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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8: 불구자를 고친 베드로(사도 3,1-10)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11 조회수8,273 추천수0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8) 불구자를 고친 베드로(사도 3,1-10)


베드로 사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룬 첫 기적

 

 

예루살렘 성전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있던 불구자를 고친 이야기는 베드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첫 기적이다. 그림은 마솔리노(1383~1440), 불구자를 고친 성 베드로, 산타 마리아 델 카미네 성당 브란카치 경당 벽화. 이탈리아 피렌체.

 

 

루카는 예루살렘의 첫 신자 공동체 생활을 요약해서 전하고 나서(2,42-47)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사도들의 예루살렘 활동을 본격적으로 소개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불구자를 고친 이야기가 그 첫 번째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2,43)고 루카가 요약해서 전하는 내용의 구체적인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3,1) 오후 세 시는 성경 원문의 ‘제9시’를 우리 식으로 풀어 표기한 것이라고 합니다. 유다인들은 낮을 12등분해서 해가 뜬 뒤 한 시간이 지난 시각을 제1시라고 불렀습니다. 하루를 낮과 밤 절반으로 나눠 새벽 6시에 해가 뜬다고 보면 7시가 제1시가 되지요.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제9시는 오후 3시가 됩니다. 당시 유다인들에게 정해진 기도 시간은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는 이른 아침과 오후 3시 그리고 저녁 해 질 무렵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베드로와 요한은 유다인들의 기도 관습에 맞춰서 오후 세 시에 기도하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고 하겠지요.

 

그런데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있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그곳에 들어다 놓았던 것입니다.(3,2) “모태에서부터 불구자”라는 표현은 그 사람이 불구가 확실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날마다 성전 문앞에 들어다 놓았다는 것 역시 같은 뜻을 담고 있지만 이와 함께 그 불구자를 사람들이 배려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축한다고 하겠습니다. 

 

그 불구자는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고,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지요. 그 사람은 뭔가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는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봅니다.(3,3-5) 그 불구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자선을 청합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선을 청하는 것이 그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했을 때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입니다. 어쩌면 속으로 ‘이 사람들이 얼마나 큰 것을 주려고 하기에 자기들을 보라고 한다는 말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그러자 그는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서 걷습니다.(3,6-8ㄱ) 

 

뭔가 주려나 기대했던 그 불구자는 “나는 은도 금도 없다”는 베드로의 말에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 베드로는 깜짝 놀랄 말을 합니다. 일어나 걸으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베드로가 손을 잡아 일으키자 그는 벌떡 일어나 걷습니다.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기적은 베드로가 사도로서 행한 첫 기적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면서 베드로와 요한을 따라 성전으로 들어갑니다.(3,8) 껑충껑충 뛴다는 것은 불구였던 몸이 완전히 나았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 사람으로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정말로 뜻밖의 선물이자 은총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기쁨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값진 선물을 받았을 때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평생 불구로 지내며 구걸하며 살아야 했던 사람이 완전히 낫게 됐다면 껑충껑충 뛰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3,10) 날마다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불구자가 성하게 되어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을 봤으니 그럴 만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몸이 성하게 된 그 사람처럼 하느님을 찬미한 것이 아니라 경탄하면서도 경악합니다. 그 사람들이 베드로의 치유를 하느님의 업적이라고 여겼다면 하느님을 찬미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경악했다는 것은 하느님의 업적으로 여기기보다는 그냥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뜻이 더 강합니다. 뭔가 복선이 깔려 있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계속 살펴볼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설교에서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죄를 용서받으라고 설파했습니다. 이제 태생 불구자를 고치는 이야기에서 베드로는 그냥 “일어나 걸으시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촉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라고 말합니다. 

 

마르코 복음사가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7-18) 

 

루카 복음사가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서 선포되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루카 24,47) 여기서 “그의 이름으로”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를 말합니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 하는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하루를 마치면서는 그렇게 살았는지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3월 10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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