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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편 신앙 고백

교회 교리서
제 1 부 “저는 믿나이다” - “저희는 믿나이다” 제 3 장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응답 제1절 저는 믿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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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저는 믿나이다

I. 믿음의 순종

144 믿음의 순종이란(‘순종하다’라는 라틴 말 oboedire는 ob[에게]와 audire[듣다]의 합성어이다.) 자신이 들은 하느님의 말씀자유로이 순종하는 것이며, 이는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그 말씀이 진리임을 보증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아브라함을 이러한 순종의 모범으로 제시하며, 동정 마리아께서는 이를 가장 완전하게 실현하셨다.

아브라함 - “모든 믿는 이의 조상”

145 히브리서는 조상들의 믿음을 찬양하면서 특히 아브라함믿음을 강조한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히브 11,8).(4)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약속된 땅에서 이방인으로 또 순례자로 살았다.(5) 믿음으로, 사라도 약속된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다. 믿음으로, 마침내 아브라함은 자신의 외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친다.(6)
146 이처럼 아브라함은 히브리서가 제시하는 믿음정의(定義)를 그대로 실현한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1).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로마 4,3).(7) “믿음으로 더욱 굳세어진”(로마 4,20) 아브라함은 “믿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로마 4,11.1(8) (8) 되었다.
147 구약 성경에는 이러한 신앙에 대한 증언이 풍부하다. 히브리서는 “믿음으로 인정을 받을”(히브 11,2.39) 만한 조상들의 모범적인 신앙을 찬양한다. 한편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는데”(히브 11,40), 그것은 바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히브 12,2)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은총이다.

마리아 - “행복하십니다, 믿으신 분”

II.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2티모 1,12)

148 동정 마리아께서는 가장 완전하게 믿음의 순종을 실천하신 분이시다. 마리아께서는 믿음 안에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9) 는 말씀을 믿으시고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주님의 탄생 예고와 약속을 받아들이시며,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고 동의하신다. 엘리사벳마리아께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하고 인사하였다. 바로 이러한 믿음 때문에 모든 세대가 마리아를 행복하다고 일컫는 것이다.(10)
149 일생 동안, 그리고 극도의 시련,(11) 곧 그 아드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끝까지 믿으셨다. 그래서 교회마리아를 가장 순수한 믿음을 실현하신 분으로 공경한다.

하느님만을 믿음

150 신앙이란 무엇보다도 인간이 인격적으로 하느님께 귀의(歸依)하는 것이며, 또한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 전체에 대하여 자유로이 동의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신앙하느님께 인격적으로 귀의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에 동의하는 것이므로, 인간을 믿는 것과는 다르다. 자신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맡기며 그분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그러한 믿음을 피조물에 두는 것은 헛되고 어리석은 일이다.(12)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151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보내 주신 아들, “그분의 마음에 드는 아들”을(13) 믿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들으라고 우리에게 명하신다.(14) 주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친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느님이시며 강생하신 말씀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믿을 수 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요한 1,18). 그분께서는 “아버지를 본”(요한 6,46) 분이시기 때문에,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를 보여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15)

성령을 믿음

152 그분 성령의 도움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기”(1코린 12,3) 때문이다. 인간에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려 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1코린 2,10-11). 하느님 홀로 하느님을 온전히 아신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이시므로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
교회는 한 분이신 하느님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신앙을 끊임없이 고백한다.

III. 신앙의 특성

신앙은 은총이다

153 베드로 사도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마태 16,(17) 라고 밝히신다.(16) 신앙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초자연적인 덕이다. “이와 같은 믿음이 있으려면 하느님의 도움의 은총선행되어야 하며, 성령의 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성령께서는 마음을 움직이시고, 하느님께로 회개시키시며,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고 ‘진리에 동의하고 믿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을 모든 이에게 베푸신다.’”(17)

신앙은 인간 행위이다

154 믿는다는 것은 성령은총과 내적인 도움으로만 가능하다. 그렇지만 믿는 것이 참으로 인간적 행위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느님신뢰하고 그분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따르는 것이 인간자유나 지성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에서조차 우리가 상호 일치를 위해 타인이나 그 의향을 믿고,(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가 혼인할 때처럼) 그 약속을 믿는 것이 우리의 인간적 품위를 손상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계시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 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순종을 신앙을 통하여 드러내고”,(18) 하느님과 친밀한 일치를 이루는 일은 결코 우리의 품위를 해치는 것이 아니다.
155 신앙 안에서, 인간의 지성과 의지하느님은총과 협력한다. “신앙은 하느님은총으로 움직여진 의지의 명령에 따라, 하느님진리에 동의하는 지성적 행위이다.”(19)

신앙과 지성

156 계시된 진리들이 우리의 자연이성에 비추어 참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이 신앙의 동기는 아니다. “스스로 그르칠 수 없고 우리를 그르치게 하지도 않으시는, 계시하시는 하느님 바로 그분의 권위 때문에”(20) 우리는 믿는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앙적 동의가 이성에도 부합하도록, 하느님께서는 성령의 내적 도움이 당신 계시의 외적 증거들과 함께 주어지도록 하셨다.”(21) 예를 들어 그리스도성인들의 기적,(22) 예언, 교회의 확산과 그 거룩함, 그 풍요함과 확고함은, “모든 이의 지성이 파악할 수 있는, 계시에 대한 확실한 증거들이며”,(23) 신앙의 동의가 “결코 정신의 맹목적인 작용이 아니라는 것”(24) 을 보여 주는 믿음의 동기들이다.
157 신앙은 확실한 것이며, 그것이 거짓 없으신 하느님의 말씀 자체에 근거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인식보다 더 확실하다. 물론 계시진리들이 인간이성이나 경험에 비추어 모호하게 보일 수는 있으나 “자연적 이성의 빛이 주는 확실성보다 하느님의 빛이 주는 확실성이 더 크다.”(25) “만 가지 어려움도 하나의 의심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26)
158 “신앙은 이해를 요구한다.”(27) 믿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믿는 분을 더 잘 알고자 하며 그분의 계시를 더 잘 이해하고자 한다. 한편 더 깊은 이해는 다시금 더 강하고 점점 더 사랑에 불타는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신앙은총은 “마음의 눈”(에페 1,18)을 열어 줌으로써 계시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한다. 거기에는 하느님의 계획 전체, 신앙신비, 신비들의 상호 관계, 계시신비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와 이루는 관계에 대한 이해가 포함된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계시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도록 당신의 은총으로 항구히 신앙을 완성시켜 주신다.”(28)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금언대로 “믿기 위하여 이해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29)
159 신앙과 과학. “신앙이 이성보다 우위에 있기는 하지만, 신앙이성 사이에 진정한 불일치는 있을 수 없다. 신비계시하고 신앙을 주시는 바로 그 하느님께서 인간의 정신에 이성의 빛을 비춰 주시기 때문이며,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시거나 진리진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30) “그러므로 모든 분야의 방법론적 탐구가 참으로 과학적 방법으로 도덕규범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결코 신앙과 참으로 대립할 수 없을 것이다. 세속 사물이나 신앙의 실재는 다 똑같은 하느님에게서 그 기원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오히려 겸허하고 항구한 마음으로 사물의 비밀을 탐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의식하지는 못하더라도, 만물을 보존하시고,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손에 인도되고 있는 것이다.”(31)

신앙의 자유

160 신앙이 인간적인 응답이 되려면, “인간이 하느님자유로이 믿고 응답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억지로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사실 신앙 행위는 그 본질상 자유로운 것이다.”(32)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당신을 섬기도록 부르시므로 인간은 이에 양심으로 매이지만 강제당하지는 않는다.……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33)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신앙회개로 초대하시지만 결코 이를 강요하지 않으신다. “진리를 증언해 주셨지만, 반대자들에게 그 진리를 힘으로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의 나라는……진리를 증언하고 들음으로써 굳건해지며 사랑으로 넓혀진다. 십자가에 높이 들리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랑으로 인간을 당신께 이끌어 들이신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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