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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편 그리스도인의 기도

교회 교리서
제 1 부 그리스도인의 삶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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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란 무엇인가-

저에게는 기도가 마음의 약동이며, 하늘을 바라보는 단순한 눈길이고, 기쁠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을 겪을 때에도 부르짖는 감사와 사랑의 외침입니다.1)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다

2599 동정녀의 아들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께서는 또한 당신께서 지니신 인간 심성에 따라 기도하는 법을 배우셨다. 예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께서 마련하신 “큰일”들을 모두 마음속에 간직하시고 묵상하시던(41) 당신 어머니에게서 기도문을 배우셨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의 회당예루살렘성전에서, 당신 동포들이 기도할 때 썼던 말과 운율에 젖어 기도를 배우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벌써 열두 살 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라고 암시하셨듯이, 좀 더 신비로운 원천에서 솟아 나온 기도였다. 바로 여기에서 때가 차 드리신 기도의 새로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곧,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기대하시던 자녀다운 기도를, 마침내 사람이 되신 외아들께서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사람들을 위하여 바치신 것이다.
2600 루카 복음그리스도공생활에서 성령의 작용과 기도의 의미를 강조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이행하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앞두고 기도하신다. 당신의 세례와(42) 영광스러운 변모(43) 때에 성부께서 당신에 대해 증언해 주시기에 앞서, 그리고 당신의 수난을 통해 성부께서 세우신 사랑의 계획을 성취하시기에 앞서(44) 먼저 기도하신다. 사도들이 부여받은 임무를 시작하려던 결정적인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먼저 기도하신다. 곧, 열두 제자를 선택하여 부르시기 전에,(45) 베드로가 당신을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기 전에,(46) 또한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신앙유혹으로 약해지지 않도록(47)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신다. 성부께서 성취하라고 명하신 구원 활동을 펼치시기에 앞서 예수님께서 드리는 기도는, 그분께서 인간으로서 지니신 뜻을 겸손신뢰로써 사랑이 충만하신 아버지의 뜻에 맡겨 드리는 기도이다.
260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루카 11,1). 그리스도의 제자는 기도하시는 스승을 보면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그는 기도하시는 스승에게서 기도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성자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보고 들음으로써 성부기도드리는 것을 배우게 된다.
2602 예수님께서는 되도록이면 밤에, 홀로, 산으로 물러가셔서 자주 기도하셨다.(48) 예수님께서는, 강생하심으로써 인류를 완전히 떠맡으셨기 때문에, 기도에서도 사람들을 떠맡고 계시며, 당신 자신을 성부께 바치심으로써 그들을 또한 성부봉헌하신다. “육체를 취하신”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인간적인 기도를 통하여, “당신의 형제들”이(49) 겪는 모든 일에 참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나약함에서 해방시키시려고 그들의 나약함을 함께 겪으셨다.(50) 바로 이를 위하여 성부께서는 그분을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일들은 그분께서 ‘은밀하게 드리시던’ 기도의 가시적인 표현이다.
2603 복음사가들은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드리셨던 두 편의 기도를 아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기도는 각각 감사로 시작된다. 첫째 기도에서,(51) 예수님께서는 성부를, 하늘 나라의 신비를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이들”(참행복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분으로 고백하시며, 성부를 그러한 분으로 알아 뵙고 성부께 찬미를 드리신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하고 예수님께서 외치신 감탄사는 그분의 깊은 마음속을 드러내며, 성부의 뜻에 순종하시는 그분의 심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외침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신 말씀을 반향하는 것이요, 또한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고뇌하시던 중에 성부께 드리신 말씀의 전조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기도는 그분께서 인간으로서 지니신 충만한 사랑의 마음으로 성부의 “심오한 뜻”을(52)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의로 집약된다.
2604 둘째 기도는 성 요한 복음사가가(53) 라자로의 부활 사건 전에 기술하고 있다. 그 사건은 감사의 기도로 시작된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말씀에는 아버지께서 언제나 예수님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곧 이렇게 덧붙이신다.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예수님께서도 끊임없이 청하고 계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처럼 감사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어떻게 청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선물을 받으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선물을 주시고 그 선물을 통해 당신 자신도 함께 주시는 분과 일치하시는 것이다. 베풀어진 선물보다도 그 선물을 주시는 분이 더 소중하다. 선사하시는 성부께서 곧 ‘보화’이시며, 성부의 아들의 마음은 그분 안에 있다. 선물은 “곁들여”(54)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제로서 드리신 기도’는(55) 구원 경륜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 기도에 대해서는 제1부의 끝에 가서 깊이 살펴보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 기도는 언제나 현재 시점에서 바치시는 우리 대사제기도를 알려 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주님의 기도)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내용을 담고 있다. 주님의 기도에 대해서는 제2부에서 설명하게 될 것이다.
2605 성부의 사랑의 계획을 성취하실 때가 이르자, 예수님께서는 아들로서 바치시는 기도의 심오함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붙잡히시기 전에 바치신 기도(“아버지,……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루카 22,42)에서뿐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들을 통해서도, 기도하는 것과 당신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 동일한 행동임을 보여 주신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 “목마르다!”(요한 19,28),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56) “다 이루었다.”(요한 19,30),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리고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실 때에도,(57) 예수님의 기도와 자기 증여는 동일하다.
2606 죄와 죽음의 노예가 된 인류가 지나온 모든 시대의 온갖 고뇌, 그리고 구원 역사에 나타나는 모든 청원전구강생하신 말씀의 이 ‘큰 소리’ 속에 합류된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이를 받아들이시고, 모든 희망을 뛰어넘어, 당신 아드님을 부활시키심으로써 그것들을 모두 들어 주신다. 이렇게 해서 창조와 구원의 경륜을 통해 기도의 드라마가 전개되고 완성된다. 시편집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드라마의 열쇠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영원한 현재에 이루어지고 있는 그리스도부활 사건을 눈앞에 두고, 성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나에게 청하여라. 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 땅 끝까지 너의 소유로 주리라”(시편 2,7-8).(58)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기도가 어떻게 구원의 승리를 가져다주는지를 극적인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브 5,7-9).

하느님 말씀

2653 교회는 “모든 신자, 특히 수도자들이 성경을 자주 읽음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필리 3,8)를 얻도록 강력하고 각별하게 권고한다.……성경을 읽을 때에는 하느님인간대화가 이루어지도록 기도가 따라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읽을 때에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4)
2654 영성의 교부들은 마태오 복음 7장 7절을 풀이하면서, 기도 중에 하느님 말씀으로 함양된 마음가짐을 이렇게 요약한다. “읽으면서 찾으십시오. 그러면 묵상을 통해서 발견할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관상을 통해서 열릴 것입니다.”(5)

성부께 드리는 기도

2664 그리스도교 기도의 길은 오로지 그리스도뿐이다. 우리의 기도는, 그것이 공동체적이든 개인적이든, 소리를 내어 하는 것이든 마음속으로 하는 것이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가 되어야만, 성부께 다다르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거룩한 인성은 성령께서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는 길이다.

수많은 증인들

2683 우리보다 앞서 하늘 나라에 들어간 증인들,(30) 특별히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하는 이들은 그들의 모범적인 삶과, 전해 오는 그들의 글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오늘도 살아 있는 기도의 전통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끊임없이 돌보아 준다. 그들은 주님의 “기쁨”에 동참하여, “많은 일들을” 맡게 되었다.(31) 그들의 전구하느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그들의 봉사 중 가장 고귀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온 세상을 위해 전구해 주도록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한다.
2684 교회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다양한 영성이 발전되어 왔다. 마치 엘리야의 “정신”이 엘리사와(32) 세례자 요한에게 전해졌던 것처럼,(33) 인간에 대한 하느님사랑을 증언하는 개인의 특은이 전달되어, 몇몇 제자들이 그 정신을 나누어 받을 수 있게 되었다.(34) 어떤 영성전례적이며 신학적인 여러 흐름들이 만나는 합류점에서 형성되는 한편, 신앙인간 사회와 그 역사 안에 정착하였음을 입증해 준다. 그리스도교의 갖가지 영성기도의 살아 있는 전통에 참여하는 것이며, 신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안내자이다. 이 영성은, 그 풍부한 다양성을 통해서, 순수하고 유일한 성령의 빛을 반영한다.
“성령은 참으로 성인들의 처소이다. 성인 또한 하느님을 모시고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바쳤기에 성령께서 거처하실 만한 처소이니, 그러므로 성인성령성전이라고 부릅니다.”(35)

기도의 어려움에 직면하여

2729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흔한 어려움은 분심이다. 이것은 소리 기도에서 말과 그 의미에 관련될 수 있고, 좀 더 심하면, (전례적이거나 개인적인) 소리 기도에서, 묵상 기도관상 기도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그분과 관련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분심을 몰아내려고 쫓아다니는 것은 오히려 함정에 빠지는 것이 된다. 그저 우리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분심은 우리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알려 주므로, 이것을 하느님 앞에서 겸손되이 깨달으면,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우선적인 사랑이 일깨워질 것이다.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을 결연히 바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실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싸움이 벌어지는데,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기로 선택하는 것이다.(18)
2730 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소유욕과 지배욕에 맞서 싸우는 것은 경계심 곧 마음의 절제이다. 예수님께서 경계심을 강조하실 때, 그것은 늘 당신 자신과, 그분의 오심과, 마지막 날과 매일, 곧 ‘오늘’과 연관되는 깨어 있음이었다. 신랑은 한밤중에 온다. 꺼지지 않아야 할 불은 바로 신앙의 불이다. “당신을 제가 생각하오며, 주님,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삽나이다”(시편 27[26],8).
2731 또 다른 어려움, 특히 마음을 다해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부딪치는 어려움은 마음의 메마름이다. 이 메마름은 관상 기도의 한 부분이다. 거기서는 생각도 기억도 느낌도 의욕도 없고, 영적인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이때는 고뇌와 무덤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참된 신앙의 순간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말씀이 돌밭에 떨어져서 뿌리를 내리지 못해 메마름이 생긴 것이라면, 회개하려고 싸워야 한다.(19)

왜 우리의 기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불평하는가-

2735 우리는 먼저 한 가지 뚜렷한 사실 앞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보통 우리가 하느님을 찬양하거나 또는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할 때, 우리의 기도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었는지를 알고자 진정 애쓰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가 청하는 기도의 결과를 보아야겠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우리는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여 그분께 기도하는가-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가 이용할 만한 수단으로 이해하는지 아니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이해하는가-
2736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른다.”(로마 8,26)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가- 우리는 우리에게 ‘알맞은 것’을 하느님께 청하는가-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시면서도(21) 우리의 청원을 기다리고 계신다. 그것은, 자유로워야만 하느님의 품위 있는 자녀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께서 원하시는 바를 확실하게 알려면 자유성령과 함께 기도해야 한다.(22)
2737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야고 4,2-3).(23) 만일 우리가 “절개 없는 자들”로서(24) 갈라진 마음으로 청한다면, 우리의 행복을 원하시고 우리가 살기를 원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수가 없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 열렬히 갈망하신다.’는 성경 말씀이 빈말이라고 생각합니까-”(야고 4,5) 우리 하느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질투를 느끼신다.” 이것은 하느님사랑이 진실하다는 표징이다. 그분의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면, 우리의 청원은 받아들여질 것이다.
당신이 청하는 것을 하느님에게서 바로 받지 못하더라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기도하면서 꾸준히 하느님과 함께 머물러 있음으로써,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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