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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 위령 성월 특집: 그리스도인과 죽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01 조회수5,460 추천수0

[위령성월 특집] 그리스도인과 죽음


영원한 삶으로의 초대… 구원 가능성 열린 은혜의 때

 

 

교회 전례력으로 11월은 위령성월로서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동시에 죽음 자체를 생각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자연재해와 기후위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등 여파로 죽음을 더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살아 있는 우리는 아무도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 공포, 불안 등 감정을 갖고, 죽음에 관한 수많은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영원한 삶으로 초대하는 교회는 누구보다 죽음에 대한 중요한 시각을 견지한다. 곧 죽음을 단절된 시간이 아니라 부활로 이어지는 희망의 시간으로 초대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위령 성월을 맞아 구원을 향한 새로운 시작점으로서 죽음의 의미를 살펴 본다.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

 

일반적으로 죽음은 삶과 분리된 이별, 공포, 불안, 무력함과 같은 실존적인 위기로 체험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슬픔, 육체적·정신적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절망 등으로 죽음은 부정적인 감정들에 휩싸이게 만든다.

 

현대 실존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죽음에 대해 “갑작스러운 멈춤, 돌아감, 한계, 허무로의 추락”이라고 정의했다. 또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죽음이 인간을 총체적 고통과 불합리하고 의미 없는 실존적 삶으로 내몬다”고 말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조)

 

이들에 따르면 죽음은 자유를 박탈하고 모든 가능성에 종말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아울러 의학에서 말하는 심장 정지에 의한 죽음, 뇌사, 세포사 등을 기준으로 모든 것이 끝남을 의미하는 죽음도 이와 연관된다.

 

한편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어떤 모양으로든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죽음을 이해하기도 한다. 죽은 조상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우리나라 민간 신앙만 봐도 이러한 면을 알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이해는 여러 분야에서 매우 다양하게 다뤄지고 있으며, 여전히 단절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성경 속 죽음

 

구약성경은 죽음을 아담의 범죄 후 인간에게 주어진 죄의 결과, 즉 하느님의 벌로 이해한다. 태초에 하느님은 죽음을 모르는 존재로 인간을 창조했다. 인간이 죽을 운명에 놓이게 된 것은 하느님에 대한 불순종 때문이며, 아담이 범한 죄의 결과로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것이다.

 

반면 구약성경은 죽음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아브라함과 같은 노년기 죽음이 여기에 속한다. 하느님은 당신 계명을 따르는 사람에게 장수를 허락했다. 이러한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 목적지로서 만나야 할 죽음이지,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죽음이 아닌 것이다. 곧 인간이 자기 명대로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께로 향해야 한다.

 

이렇게 구약성경에서는 하느님이 삶과 죽음의 모든 권세를 지니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신약성경에서 죽음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21-22)라는 말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론적 의미로 나타난다.

 

그리스도로 인해 죽음이 종결됐고 죄의 상태에서 벗어나 하느님 안에서 삶의 완결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이로써 새로운 삶으로 옮아간다는 의미로 죽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왔다가 하느님에게로 돌아감(요한 16,28)이며,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하느님과 만나는 사건이다.

 

 

죽음에 대한 교회 가르침

 

전통적인 교리에 나타난 죽음은 성경에 기초해 부활, 심판, 지옥, 하느님 나라와 함께 다뤄지며 죄의 결과로서 원죄로 인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또한 죽음은 지상 생활의 마침이지만 그리스도의 은총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됨을 천명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죽음에 대해 전통적인 가르침을 따르면서 보다 깊은 이해를 추구한다. “죽음 앞에서 인간 운명의 수수께끼는 절정에 이른다”(「사목헌장」 18항)며 “인간은 언제나 자기 인생의 의미, 자신의 활동과 죽음의 의미를 갈망할 것”(「사목헌장」 41항)이라고 밝힌다. 이로써 인간이 지닌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의문과 갈망을 인정하면서 영성적인 차원과 함께 인격적인 차원에서도 죽음을 안내한다.

 

윌리엄 부게로의 ‘천국으로 옮겨지는 영혼’(1878).

 

 

죽음, 사랑의 완성

 

성경과 교회 가르침에 따르면 신앙인들에게 죽음은 삶의 단절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연속성 안에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성사다.

 

성사는 본질상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능력과 효과를 얻고, 매순간 우리를 그리스도 죽음과 접하게 한다.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묻히게 된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신비를 선포하고 재현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 안에 실제로 효력을 내게 한다. 병자성사는 육체적 병고라는 상태에서 인간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맺는 관련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은 태도로 아픔을 견딜 수 있으며, 주님 안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곧 인간 죽음은 자연적이고 유한성을 드러내는 사건이며, 신앙 안에서는 희망의 사건이 된다.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부활의 희망이 그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은 인간에게 절망과 좌절을 안겨 주는 시간이 아니라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은혜의 때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구원에 대한 희망은 개인에 한정될 수 없다. 하느님에 대한 헌신은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으로 이어지며, 죽음은 살면서 실현한 사랑의 마지막 완성이 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며 사랑을 하도록 창조됐기 때문에, 개인의 완성은 다른 사람들의 완성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곧 신앙인의 죽음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안에서 완성돼 가는 것이다.

 

[가톨릭신문, 2020년 11월 1일, 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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