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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편 그리스도인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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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주님의 기도 “우리 아버지” 제3절 일곱 가지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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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일곱 가지 청원

2803 우리가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흠숭하고, 사랑하고, 찬양하기 위해 하느님 앞에 나아오게 되면, “아드님의 영”(갈라 4,6)은 우리 마음속에서 일곱 가지 청원과 일곱 가지 축복이 솟아나게 하신다. 첫 세 가지 청원하느님을 향한 간구로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나머지 네 가지 청원은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로서,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하느님은총에 내맡기도록 해 준다. “너울이 너울을 부릅니다”(시편 42[41],8).
2804 첫 세 가지 청원들은 우리가 아버지를 향하도록, 아버지를 위하도록, 곧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도록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사랑의 특성이다. 이 세 가지 청원 중 어느 것에서든 우리는 ‘우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사랑하는 아들에게는 ‘고뇌’가 된 그 ‘열렬한 소망’이 우리를 사로잡는다.(55) “……거룩히 빛나시며,……오시며,……이루어지소서.”라는 이 세 가지 탄원은 이미 구세주 그리스도희생 제사 안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아직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지 않으셨으므로,(56) 이 간청들은, 희망하는 가운데, 이제 그 최후의 성취를 향하고 있다.
2805 나머지 네 가지 청원들은 성찬례의 성령 청원 기도청원들과 유사하게 펼쳐진다. 곧, 우리가 기대하는 바를 자비로우신 아버지께 말씀드리며 그 자비의 눈길을 우리 쪽으로 끄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우러나는 이 청원들은, 바로 이 순간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와 관련된다. “……저희에게 주시고,……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저희를 구하소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청원은 양식을 얻거나 죄를 치유받기 위한, 우리의 생명 자체와 관련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두 가지 청원은 삶의 승리를 위한 우리의 싸움, 바로 기도의 싸움과 관련된 것이다.
2806 처음 세 가지 청원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 안에서 굳건해지며, 바람으로 가득 차게 되고, 사랑으로 불타게 된다. 피조물이며 아직도 죄인인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청원을 드려야 한다. 이 ‘우리’는, 세상의 넓은 공간과 오랜 역사만큼 최대한으로 확대된 ‘우리’, 곧 ‘만인’을 포함한 의미의 ‘우리’이며, 이러한 우리를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맡겨 드리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아버지께서는, 당신 그리스도의 이름과 당신 성령의 다스림을 통해서 우리와 온 세상을 위한 구원 계획을 실현하신다.

I.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2807 여기서 “거룩히 빛나시며”라는 말은, 우선 원인을 나타내는 의미(하느님 홀로 거룩하게 하신다)가 아니라, 오히려 존중의 의미에서, 거룩한 이름을 거룩하게 알아 모시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흠숭에서는 그 같은 간청이 이따금 일종의 찬미와 감사드리는 행위로 이해된다.(57)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소원의 형태로, 곧 하느님인간이 관련된 청원과 열망과 기대감인 이 청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우리 아버지께 첫 번째 청원을 드리는 순간부터 그분 신성신비로운 내면을 만나게 되고, 또한 우리 인류 구원의 드라마와도 만나게 된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하는 것은,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려고”(에페 1,4),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에페 1,9) 우리를 포함시킨다.
2808 구원 경륜의 결정적인 순간들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밝히시는데, 당신의 일을 수행하심으로써 그 이름을 드러내신다.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를 통하여 우리 안에서 거룩히 빛날 때, 하느님의 일도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809 하느님의 거룩함은 그분의 영원신비의 다가갈 수 없는 중심이다. 이 신비 가운데 창조계와 역사 안에서 드러난 것을 성경은 ‘영광’, 엄위하신 하느님의 광채라고 하였다.(58)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비슷한 모습으로”(창세 1,26) 인간을 창조하심으로써, 그에게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다.(59) 그러나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60) 그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콜로 3,10) 새로워지도록,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시고 알려 주심으로써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신다.
2810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그 약속에 따른 맹세에서(61)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지만, 당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하시고,(62)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구해 내심으로써 온 백성에게 당신 이름을 드러내신다. “나는 주님께 노래하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탈출 15,1) 시나이 산 계약 이후, 이 백성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으며, 하느님의 이름이 그들 안에 머무르고 계시므로, 그들은 ‘거룩한 민족’(또는 ‘축성된 백성’ - 히브리 말로는 같은 말이다)이 되어야 했다.(63)
2811 그런데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법’을 주시고, 거듭 주셨음에도,(64) 주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생각해서” 인내를 보이심에도, 백성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 등을 돌리고, “뭇 민족 가운데서 그분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65) 그 때문에 구약의 의인들과,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가난한 이들 그리고 예언자들은, 하느님 이름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올랐던 것이다.
2812 드디어, 예수님을 통해서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졌고, 사람이 되심으로 ‘구세주’로서 그 이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66) 곧, 예수님의 신원(Ipse Est)과 말씀과 희생 제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이름이 알려진 것이다.(67) 이것이 예수님께서 ‘사제로서 바치신 기도’의 핵심이다. “거룩하신 아버지,……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9). 당신께서 성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에,(68)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부의 이름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69)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서 파스카를 끝마치셨을 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예수님께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주님’이시다.(70)
2813 세례성사의 물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1코린 6,11). 우리 아버지께서는 일생에 걸쳐 “거룩하게 살라고”(1테살 4,7) 우리를 부르신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거룩함이 되셨습니다”(1코린 1,30). 아버지의 이름을 우리가 우리 안에서 거룩히 빛나게 하는 것은 그분의 영광과 우리의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여기에 우리의 첫 번째 청원의 절박함이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거룩하신데, 누가 그분을 거룩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는 말씀에 따라, 세례성사로써 거룩하게 된 우리는 우리가 꾸준히 거룩한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잘못을 저지르며,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성화를 통해 우리의 죄를 정화해야 하므로, 우리는 이를 날마다 청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룩함이 우리 안에 지속되기를 비는 것입니다.(71)
2814 하느님의 이름이 뭇 민족 가운데서 거룩히 빛나시는 것은 불가분으로 우리의 삶과 기도에 달려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함으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므로, 우리는 하느님하느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합니다.……이 타락한 세상구원을 가져다주는 이름도 바로 이 이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 안에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합니다. 사실, 우리가 착하게 살면, 하느님의 이름이 찬미를 받으나, 우리가 악하게 살면, 하느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모독을 받는다.”(로마 2,24)(72) 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하신 그만큼, 우리의 삶도 거룩해지도록 기도합니다.(73)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말할 때, 하느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서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합니다. 또한 아직도 하느님은총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서도 하느님의 이름이 빛나시기를 청하는 것이니, 모든 사람을 위해서, 원수들을 위해서까지도 기도하라고 하신 계명을 우리가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 안에서’ 거룩히 빛나소서.”라고 가려서 말하지 않고, 그 이름이 모든 사람 안에서 빛나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74)
2815 모든 청원을 포함하는 이 청원은, 뒤이어 오는 다른 여섯 청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기도를 통해서 받아들여진다.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예수님의 “이름으로”(75) 바치면, 그것은 우리의 기도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사제로서 바치신 기도에서 이렇게 청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켜 주십시오”(요한 17,11).

II.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2816 신약 성경에서 ‘나라’(basileia)라는 말은 ‘왕권’(추상 명사), ‘왕국’(구상 명사), 또는 ‘통치’(동작 명사) 등,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보다 먼저 있다. 그 나라는 강생하신 ‘말씀’을 통해서 다가왔으며, 복음 전체를 통하여 선포되었고, 그리스도죽음부활로써 도래하였다. 하느님 나라는 최후의 만찬 이래, 성찬례 안에서도 우리 가운데 펼쳐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 나라를 당신 아버지께 드릴 때, 하느님 나라는 영광 중에 오게 될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 바로 그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날마다 기원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어서 빨리 우리에게 당신의 도래를 앞당겨 드러내 보이시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부활이십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서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다스림입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서 다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76)
2817 이 청원은 “마라나 타”(Marana tha), 곧 “오소서, 주 예수님!”이라고 하는 성령신부(新婦)의 외침이다.
비록 이 기도가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기원할 의무를 지우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희망이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우리는 열렬하게 이 말을 외치게 될 것입니다. 제단 밑에서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큰 소리로 주님께 간청합니다. “저희가 흘린 피에 대하여 땅의 주민들을 심판하고 복수하시는 것을 언제까지 미루시렵니까-”(묵시 6,10) 과연 그들은 세상 끝 날에 정당한 갚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 주님의 나라가 어서 오게 하소서!(77)
2818 주님의 기도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하느님 나라의 궁극적 도래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78) 그런데 이 희망교회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명을 다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 강림 이후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성자의 구원 사업을 세상에서 이루시며,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시는”(79) 주님성령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이다.
2819 “하느님의 나라는……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마지막 때는 성령께서 내려오신 때이다. 성령 강림 이후로 “육”과 성령 사이의 결정적 싸움이(80) 시작되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만이 “그 나라가 오소서.” 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로마 6,12). 생각과 말과 행위가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81)
2820 성령에 따른 분별력으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의 성장과,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문화와 사회의 진보를 구별해야 한다. 이러한 구별은 분리가 아니다. 영원생명에 대한 인간의 소명은, 이 세상에서 정의와 평화에 투신하기 위해 창조주께 받은 힘과 수단을 유용하게 활용해야 하는 의무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82)
2821 이 청원은 성찬례에서 표명되고 유효하게 되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전달되고 받아들여진다.(83) 청원참행복에 따른 새 생활 안에서 열매를 맺는다.(84)

III.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2822 우리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는”(1티모 2,4)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참고 기다리신다”(2베드 3,9).(85) 다른 모든 계명을 요약하고 또한 아버지의 뜻을 우리에게 온전히 밝혀 주는 그분의 계명은,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86)
2823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에페 1,9-11). 우리는 이런 관대한 계획이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이 세상에서도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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