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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부활] 사순 시기 실천과 단식의 의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07 조회수7,308 추천수0

[사순시기 전례 교육] 사순 시기 실천과 단식의 의미

 

 

사순 시기의 시작을 여는 재의 수요일 제1독서 말씀에서 예언자 요엘은 주님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간절히 호소합니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요엘 2,12-13). 우리의 “마음을 찢고”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 곧 되찾은 아들의 비유처럼 참된 회개를 통하여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우리가 사순 시기를 지내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회개의 영적 여정은 하느님께 향해 가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참된 회개를 통해 부활하신 주님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준비하기 위하여 교회가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사순 시기의 세 가지 실천은 기도, 자선, 단식입니다. 이 가운데 옛적부터 사순 시기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실천 하나를 꼽으라면 ‘단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갖 먹을 것으로 넘쳐나는 이 시대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단식 그 자체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의 삶에서 사순 시기 단식이 이처럼 중요하게 생각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느님 말씀의 중심성을 드러내는 표지

 

4세기에 이르러 점차 사순 시기가 그 틀을 갖추었을 때, 성경에서 사십이란 숫자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단식의 실천이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일 간 밤낮으로 단식하시고 기도하시면서 공생활을 준비하셨듯이 교회는 사십일 동안 단식을 준수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정점에 있는 파스카 신비의 거행을 준비해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악마가 던진 빵의 유혹에 맞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3).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진정 그러합니까? ‘빵’으로 상징되는 온갖 세속적 욕망과 물질적 유혹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입니까? 내 육신은 참 많은 음식으로 채워지지만 나의 내적 삶도 충만히 채워져 있습니까? 영적으로는 영양실조가 아닙니까? 단식을 통해 우리는 바쁜 일상 안에서 잠시 잊고 지냈지만 정작 돌아가야 할 본연의 자리가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단식은 우리가 육신의 음식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탁월한 표지가 됩니다. 같은 의미에서 단식은 또한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에서 잠시 거리를 두는 행위로 연장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단식의 실천은 사순 시기 동안 하느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 자리를 마련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참회와 보속 그리고 사랑의 표지

 

하느님 앞에 벌거벗고 선 존재, 결국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야 할 우리는 흠 많고 부족한 죄인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가슴의 소리에 귀 막고 자기만족에 겨워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단식은 회개하는 죄인의 참회와 보속의 표지입니다. 이는 끊임없이 죄의식에 사로잡혀 주눅 든 존재로서 단식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언제나 새로 태어나기 위한 가난한 존재로서 단식해야 합니다. 단식을 통한 ‘배고픔’의 경험은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는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온갖 형태의 비참한 가난으로 ‘배고픈’ 현실을 매일 마주해야만 하는 불쌍한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음을 바라보도록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이때 단식은 타인의 고통에 함께 울어 줄 능력을 잃어버린 우리의 무감각한 마음을 일깨우는 작은 울림이 됩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하고 연대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사랑의 표지가 됩니다.

 

사순 시기에 실천하는 기도, 자선, 단식은 모두 하나의 목적, 곧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중심에 두고 살도록 이끄는 데 있습니다. 은총의 사순 시기에 우리 모두가 이 길을 따라서 드높고 열린 마음으로 부활하신 주님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20년 3월 8일 사순 제2주일 인천주보 4면, 김기태 사도요한 신부(청학동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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