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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 인쇄

한자 共同善
라틴어 bonum commune
영어 common good

   공동선의 개념은 가톨릭 사회교의(社會敎義)에 있어서 중추적 개념 중의 하나이며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가톨릭 사회회칙에서 사용되는 공동선의 뜻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공동선의 개념과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독특한 개념이다. 어떤 해석에 따르면, 공동선은 사회성원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회의 재산이다. 즉 공원과 같은 공동의 재산이 공동선이란 것이다. 공원이 개인소유의 정원과는 규모나 질에 있어서 비슷하다 해도, 개인소유의 정원은 사회성원 누구나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공동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동사용의 가능성이 어떤 물질적 재산을 공동선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질적 재산만이 공동선이 될 수 있다고 보는 해석과는 달리, 가톨릭 사회교의의 공동선은 훨씬 포괄적인 개념이다.

   가톨릭 사회사상에서도 공동선의 개념은 최근에 와서야 정립되고 발전하였다. 1891년에 발표된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노동헌장>과 1931년에 발표된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콰드라제시모 안노>에서 공동선의 개념이 여러 차례 사용되었으면서도, 확실하게 정의된 것은 아니다. 공동선의 정의는 1961년에 반포된 교황 요한 23세회칙 <어머니와 교사>에서 발견된다. “공동선은 인간이 자신이 완성을 좀 더 충족되고 또한 용이하게 성취하는 데 필요로 하는 사회생활 조건들의 총체이다”(M.M. 05). 그 뒤에 나온 <지상의 평화>, <사목헌장> 등 교회문헌에서도 거의 동일한 정의가 사용된다. 그러나 공동선과 동일시되는 사회적 조건들이 교회문헌에서 항상 공동선이라고 불리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완성에 필요한 사회적 조건들이 때로는 공동복지(共同福祉, common welfare)나 진보(progress)나 발전(development)으로 불기기도 한다. 종교자유 선언문(6항)에서는 공동선 대신에 공동이익, 혹은 공동복지가 사용된다. “인간이 보다 완전히, 보다 용이하게 자기완성에 도달할 수 있는 사회의 생활조건의 총화가 사회의 공동이익”이라고 하였다.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는 인간 전체와 인류 전체의 발전향상을 가져오는 것들을 진보라고 규정함으로써 진보와 공동선은 거의 동일한 사회조건들을 지칭한다고 보인다. “진보는 경제성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가 올바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 전체와 인류 전체의 발전 향상인 전체적인 것이라야 한다”(p.14). 이렇게 보면, 교회문헌은 인간의 완성을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을 지칭하는 데에 공동선이란 용어뿐 아니라 공동복지, 공동이익, 진보, 발전과 같은 용어도 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공동선의 정의를 보면, 그것이 어떤 사회적 조건들로 구성되는 것이 확실하지 않으나, 공동선은 인간의 더욱 충족되고 용이한 완성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인간의 완성과 사회적 조건들은 필수적 관계를 갖고, 인간의 충족된 완성과 발전은 사회적 조건에 따라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완성과 발전은 사회적이다. 공동선의 개념은 인간본성의 사회 의존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단독으로는 생활할 수 없고 사회 안에서 생활해야 하므로 사회적인 영향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사회를 이탈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사회를 떠나거나 무시하면서는 충족된 완성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공동선의 개념이 강조하는 다른 점은 인간의 충족되고 용이한 완성을 촉진하는 데에 필요한 사회생활의 조건들은 따로 있는 것이고 어떤 사회조건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사회존재하는 조건들은 다양하고 서로 상반될 수 있으나, 그 중의 일정한 조건들만이 인간의 충족된 완성을 촉진하는 것이고, 다른 것들은 완성을 저해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조건들의 종류는 인간의 중대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공동선을 구성하는 사회적 조건들은 점진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며, 그것의 완전한 구현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 더 나아가 공동선의 내용인 사회조건들은 정태적(情態的)이기보다는 역동적(力動的)이고 항상 동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여건 때문에 변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공동선이 완벽하게 실현된 사회도 발견되기 어렵고, 공동선이 전연 없는 사회도 없을 것이므로 사회들간의 차이는 공동선의 정도의 차이이다.

   회칙 <지상의 평화>(41항)는 공동선의 다른 본질적 요소를 지적하고 있다. 사회의 모든 성원들은 공동선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일부의 사람들이 공동선에 참여하지 못하고 제외되는 일은 부당하다고 함으로써, 한 사회에 공동선이 구현되어 있으면서도 일부 사람들은 제외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이 조항은 공동선의 개념을 약간 흐리게 한다. 일부의 사람들이 차별대우를 받아, 인간의 완성에 필요한 사회적 조건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공동선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여간 사회의 일부 성원들이 차별대우를 받을 경우에는 공동선이 전연 구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기보다는 공동선의 불완전한 실현으로 보는 듯하다. 그래서 정당한 것은 아닐지라도, 공동선은 사회의 일부 사람들에게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공동선은 사회의 성원 전체에게 미흡하게 구현될 수 있고, 일부를 위해서만 실현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도 만족스럽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공동선은 필요한 사회생활조건들의 총체라면, 그 필요한 조건들은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은 중요하다. 교회문헌에서 언급되는 조건들은 다양하지만, 편의상 그것을 사회경제적 조건과 정치적 조건으로 구분한다. 회칙 <어머니와 교사>(19항)는 고용기회의 최대 확대, 노동자들의 평등, 좋은 생활에 필요한 자원과 서비스에 대한 모든 이들의 참여, 각 경제분야 종사자들의 수입균등, 생산증가에 준하는 서비스의 개선, 기술발전에 상응하는 생산방법, 후대인을 위한 투자 등이 공동선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회칙 <지상의 평화>(45항)는 위정자들이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은 도로, 통신시설, 음료수, 주택, 위생, 교육, 오락, 종교시설과 같은 기본적 봉사시설 외에 보험제도, 직장확대, 정당한 보수, 중간집단의 설립 등을 들고 있다. 이렇게 보면, 공동선이 사회경제적 조건에는 인간답고 좋은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자원과 시설이 포함된다. 직업, 개선된 생산방법, 정당한 보수, 중간집단과 더불어 주택, 위생, 보험제도 등 기본적 봉사시설이 중요한 것이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 상당한 수준의 자원과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공동선이 실현되기에는 이런 자원과 시설이 있는 것뿐 아니라, 그것의 분배가 공정하고 혜택이 최대한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필요한 자원을 가져야 하고 기본시설의 혜택을 누려야 하는 것이다. 공동선이 실현되자면, 좋은 사회경제적 자원과 시설이 있어야 하고, 그것들이 최대한 넓게 분배되어 모든 이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가톨릭 사회론에서는 어떤 형태의 분배를 지향하는 것인지 알 필요가 있다. 교회가 극심한 불평등한 분배를 배척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러면 완전한 균등을 지향하는가. 교회문헌은 완전한 균등보다는 공평한 분배를 지향한다고 보인다. 회칙 <지상의 평화>(45항)는 노동자가 “정의와 공평의 법칙을 따라 보수를 받도록 알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공평한 분배는 완전한 균등과 극심한 불균등 분배 사이에 있는 것이고, 정의에 부합해서 정당한 불균등 분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정의롭고 정당한 불균등 분배인가? 교회문헌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다.

   공동선은 사회경제적 차원과 혜택의 존재와 그것들의 공평한 분배만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공동선을 구성하는 다른 중요한 조건들은 정치적 사법적 조건들이다. “도덕질서와 부합하고 정치공동체의 발전수준에 상응한 국가의 사업구조가 공동선 실현에 크게 이롭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지상의 평화 50항)고 보기 때문이다. 공동선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인간의 완성을 촉진하는 데에 필요한 사회적 조건들 중에는 인권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가 포함되는 것이다. 인권을 보장하는 장치적 조건들이 실효를 발휘할 경우에 비로소 공동선이 실현되는 것이고, 그러한 조건과 장치들이 부족하거나 덜 보편화 되었을 경우에는 공동선의 실현이 미흡한 것이다. 회칙 <지상의 평화>는 이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우리 시대에는 인간의 권리와 의무가 유지될 때에 주로 공동선이 보장된다고 간주되므로 국가 위정자들의 중요 관심은 이 권리들이 인정되고 존경받으며, 서로 조정되고 옹호되고 촉진되어서, 각자가 자기 임무를 용이하게 이행하도록 보장하는 데 있어야 한다”(지상의 평화 42항). 여기서 말하는 권리는 민주사회의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들이고, 생존의 권리, 의식주와 안전에 대한 권리, 양심과 사상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신분선택의 자유, 재산소유의 권리, 집회자유, 정치에 참여할 권리 등을 포함한다.

   공동선의 실현되자면, 모든 기본 권리들이 보장될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공동선이 요구하는 것은 위정자들이 한편으로는 시민의 권고와 조정, 다른 편으로는 권리촉진 사이에 조심스러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 개인들이나 사회집단의 권리가 편파적 보호를 받지 않고 특별한 편의를 누리는 일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지상의 평화 46항). 기본 권리의 보장에 관해서 정의와 공평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언급이 없고 권리의 편파적 보호가 없어야 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교회문헌은 기본권리에 대해서는 완전한 균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공동선의 정치적 조건들에 있어서는 완전히 균등한 보장만이 적당한 것이지, 공평한 분배, 즉 정당한 불균등이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데 공동선을 실현할 책임자는 누구일까. 물론 누구나 공동선의 실현에 참여해야 하고 책임을 지지만, 가장 중요한 책임자는 국가와 위정자들이다. 회칙 <지상의 평화>는 공권력(公權力)의 존재 이유가 공동선이고, 공권력은 공동선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한다. “공권력의 존재 이유는 정치공동체의 공동선을 보호하는 데에 있는 것”이라고(65항) 하였다. 사목헌장은 국가의 목적은 바로 공동선이고 국가의 권리는 공동선을 추구하기 때문에 인정되는 것이라고 한다. “정치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해서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정당화되고 그 의의를 발견하며, 공동선에서 비로소 고유의 권리를 얻게 된다”(사목헌장 74항). 국가와 위정자는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을 추구할 경우에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이고, 국민에 대하여 권리를 갖는다. 동시에 공동선을 무시하거나 해치는 국가와 위정자는 존재할 필요가 없고 정당성을 상실하며 권리도 상실한다.

   이렇게 고찰하면, 공동선의 개념은 발전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복지의 핵심가치와 대동소이하다고 보인다. 핵심가치는 높은 물질적 삶, 높은 정신적 삶, 평등자유 등 네 개의 가치와 요약된다. 핵심가치는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삶의 기호를 골고루 펴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보고 있다. 삶의 질은 단순한 개념은 아니지만, 대체로 물질적 삶의 질과 정신적 삶의 질로 구분된다. 삶의 기회를 넓힌다는 것은 좋은 삶의 질을 각계각층에 골고루 분산하되, 높은 삶을 누구나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역사를 더듬어 보면, 핵심가치와 공동선의 실현에 대한 인간의 갈구와 추구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인간은 언제나 핵심가치와 공동선을 소중하게 생각하였고 지속적으로 추구하여 왔다. (吳庚煥)

   [참고문헌] 吳庚煥, 共同善과 發展, 神學展望, 48호, p.19~31, 1980 / 金雄泰, 倫理規範으로서의 共同善, 가톨릭대학 硯士論文, 1982 / A. Nemetz, Common Good, New Catholic Encyclopedia 3, McGraw-hill, New York 1967 / 요한 23세, 이해남 역, 어머니와 교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6 / 바오로 6세, 김남수 역, 민족들의 발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7 / 요한 23세, 정규만 역, 지상의 평화, 성바오로출판사, 1963 / 김남수 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문헌,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5.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