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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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인쇄

한자 ∼公議會
라틴어 Concilium Constantinopolitanum
영어 Councils of Constantinople
[관련단어] 공의회 

   ① 제1차(381년) : 제2차 세계공의회.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1세에 의해 381년 소집, 주된 의제는 니체아 공의회 이후 지속되어 오던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 사이의 논쟁을 니체아 신경에 의거하여 결말짓고 동로마 교회를 일치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안티오키아의 주교 멜리시오(Melitius)의 주재로 150명의 정통파와 36명의 이단 주교들이 참가하였다. 서로마제국의 주교교황대사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양교회에서 모두 제2차 세계공의회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스도 교리에 관련하여 니체아 공의회의 합의들이 확인되었고, 그리스도의 인간성이 아폴리나리아니즘(Apollinarianism)을 단죄함으로써 보위되었다. 이 공의회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소위 니체아 ·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이 공의회와 직접 관련은 없는 것 같다.

   ② 제2차(553년) : 제5차 세계공의회.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에 의해 삼헌장(三憲章)에 관련된 오랜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소집되었다. 참석자는 거의 동방교회주교들이었으며 이들은 삼헌장을 단죄하고 저자들, 즉 테오도로(Theodore of Mopsuestia), 테오도레트(Theodoret of Cyrus), 이바스(Ibas of Edessa) 등이 네스토리우스주의에 물든 것으로 인하여 파문하였다. 그 뒤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참석을 거부하였던 비질리오(Vigilius) 교황은 이에 항의하였으며 교황과 황제는 서로 불목하였으나 황제는 교황과 반목하는 것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화해하려고 노력하였다. 교황은 마침내 공의회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삼헌장에 대한 이전의 우호적인 결정들을 철회하였다.

   ③ 제3차(680년) : 제6차 세계공의회. 동방교회에서 오랜 논쟁거리가 되었던 그리스도 단성론(單性論)의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황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4세가 소집하였다. 680년 로마 시노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두 의지가 있다는 교리를 확정한 교황 성 아가토(St. Agatho, 재위 : 678∼681)는 황제에게 사절들을 파견하여 이 교리를 설명하였으며, 이들 사절은 18회기의 이 공의회를 거의 주도하다시피 하였다. 그 결과 전(前) 교황 호노리오(Honorius) 1세(재위 : 625∼638)를 비롯한 단성론자들은 파문되었다. 공의회에서 발표된 교령들은 주로 칼체돈 신앙 고백의 재판(再版)이었다. 공의회는 여러 공의회에 걸친 그리스도론(論)을 일단락지었는데, 그리스도 안의 두 의지의 물리적인 일치는 반대하지만, 신과 인간의지를 지닌 신인(神人) 사이의 완전한 조화에서 오는 도덕적 일치의 존재는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 공의회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