용서에 의지해야 하고, 그 용서를 받기 위하여 먼저 이웃과 화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정화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때문에’란 언어습관 하나를 바꿔보면 어떨까 합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때문에 화났다, ~때문에 기분 나쁘다, ~때문에 상처받았다, ~때문에 실수했다, ~때문에 미치겠다, ~때문에 잘되는 일이 없다, ~때문에 신앙생활도 못하겠다, ~때문에 살고 싶지 않다 등등의 말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죄를 드러내는 말일 뿐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지입니다. 

반대로 ‘때문에’란 표현을 긍정적으로 잘 사용한다면 정화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하느님 때문에 생명을 받았고,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삶의 이유를 발견하고 희망을 갖게 되었으며, 영신의 형제자매들을 선물로 받게 되었으며, 고통과 시련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느님의 성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 한국사회를 성전으로 바꿔나가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땅에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가 숨쉬도록 우리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불평등하며, 갈등과 불의가 만연해 있는가를 직시하며 모두의 공동선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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