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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전례 안에서의 행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17 조회수6,189 추천수0

[전례 생활] 전례 안에서의 행렬

 

 

가톨릭 전례 안에는 여러 형태의 행렬이 있다. 어떤 행렬은 그리스도 생애의 중요한 구원 사건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거행하는 성대한 입당 행렬은 메시아이신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상기시킨다. 또한 부활 성야에 파스카 초를 들고 제대를 향해 가는 행렬은 주님께서 무덤의 어둠에서 부활의 영광으로 넘어가신 사건을 기념한다.

 

또한 특별한 날의 전례 행위에서 요구되는 행렬이 있다. 전통적으로 사순 시기에 거행되는 교황 집전의 순회 전례에서 공동체가 한 장소에 모였다가 지정 성당으로 이동하는 행렬, 성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 미사 뒤에 성체를 옮겨 모시는 행렬,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에서 십자가 경배를 위한 행렬, 장례 예식에서 죽은 이의 집과 성당과 묘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두 번의 행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밖에도 중세에 성체와 성인 신심에서 비롯한 대중적인 신심 행렬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유럽의 많은 지역 교회에서 성인의 유해나 성상을 들고 마을의 거리를 행렬하면서 각 성인에 대한 특별한 공경을 표현하는 신심 행위를 확인할 수 있다.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가 끝난 다음, 그 미사에서 축성된 성체를 모시고 성당 밖에서 행렬하는 성체 거동은 중세부터 시작된 대표적인 성체 신심 행위 가운데 하나이다. 이처럼 전례와 신심 행위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행렬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일까?

 

 

신앙의 표현인 행렬의 의미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대중 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는 특히 신심 행위와 관련하여 신앙의 표현인 행렬의 본질을 잘 유지하고자 그 신학적 전례적 인간학적 의미를 잘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247항 참조). 여기서 밝히는 행렬의 세 가지 의미는 미사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행렬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이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학적 관점에서 행렬은 이 세상에는 영원한 거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히브 13,14 참조)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따라서 영원한 도성을 향해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는 표지이다. 또한 그것은 주님의 명령(마태 28,19-20 참조)에 따라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해야 할 교회의 선교 사명을 상기시켜 준다.

 

둘째, 전례적 관점에서 행렬은 대중적인 신심에서 비롯한 것일지라도 언제나 전례 거행을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전례와 신심 행위에 관한 ‘전례 헌장’의 가르침을 반영한다.

 

“거룩한 전례는 그 본질상 이러한 신심행위를 훨씬 앞서 가는 것이므로, 전례시기를 고려하여, 그러한 행위들은 어느모로든 전례에서 이끌어 내고 백성을 전례로 이끌어 들여 전례와 조화를 이루도록 마련되어야 한다”(13항).

 

이는 유럽과 같은 일부 지역에서 신심 행렬과 결합된 대중적인 신심 행위들이 전례나 성사의 거행보다 우선함으로써 신앙의 표현이 아닌 단순한 볼거리나 세속적인 행위로 격하될 위험에 대해서 지적한 것이다.

 

셋째, 인간학적 관점에서 행렬은 함께 성취해 가는 ‘공동 여정’으로서 그 의미를 더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행렬 가운데 신자들은 공동 기도에 참여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한마음으로 같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이로써 그들은 서로 깊이 일치되어 있음을 느끼며 점진적인 여정 가운에 성숙해 가는 그리스도인의 임무를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미사 안에서의 행렬

 

미사 거행 안에는 네 번의 행렬이 있다. 사제가 부제와 봉사자들과 함께 회중을 가로 질러 제대를 향해 가는 입당 행렬, 말씀 전례에서 복음 선포를 위해 「복음집」을 들고 제대에서 독서대로 가는 행렬, 빵과 포도주를 들고 제대를 향해 가는 행렬, 신자들의 영성체 행렬이 그것이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4항 참조).

 

각 행렬에는 노래가 따르는데, 입당 노래, 봉헌 노래, 복음 환호송, 영성체 노래가 이에 해당한다. 제대를 중심으로 배치된 여러 전례 공간들은 이러한 예식 행위와 행렬의 움직임으로 서로 연결된다.

 

· 입당 행렬

 

“교우들이 모인 다음, 사제와 봉사자들은 거룩한 옷을 입고 … 제대를 향해 나아간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20항). 미사의 입당 행렬은 ‘백성이 모인 다음’ 시작한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사의 시작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소집된 공동체를 전례 거행의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실로 교회(ekklesia)는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요한 11,52) 생명을 바치셨던 부활하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함께 모인 공동체이다. 순례하는 백성으로서 교회는 주일마다 성찬의 희생 제사를 거행하며 마지막 ‘주님의 날’을 향하여 나아간다. 이러한 모습은 감사기도 제3양식 안에서도 잘 나타난다.

 

“아버지께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힘으로 만물을 살리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백성을 끊임없이 모으시어 해돋이에서 해넘이까지 깨끗한 제물을 드리게 하시나이다”(「로마 미사 경본」, 621쪽).

 

입당 행렬은 그날 전례의 성격을 나타내는 여러 표징과 함께 거행되는 신비를 미리 보여 준다. 주일이나 대축일 미사와 같은 중요한 전례 거행에서 입당 행렬은 성대한 방식으로 할 수 있다.

 

향을 피운 향로, 십자가, 불 켜진 초를 들고 가는 복사들을 차례로 앞세우고 다른 봉사자들과 사제가 그 뒤를 따른다. 이때 신자들은 행렬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노래를 부름으로써 사제와 결합되어 거룩한 제사가 봉헌될 제대를 향하여 함께 나아간다. 경우에 따라서 부제나 독서자가 「복음집」을 조금 위로 올려 들고 사제 앞에 서서 행렬한다.

 

· 「복음집」 행렬

 

복음 봉독은 말씀 전례의 정점이다. 동방과 서방의 전례 전통에서는 그리스도의 상징인 「복음집」을 아름답게 장식하여 특별한 공경을 표현하였다. 특히 성대한 미사 거행에서 「복음집」을 사용함으로써 복음 봉독에 가장 큰 경의를 드릴 수 있다. 곧 복음 선포 전에 촛불과 향로를 앞세우고 다른 공경의 표지와 함께 「복음집」 행렬을 성대하게 한다.

 

“이 행렬은 그리스도의 오심, 곧 당신 이름으로 교회에 부르신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시려고 오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복음집」 서문, 12쪽). 그리고 이 행렬 동안 신자들은 복음 환호송을 노래함으로써 “복음 선포에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실 주님을 환영하고 찬양하며 그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62항).

 

따라서 이 행렬은 단순히 독서대를 향한 이동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나누어 주실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것이다. 이때 신자들은 다 함께 일어서서 기쁨의 환호를 노래하며 주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들을 마음의 준비를 한다.

 

· 봉헌 행렬

 

미사 거행의 세 번째 행렬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거행될 중심 장소인 제대를 향해 있다. 이 행렬에서 신자들이 제대를 향해 가져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될 예물, 곧 빵과 포도주만이 아니다. 곧 그리스도의 봉헌과 결합하게 될 우리 자신도 제대로 가져가는 것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은 이 행렬이 갖는 가치와 영적인 의미를 밝혀 준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그 머리와 함께 봉헌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온전히 바친다. …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제사는 그 신비체의 지체들의 제사이기도 하다. 신자들의 삶, 찬미, 고통, 기도, 노동 등은 그리스도의 그것들과 결합되고 그리스도의 온전한 봉헌과 결합되며, 이로써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된다”(1368항).

 

· 영성체 행렬

 

미사에서 행렬은 영성체를 위해 나아가는 행렬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 행렬은 성찬의 잔치에 참여하는 이중적 차원, 곧 공동체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을 표현한다. 공동체적 차원은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모시고자 함께 걸으며 영적인 일치와 기쁨을 드러내는 노래를 부를 때 표현된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86항 참조). 개인적인 차원은 각 신자가 성체를 모시기 전에 합당한 공경을 표시하고 믿음의 표지로 “아멘.” 하고 응답할 때 표현된다.

 

* 김기태 사도 요한 - 인천교구 신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8년 7월호, 김기태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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