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마태복음 13, 45~46 성경번역에 대한 의문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서채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27 조회수3,492 추천수0 신고
+ 찬미 예수님.

임의 의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읽다가 막히면 누구나 답답한 법이거든요.

본문에 대한 저의 초라한 묵상입니다.

 

1. 성경은 하느님 말씀

주지하시는대로 성경은 성령의 감도로 씌여진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하늘나라 언어로 직접 말씀하시면 인간이 알아듣지도 못할 뿐더러,

또한 구약에서 보면 그 음성이 우뢰와 같다 하여서 임이나 저나 직접 들으면 귀가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여 자비하시게도 주님은 적절한 성경 편저자들을 선택하시어 안전한(?) 방법으로

그들이 성경을 저술하도록 하셨습니다.

2. 인간 체험이나 경험의 한계

예수님께서는 태초부터 성부 하느님과 함께 하셨고, 그 분을 직접 뵌 분이라고

직접 언급하셨습니다. 천상의 세계에 대해서는 임이나 저나 아무 것도 모르니,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서울"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친구가 서울 갔다와서 남대문에 문턱이 없다 하였습니다.

그날 그 친구 다른 친구들한테 뭇매(?) 맞았습니다.

바보같이 두 눈 멀쩡히 뜨고도 그거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고 와서 거짓말 한다고....

저희는 그때까지 문턱 없는 대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3. 성경의 비유

예수님께서 천상 세계를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해 줘도 당시 사람들은 (어쩌면

현대인들도) 위의 이유로 이해가 불가했을 겁니다.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여 주님께서는 당시 인간의 상식 수준에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쉽게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비교(comparison)"가 아니라, "비유(simile)"로

즉 빗대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4. 상인 (merchant)과 진주

여기서 상인은 아마도 보석상이나, 무역업을 영위하는 사람같습니다.

물론 다른 형태의 업을 영위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장사꾼은 좋은 물건을 보면 사고 싶을 겁니다. 좋은 물건 잘 사서 잘 되팔면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으니까요. 강남에서 아파트 한 채 잘 사면 많은 차액 남길 수 잇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견물생심. 물건을 볼 줄아는 정확한 상지식. 본문의 장사꾼은 그 멋진 진주가 사고 싶어

그것이 눈 앞에서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소위 "지름신"이 임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그 진주 소유주가 부르는 가격을 맞춰줄 수중의 돈이 부족합니다. 그는 안달합니다.

혹시 다른 이가 사버리지나 않을까....

하여 부족한 돈을 만들려고 얼른 가서 가진 것들을 내다 팝니다. 그는 마음이 몹시 급할지도

모릅니다. 그가 안달하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돈을 만들어 그는 부리나케 다시 그 주인에게 가서 그 귀한 진주를 삽니다.

그는 몹시 흐뭇해 합니다. 만면에 미소를 띄면서....

5. 비유

주님께서 이 비유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제대로 알아 들어야

합니다.    

상인은 우리 자신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무엇이 가장 귀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다 가져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어느 부자는 그 해의 풍성한 소득을 곳간을 늘려 저장해 놓고 인생을 여유롭게 즐기며

살리라 했지만, 주님께서는 네 영혼이 오늘 밤 너를 떠난다 하셨습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저의 생명이 가장 소중합니다. 임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 가장 소중한 것이 오늘의 "진주"입니다. 그 진주의 소유주가 주님이십니다.

 

상인이 그 진주를 사기 위해 그가 가진 전부를 팔았듯이,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우리는

우리의 전부를 걸어야 합니다. 신앙은 이처럼 혼신을 다하여 전력투구하라는 것입니다.

상인이 간절한 마음으로 진주를 사듯이, 몸과 마음과 정신과 혼을 다하여 주님을 염원하고 섬겨야 합니다.

 

진리는 적당히 타협하거나 양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네 거룩한 신앙 선조들은 본인들

목숨까지도 초개처럼 버렸습니다. 한 발은 성당에, 다른 발은 사회에 딛고서 아차하면 발을

빼버릴 자세로는 주님께서 주시는 그 귀한 "진주"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나의 전부를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과 수족입니다.

확실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 나그네 살이가 끝나는 날  희미하게 보았던 것들을 얼굴을 맞대고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결국 진주로 비유되는 "영생"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앙 안에서 참 행복과 평화를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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