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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 속의 교회법61: 저런 사람은 교회법으로 혼내 줄 수 없나요?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20 조회수2,653 추천수0

생활 속의 교회법 (61) 저런 사람은 교회법으로 혼내 줄 수 없나요?

 

 

가끔 어떤 분들은 “신부님 저런 못된 사람들을 벌주는 교회법 조항은 없나요?” 혹은 “황 신부, 저런 사람은 교회법으로 어떻게 처리가 안 되는가!” 하며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교회법에는 혼인 무효와 관련된 소송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단체들의 권리문제를 다루는 ‘민사소송’과 범죄 행위에 대해 형벌을 부과하는 ‘형사소송’, 그리고 행정권의 행정행위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행정소송’ 절차가 있습니다(1400조). 그런데 특별히 교회가 형벌을 내리는 소송 절차와 관련해서 교회법의 정신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법이 명시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이’가 있으면 형사소송 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예심 조사를 신중하게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재판을 하지 않고 교구장의 재결(공문)로 형벌을 부과할지 아니면 사법적 형벌 절차를 밟을지 결정합니다. 특별히 형사 재판에서는 소송과정에서 불필요한 추문을 예방하고 증인들의 자유를 보호하며 정의의 길을 찾기 위하여 검찰관(검사)의 의견을 들음과 동시에 반드시 피청구인(피고)을 소환하여 그의 의견을 듣고 그가 반드시 변호인의 도움을 받도록 해줍니다(1722조, 1723조). 그리고 다수의 증언을 깊이 청취하고 증언의 신빙성을 살피며(1572조, 1573조) 전문가의 견해가 필요한 경우에는 감정인을 통해 의견을 듣고(1574조) 증언이나 증거의 신빙성 확인을 위해 직접 장소나 사물에 대해 검사도 합니다(1582조). 이러한 모든 절차를 밟는 동안에는 고소를 당한 ‘피청구인(피고)’은 아직 ‘범죄인’이 아닙니다. 어떤 한 사람을 범죄인으로 선언하고 교회법적 제재를 가하기 위해서 재판관은 기록 문서들과 증거들로부터 자신의 양심에 따라 저 사람이 범죄인이라는 ‘윤리적 확실성’을 찾아내야 합니다. 재판관은 이 확실성을 찾지 못하면 청구인(원고)의 권리가 확증되지 아니함을 선언하고 피청구인(피고)을 풀어주어야 합니다(1608조). 물론 판결로 죄를 저지른 범죄인으로 선언된 사람이라 하여도 판결에 억울함이 있다면 상급 법원에 항소할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1628조).

 

그리고 범죄인에게 교회법적 제재(형벌)를 내릴 때 교회법의 정신 안에는 징벌(복수)의 개념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고 교회는 세례를 통해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어머니의 상징성을 지닙니다. 어찌 부모가 자식이 죄를 지었다고 하여 그것에 대해 앙갚음(복수)을 하겠습니까? 교회가 내리는 모든 형벌은 죄인이 회개하도록 하는 교정벌(파문, 금지, 정직)이거나 지은 죄에 대해 깊이 뉘우치도록 하는 속죄벌(거주금지, 권력 · 직무 · 은전의 박탈, 전임, 제명)이거나 예방제재(경고, 견책) 혹은 참회고행(순례, 피정, 애덕실천)입니다(1331조~1340조).

 

특별히 교회법이 형벌을 부과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본 이유는 신자들 사이에 직접 당사자에게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히 확인하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건너들은 말만을 가지고 너무나 쉽게 어떤 사람을 ‘나쁜 사람’, ‘못된 사람’으로 단정 짓고 비난하며 더 나아가 그 사실을 굳이 알 필요도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알리지 못해 안달하는 경우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서 스스로 재판관의 자리에 서려 합니다. 그런데 윤리적 확실성을 가지고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누군가의 잘못을 선언하는 과정은 매우 신중해야 하고 반드시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진술을 듣고 그 진술이 맞는지 확인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잘못이 확인되지 않았다면 결코 죄인으로 단정 짓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되도록 사건과 관련된 사람 이외의 사람은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죄가 밝혀졌어도 그에게 앙갚음하거나 그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회개하고 속죄하도록 돕고 다시 그런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하거나 피정을 하도록 배려하는 사랑의 마음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자신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로 자비로우시며 유일한 재판관이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는 태도가 당연히 필요할 것입니다.

 

[2019년 11월 17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제주주보 3면, 사법 대리 황태종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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