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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리문답 해설 (5): 사람
작성자이철희 쪽지 캡슐 작성일1999-04-10 조회수5,085 추천수1

제 4 장  사  람

 

 

  다음은 사람에 대한 교리를 찾아보는 순서입니다.  구약성서 시편 8장에 보면, 인간에 대한 찬사가 있습니다.   "1 야훼, 우리의 주여! 주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주의 영광 기리는 노래 하늘 높이 퍼집니다. 2 어린이, 젖먹이들이 노래합니다. 이로써 원수들과 반역자들을 꺾으시고 당신께 맞서는 자들을 무색케 하셨습니다. 3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보면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5 그를 하느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6 손수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발 밑에 거느리게 하셨습니다. 7 크고 작은 온갖 가축과 들에서 뛰노는 짐승들하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 물길 따라 두루 다니는 물고기들을 통틀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9 야훼, 우리의 주여! 주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이러한 찬사를 받을 자격을 갖춘 사람에 대해서 살펴볼 순서입니다.

 

  먼저 사람을 이루는 요소에 대한 것입니다. 36항과 37항의 내용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358-36. 사람은 무엇입니까? : <답>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결합한 자입니다.

358-37. 영혼은 무엇입니까? : <답> 영혼은 신령하여 불사불멸하는 체(體)이니, 육신과 합하여 그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몸과 마음(혹은 정신)으로 구성된 것을 사람이라 하기도 하고, 교리에서 말하는 것처럼 영혼[(국어사전)=육체와 구별되어 육체에 머물면서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과 육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오관으로 감지한 것만을 인정하고 싶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으면 있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두 가지 요소가 하나로 합쳐져 있을 때, 우리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 요소가 분리되면 죽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창조에 대한 것이 구약성서 창세기에 믿음의 고백으로 나옵니다.  눈에 보이는 인간 육신의 재료는 흙입니다.  흙으로 모양을 빚어 만드시고, 하느님이 그 모양에 숨을 불어넣어 주셔서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창세기 2,7)고 합니다. 이것이 신앙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기원입니다.  그리고 이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지어진 것(창세기 1,27)이라고 합니다.  바로 그 사실에 인간이 귀중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의미와 당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죽으면 흙에 묻는지도 모릅니다. 출발점으로 따지면, 흙인데 서로 다른 가치와 평가를 받는 것은 인간이 생각한 욕심이 거기에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구약성서를 따라가는 내용,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이 제대로 지켜지지 아니한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다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지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내용은 조금 전에 말씀드린 내용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음 세 가지 항목을 함께 읽겠습니다.  

 

358-38. 인류의 으뜸 조상은 누구입니까? : <답> 인류의 으뜸조상은 아담과 에와(하와. 이브)로 천주께서는 이들을 낙원에서 살게 하시고, 주의 계명을 잘 지킴으로써 죽지 않고 바로 천당에 오르도록 하셨습니다.

358-39. 천주께서는 원조 두 사람을 어떻게 내시었습니까? : <답> 천주께서는 원조 두 사람 중에 아담의 육신은 진흙으로 만드시고, 에와의 육신은 아담의 한 갈빗대를 취하여 만드셨으며, 그 둘의 영혼은 당신 생명의 신령한 능력으로 그냥 창조하여 주셨습니다.

358-40. 성경에 보면 천주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모상대로 내셨다(창세기 1,27)고 하는데, 이는 무슨 뜻입니까? : <답> 성경에 천주께서 사람을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하셨다는 의미는 바로 천주께서 사람에게 본성에 적합한 지능과 의지와 자유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과성은혜(過性恩惠)와 초성은혜(超性恩蕙)로 신성하게 꾸며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기록인 성서에 나오는 바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이 살던 곳을 ’에덴 동산’(창세기 2,8)이라고 합니다. 역사가 흐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실낙원(失樂園)을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아직 그곳을 찾았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여러분도 찾지 마시라는 이야깁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지금의 이란지방 어느 곳일 것입니다.

 

  이렇게 에덴지방에 살던 최초의 인간은 흙에서 나왔습니다. 처음 인간은 남자요, ’아담(ADAM)’이라고 합니다.  말의 어원을 따르면, 흙이라는 말과 같은 어원이라고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인간은 단순히 흙이 변형된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흙과는 전혀 다른 물질이요, 물체이고 또 생명체입니다.  이런 설명하는 방법을 가리켜서 신학에서는 ’실체(實體)변화(變化)’라는 용어를 씁니다.  출발점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형태를 가졌을 때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훗날 언급하게 될 예수님의 몸과 피인 성체와 성혈에 설명할 때도 같은 용어가 사용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갈빗대의 개수가 차이 난다고 합니다. 제가 여성의 갈빗대를 세 본 적은 없으니,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원인은 위 39항의 응답에 나오는 것처럼, 여인의 탄생은 남자의 갈빗대 뼈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이 말은 과학적인 사실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고, 세상에서 큰소리로 호령하는 것은 남자이지만, 여성도 같은 정도의 중요성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있어서 열등한 존재도 홀대받을 수 있는 존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장이 뛰어야만 참으로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하듯이 그 생명을 지켜주는 갈빗대도 같은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이고, 여성은 그 같은 갈빗대를 근거로 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과학적인 사실을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자체로써 귀중하다는 사실을 하느님의 업적을 통하여 우리가 인정하고 그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模像: 모형의 상, 모방하여 만든 상)대로 태어났다고 신앙은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틀로 삼아서 그 모습을 우리가 간직하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모상(模像)을 쉬운 말로 바꾸면, ’흉내’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모습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겉모양으로 드러내는 것을 가리켜 우리가 ’모상’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과 속성을 아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들 각자는 하느님의 고귀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귀중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찬가지로 귀중한 대우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말이 하느님의 모상을 간직했다는 말의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 각자 자신은 귀중하죠. 속된 말로 먹는 분량으로 생각하면 동물보다 훨씬 못한 가치를 지닌 것이 인간입니다.  몇 몇 가지의 동물들이 가진 특성을 비교해봐도 세상의 모든 동물들과 견주어서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지 못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가리켜서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요소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느님의 특성을, 하느님의 형상을 우리가 나누어 가졌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다음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은혜 또는 은총에 대한 것입니다. 은총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보이는 인간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당신 사랑의 열매를 주시겠습니까?  모르긴 해도 그것은 보이지 않는 방법일 것이고, 하느님을 향하여 제대로 마음을 연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형태일 것입니다.  그 은총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함께 읽어보시죠.

358-41. 천주께서 원조에게 주신 초성은혜는 무엇입니까? : <답> 천주께서 원조에게 주신 초성은혜는 은총과 성덕이니 이것으로 원조들은 천당영복을 누릴 자격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358-42. 천주께서 원조에게 주신 과성은혜는 무엇입니까? :<답> 천주께서 원조에게 주신 과성은혜는 사욕편정이 없고 지혜가 밝고, 고통이 없고, 죽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358-43. 천주께서는 과성은혜와 초성은혜를 원조들에게만 주시려 하셨습니까? : <답> 천주께서는 과성은혜와 초성은혜를 인류의 시조되는 아담으로 시작하여 온 인류에게 다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은총의 주도권은 하느님입니다. 우리가 특별한 목적을 갖고 특별한 행동을 의도한다고 해서 우리가 만들 수 있거나 남의 것을 받아 올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의도적으로 노력한다면, 그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생활에 가까이 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총이란 계시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돌이켜보고 신앙으로, 믿음으로 그 내용을 고백한 사람들은 은총을 구별합니다.  초성은혜 즉 인간의 본성을 초월하는 은혜와 과성은혜 즉 인간에게 본래부터 부족한 요소라서 여러 가지로 상처받고 변형될 수 있지만 이 은혜로써 그 잘못된 것으로 덜 나아가는 은혜를 가리킵니다.

 

  하느님은 최초의 인류에게 이 모든 힘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28에 고백하는 믿음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사물의 관리를 인간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인간에게 그만한 능력과 힘이 있다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그 믿음을 지속하여 간직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제약의 굴레에 얽어맵니다.

 

  다음은 최초의 인간이 행했던 행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에는 권리가 많으면 의무도 그만큼 많이 따라 붙습니다. 그러나 같은 세상을 살면서 권력은 누리려고 하고, 의무는 몰라라 하는 일들이 생기기에 세상은 혼란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엊그제, 국민의 세금을 도둑질 해 먹은 사람중의 하나가 자기들 끼리끼리 모여있는 곳에서 투표하고, 구속을 면하게 되었다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셨죠.  인간은 그런 것입니다. 자신들의 위치가 머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부터 그런 식으로 움직입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또 우리의 일꾼으로 뽑아야 합니다.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세상에 오래 산다는 것 그것이 슬픔의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장광설은 접어두고, 함께 읽겠습니다.

 

358-44. 하느님께서는 원조의 충성을 낙원에서 어떻게 시험하셨습니까? : <답> 하느님께서는 원조의 충성을 낙원에서 지선악수(知善惡樹) 실과(實果)를 먹지 말라는 계명으로 시험하셨습니다.

358-45., 원조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켰습니까? : <답> 원조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였으니, 마귀의 유혹에 빠져 금한 실과를 먹음으로 교만하고 순종치 아니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358-46. 하느님께서 원조를 어떻게 벌하셨습니까?  : <답> 하느님께서는 원조에게서 초성은혜(超性恩蕙)와 과성은혜(過性恩惠)를 도로 거두시고, 낙원에서 내쫓아 마귀 지배하에 두셨습니다.

  하느님은 인류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을 우리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자유의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 따라 붙습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자유는 제약받을 수밖에 없고 그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제 이 세상에 악한 힘이 어떤 방법으로 들어왔는지를 살피는 차례입니다. 좋은 것이 드러나려면, 나쁜 것이 주변에 있어야 더 빛을 낼 수 있기도 합니다만, 최초의 인간으로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가 범한 죄악 때문에 인류는 기나긴 슬픔의 길로 갑니다.  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최초의 사과<malum, I. n. 악, 불행, 결점 또는 능금, 사과>사건이라고도 합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인류에게 악이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보통 문제가 아니죠.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였기에 하느님께 직접 일치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은혜와 은총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그렇게 인간은 스스로 악의 길을 찾아 들어가 그 안에 순종하면서 자유를 느끼고 산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이것저것)을 하지 말라고 하면, 그 말이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불만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다른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세상 만사 모든 일의 한가지 한가지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설명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덩치 크게 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시간도 절약되고 여러 면에서 유익합니다.

 

  신약성서 로마서를 보면, ’인간이 스스로 똑똑한 체 함으로써 불멸의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새나 짐승이나 뱀 따위의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1,22-23), 인간이 하느님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올바른 판단력을 잃고 해서는 안될 일을 하게 내버려두셨다(1,28)’고 했습니다.  수많은 세월을 그런 바탕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인간이 악(惡)에서 다시 돌아선다는 것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제 악에서 돌아서는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서, 최초의 악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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