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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인쇄

한자 敎會史
[참조단어] 한국 교회사

   1. 초창기 : 교회기원 30년경, 오순절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중심이 되어 세상예수 그리스도부활을 증언하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 이때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은 사도들을 중심으로 사랑과 일치의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유다교의 한 종파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초대 교회 공동체신자들은 고유한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베드로를 대표로 하는 사도단과, 야고보를 중심으로 하는 장로단(사제), 스테파노를 중심으로 하는 부제단이 구성되어 있었다.

   이때 그리스도 공동체는 엄격한 유다 사상을 보전하면서 이를 실천하던 예루살렘, 갈릴래아, 시리아, 요르단 서안 교회 등 유다계와 다마스커스, 안티오키아, 로마 교회개종이방인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처음 이방인계는 강력한 바오로의 선교 활동으로 성장해 갔으나, 70년대 예루살렘 멸망 후부터는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편의상 고대, 중세(서로마 멸망 476년~루터 종교 분열 1571년), 근대(1520년~프랑스 혁명 1789년), 현대로 나눈다.

   그중 기원 30년경에서 70년까지를 초대 교회(初代敎會)라고 한다. 이때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를 창설하였다(마르 3,13-19; 마태 10장; 16장; 루가 8장; 10장). 그리고 베드로를 으뜸으로 정하셨다.

   2. 초대 교회의 특징 : 초대 교회는 네 가지의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교회의 지일성(至一性)이다. 동일한 계시교리를 믿으며 동일한 베드로와 그 후계자 교황에게 순종한다. 둘째는 지성성(至聖性)이다. 교회인간 성화를 위한 생명체이며 그 창설자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셋째는 지공성(至公性)을 갖는다. 복음은 본질적으로 만인의 것이며, 교회는 시대와 공간을 넘어 온 인류가 믿을 보편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사도 전래(使徒傳來)의 것이다. 그리스도는 사도들을 택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교회를 창설하셨고, 당신의 권위를 주신 후 온 세상파견하셨다. 따라서 그들이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임무는 오늘까지 전해 온다.

   3. 고대 교회(古代敎會) : 2세기 이후는 사도 후의 시대, 즉 교부 시대(敎父時代)이다. 이때 교계 제도가 확립되었으며 주교, 장로, 부제 등의 성직 계급이 확실하게 나타났다. 이때의 신학은 영지주의와 투쟁하면서 정립되어 갔고, 로마 제국의 영토 확장에 따라 교세도 급격히 성장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로마 황제들에게 정치적 불안감을 안겨 주게 되어 300년간의 박해가 시작된다.

   그러나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신앙의 자유 선포(313년)로, 교회는 국가의 협조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국교(國敎) 선언은 교회 발전에 막강한 힘이 되었다. 이때 수도원이 창립되고 공의회가 소집되었으며, 교회는 다방면에 활성화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통과 이단 사이에 격렬한 논쟁도 시작되었다.

   5세기 중반에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교회도 쇠퇴해 갔다. 그러나 교회는 게르만 민족 개종에 성공하기에 이른다. 특히 프랑크족의 개종정치 문화 종교적으로 중대한 사건을 이루었으며, 고대 그리스 문화권과 게르만 민족의 융합도 이루게 했다.

   4. 중세 교회(中世敎會) : 중세 전기(前期, 7~10세기)는 프랑크 왕국을 중심으로 서구 그리스도교 제국이 창설되었다. 이때 교세의 확장과 교황령(敎皇領)이 등장한다. 그러나 교회가 국가로부터 물질적인 혜택을 받은 반면, 황제의 내정 간섭을 받음으로써 세속화와 교권의 악화가 초래되었다. 결국 프랑크 제국의 정치적 붕괴는 교황의 권위까지 쇠퇴하는 암흑기를 낳게 하였다.

   그러나 중세 후기(11~13세기)의 클뤼니 수도 단체의 개혁과 교황 그레고리오 7세쇄신 운동은 교회가 세속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며, 오히려 세속권을 지배하는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성직자 수도자를 각성시켰고, 평신도영성 강화십자군(十字軍) 운동과 교회의 생활 혁신을 불러일으킨 청빈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십자군 운동은 비잔틴과 이슬람 문화와의 접촉을 가져왔고, 스콜라 철학, 신학, 예술의 발달 등도 가져왔다. 그러나 이단을 저지하기 위한 종교 재판이 등이 생겨났고, 그 개종을 위해 탁발 수도회가 등장하였다.

   5. 근대 교회(近代敎會) : 14~16세기는 단일성을 상실하여 교황청의 아비뇽 천도와 이단 운동의 발달로 교회는 혼란의 시대를 맞았다. 소위 일부 르네상스 교황들은 문화적 업적을 쌓았지만, 교회쇄신 작업은 소홀히 하였다. 그리고 귀족 출신 성직자들은 영적 사명감을 망각해 갔다.

   그러나 이때 일반 신자들의 신심은 매우 활발하였지만, 개인주의적 신심의 특성을 지녀, 현세적 두려움을 피하고 물질적 이득을 추구하는 데 치중하였다. 그래서 이는 결국 미신적 요소를 낳게 하였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대사(大赦)의 남용에 항의하면서 95개조의 신학 명제를 교구장과 동료들에게 보냈다. 이는 정통 신앙의 기조를 흔들어 소위 종교 개혁(프로테스탄트 분열)이 시작되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교회는 콘스탄츠 바젤 공의회를 열어, 쇄신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러나 교황 클레멘스 7세는 공의회 소집을 주저하였다. 공의회 우위 사상의 재등장과 교황령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1572년에 발생한 ‘로마 함락’ 사건은 교황 바오로 3세에게 교회의 반성과 개혁의 필요함을 일깨웠다. 결국 1545년 트리엔트 공의회는 타락된 교회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고, 신앙 교리를 재정립하였으며, 규율을 혁신하기에 이른다.

   이때 교황 중심의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가 성립되면서 교회쇄신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선교 활동을 시작하여 명실 공히 세계적 종교로 발돋움하게 하였다.

   6. 현대 교회(現代敎會) :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교회는 도전을 받게 된다. 얀세니즘교회를 혼란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또한 계몽주의신학적 합리주의를 탄생시켰으며 자연 종교, 이신론, 종교적 보편주의 등이 신학에 정면으로 도전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19세기에 이르러 교회는 그 권위를 상실하고 세속화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계기가 되어, 교황청과 지방 교회와 일치를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자유주의교회를 내적 혼란 속에 휩싸이게 하였어도 외적으로는 평온하였다.

   그리고 1차 바티칸 공의회수위권과 무류권에 대한 신조의 반포로 교회는 더욱 일치를 이루었다. 특히 가톨릭 사회주의 대헌장, 노동 헌장 등은 근로 대중을 위한 사회의 개선을 요구하였다. 이로써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저지하고 교회 노동 조합의 창설과 발전을 가져왔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교회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성직자 중심에서 평신자의 지위와 사명이 부각되었다. 특히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하고, 바오로 6세가 마무리한 2차 바티칸 공의회교회를 내적으로 쇄신하고 문호를 개방하였으며, 세계 그리스도교 일치를 촉진하였다. 그리고 교회가 현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법도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오늘의 가톨릭 교회는 급변하는 현대 세계에 적응하는 정책을 수립하면서,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를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특히 455년의 전통을 깨고 비이탈리아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의 세계화와 더불어, 미래의 세계 교회를 향한 획기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출처 : [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