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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편 신앙 고백

교회 교리서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제 2 장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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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교육의 핵심은 그리스도

426 “교리 교육의 핵심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한 인물, 성부의 외아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우리를 위하여 수고 수난하시고 돌아가신 분, 부활하여 지금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시는 분 말입니다……. 교리 교육은 그리스도라는 한 인물을 소개하여 하느님영원하신 계획 전체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교리 교육은 그리스도의 행적과 말씀의 의미, 그분을 통해 나타난 표징의 의미를 알아들으려는 노력입니다.”(7) 교리 교육의 목표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친교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성령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수 있으며, 우리를 거룩하신 성삼위생명에 참여토록 하실 수 있습니다.”(8)
427 “교리 교육에서 가르침의 내용은, 강생하신 말씀이고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시며, 그 밖의 모든 진리는 그분과 관련되어 전달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이도 그리스도뿐이시며 다른 이는, 그리스도의 대변인으로서 자기 입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게 하는 한에서 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모든 교리 교사는 그리스도께서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요한 7,16) 하신 심오한 말씀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9)
428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전하도록 불린 사람은 먼저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기 위하여”, 그리고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 위하여” 마땅히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겨야 한다(필리 3,8-11).
429 사랑으로 얻게 되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 지식에서, 그분을 알리고(‘복음을 전하고’) 나아가 다른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이끌고자 하는 열망이 솟아난다.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신앙을 더 잘 알고자 하는 필요성도 항상 느끼게 된다. 이런 목적에서 신경은 맨 먼저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주님 등 예수님의 중요한 호칭들을 제시한다(제2절). 그 다음으로 신경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주요한 신비들을 고백한다. 곧, 강생신비(제3절), 수난부활파스카신비(제4절과 제5절), 그리고 끝으로 영광 받음의 신비(제6절과 제7절)를 고백한다.

제2절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I. 예수

430 예수는 히브리 말로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이다. 주님 탄생 예고 때에 천사 가브리엘은 그분께 ‘예수’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이 이름은 그분의 신원과 사명을 동시에 나타낸다.(10) “하느님 한 분 외에 아무도 죄를 용서할 수 없기”(마르 2,7)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신 당신의 영원한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 1,21).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인간을 위해 당신 구원역사 전체를 총괄적으로 실현하신다.
431 하느님께서는 구원 역사에서, 이스라엘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종살이하던 집”(신명 5,6)에서 구해 내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죄에서도 구해 주셨다. 죄란 언제나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므로,(11) 오직 하느님만이 그 죄를 없애 주실 수 있다.(12)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점차 죄의 보편성을 깨달아 가면서, 구원하느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13)
432 예수라는 이름은 바로 하느님의 이름이 당신 아들의 인격 안에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14) 성자께서는 인간을 죄로부터 보편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해 내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다. 예수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하느님의 이름이며,(15) 이제는 강생하여 모든 사람들과 하나가 되시어,(16) 모든 사람은 이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2).(17)
433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이름은 일 년에 단 한 번, 대사제이스라엘의 죄를 보속하기 위해 지성소속죄판에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릴 때만 불렀다.(18) 속죄판은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장소이다.(19) 바오로 사도예수님에 대하여,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로마 3,25) 하고 말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셨다.”(2코린 5,(19) 는 것을 의미한다.
434 예수님의 부활은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한다.(20) 이제 ‘예수’라는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필리 2,9-10)이 지닌 최상의 권능을 충만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악령들은 그분의 이름을 두려워한다.(21)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분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다.(22)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부께 청하는 것은 다 들어주시기 때문이다.(23)
435 예수라는 이름은 그리스도인 기도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전례의 모든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말로 끝맺는다. 성모송은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하는 말에서 절정에 이른다. ‘예수님 기도’라고 불리는 동방의 마음의 기도는 “하느님의 아드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한다. 잔 다르크 성녀가 그랬듯이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오직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며 숨을 거둔다.(24)

그리스도의 참된 육체

476 ‘말씀’은 참된 인성을 취하시어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육체는 묘사가 가능하다.(116) 이 때문에 예수님의 인간적 모습은 “생생하게 그려질”(117) 수 있다. 제7차 세계 공의회에서(118) 교회예수님의 인간적 모습을 성화상으로 표현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477 이와 동시에 교회예수님의 육체를 통하여 “당신 본성으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인간으로 나타나셨다.”(119) 는 것을 항상 인정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육체가 지닌 개별적인 특성들은 하느님 아들의 신적 위격을 표현한다. 인간 육체의 모습을 취하신 그분을 성화상으로 그려 공경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신자들이 그분의 모습을 공경하는 것은 “그 모습 안에 묘사되어 있는 위격공경하는 것”(120) 이기 때문이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494 남자를 모르면서도 마리아는, 성령의 힘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리라는 잉태 예고를 받았을 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144) 확신하며, “믿음의 순종으로”(145) 응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처럼 마리아하느님 말씀에 동의함으로써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었다. 마리아는 온전한 마음으로 아무런 죄의 거리낌도 없이 하느님구원 의지를 받아들이고, 당신 아드님의 인격과 활동에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쳐, 전능하신 하느님은총으로 아드님 밑에서 아드님과 함께 구원신비봉사하였다.(146)
이레네오 성인의 말씀대로 “동정 마리아는 순종하시어 자신과 온 인류에게 구원의 원인이 되셨다.”(147) 그와 더불어 적지 않은 옛 교부들이 “하와의 불순종으로 묶인 매듭이 마리아의 순종을 통하여 풀렸다, 처녀 하와불신으로 묶어 놓은 것을 동정녀 마리아믿음을 통하여 풀어 주셨다.”(148) 고 말한다. 그리고 하와와 비교하여 마리아를 “살아 있는 이들의 어머니”라 부르고, 더 자주 이렇게 주장한다. “하와를 통하여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하여 생명이 왔다.”(149)

예수님 어린 시절의 신비

527 예수님의 할례는 태어난 지 여드레째 되는 날 이루어지는데,(228) 이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고 계약의 백성의 일원이 되는 표시이며, 율법에 속하는(229) 표시이고, 당신의 전 생애 동안 이스라엘예배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 표시이다. 이 표시는 ‘그리스도의 할례’, 곧 세례의 예형이다.(230)
528 주님 공현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메시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세상구원자이시라는 것을 드러낸다. 주님 공현은 요르단 강에서 받은 그분의 세례와, 카나의 혼인 잔치,(231) 그리고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한 사실을 기념한다.(232) 복음은 주변의 이교(異敎)들을 대표하는 이 박사들이 강생을 통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인 민족들의 시초라고 본다. 박사들이 “유다인들의 임금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온 것은,(233) 다윗의 별이 비추는 메시아의 빛을 받아,(234) 장차 만민의 왕이 되실 분을(235) 이스라엘에서 찾았음을 보여 준다. 동방 박사들이 찾아온 것은 이방인들이 유다인을 향하고,(236) 그들로부터 구약에 담겨 있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받아들일 때만 예수님을 찾을 수 있고,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과 온 세상구원자로 경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237) 주님 공현은 “많은 이방인들이 구약 성조들의 가문에 들어가고”(238) 이스라엘의 특전(239) 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529 예수님을 성전에서 바침은(240) 아기 예수님께서 주님께 속한 맏아들이심을(241) 보여 준다. 예언자 시메온과 한나와 함께 온 이스라엘은 기다렸던 구세주를 맞으러 온다(비잔틴 전통은 이 사건을 ‘주님 맞이’라고 부른다). 예수님께서는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 “만민의 빛”, “이스라엘의 영광”으로 인정되셨으나, “반대받는 표적”이기도 했다. 마리아에게 예언된 고통의 날카로운 칼은 또 하나의 봉헌, 곧 하느님께서 “모든 민족 앞에 준비하신” 구원을 베푸실 저 완전하고 유일한 십자가봉헌을 예고한다.
530 이집트 피난과 죄 없는 아기들의 학살은(242) 빛에 대한 어둠의 저항을 나타낸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1). 그리스도께서는 전 생애를 통하여 많은 박해를 받으셨다.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도 그분과 함께 이 박해를 나누어 받게 된다.(243) 예수님께서 이집트에서 올라오신 일은(244) 이집트 탈출을 상기시키며,(245) 그분을 결정적인 해방자로 제시한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541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15).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려고, 지상에서 하늘 나라를 시작하셨다.”(267) 그런데 아버지의 뜻은 “인간을 들어 높여 신적 생명에 참여하게 하시는”(268)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심으로써 이를 행하신다. 이 모임이 바로 교회이며, 이는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싹과 시작이 된 것이다.”(269)
542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가정’ 안에 모인 사람들의 중심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하느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징표들과 제자들의 파견을 통해서 사람들을 당신께 불러 모으신다. 그분께서는 무엇보다도 십자가 죽음부활이라는 당신 파스카의 위대한 신비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실현하실 것이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요한 12,32).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와 이렇게 일치되도록 불리었다.(270)

모든 죄인이 그리스도 수난의 장본인이었다

598 교회는 그 신앙에 대한 교도권성인들의 증언에서, “죄인들 자신이 하느님이신 구세주께서 겪으신 모든 고난의 장본인이었고 그 도구였다.”는(436) 사실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우리 죄가 그리스도께 미친다는 점을(437) 생각하여, 교회는 주저 없이,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자주 유다인들에게만 지웠던 예수님의 처형에 대한 가장 중대한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린다.
계속해서 죄에 다시 떨어지는 사람들이 이 무서운 잘못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신 것은 우리의 죄인 만큼, 타락과 악에 빠지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마음 안에서, 그들 안에 계신 하느님의 아들을 거듭 십자가에 못 박고 욕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 우리의 죄가 유다인들의 죄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들의 증언대로, 만일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1코린 2,8)이지만, 우리는 오히려 주님을 안다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통해서 그분을 부정하면, 그것은 말하자면 그분을 우리의 손으로 죽이는 것이 된다.(438)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마귀들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악습과 죄를 즐김으로써 마귀들과 함께 주님을 못 박았으며, 지금도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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