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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6.1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6-16 조회수2,215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9년 6월 16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제1독서 잠언 8,22-31

하느님의 지혜가 이렇게 말하였다.
22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23 나는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24 심연이 생기기 전에,

물 많은 샘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25 산들이 자리 잡기 전에,

언덕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26 그분께서 땅과 들을,

누리의 첫 흙을 만드시기 전이다.

 27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28 그분께서 위의 구름을

굳히시고 심연의 샘들을

솟구치게 하실 때,

29 물이 그분의 명령을

어기지 않도록 바다에

경계를 두실 때,

그분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30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31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 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제2독서 로마 5,1-5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복음 요한 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였습니다.

사복을 입고 있었고 제주도의

한 성지에 방문해서 순례를 한 뒤에

나오려는 뒤에 갑자기 뒤에서

이런 외침이 들렸습니다.
“신부님!”
저는 저 말고도 다른 신부가

성지순례를 왔나 보다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다시 뒤에서

 “신부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니

한 자매님께서 환하게 웃으면서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자신도 성지순례를 왔는데,

뒷모습을 보고서 신부님인 것 같아서

불렀다는 것입니다. 뒷모습만 보고도

 저를 알아보신 것이지요.

그런데 제 자신은 이 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대화를 나눠보니 전에 있었던

본당의 신자였습니다.

이 성당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생생히 기억하셨고,

제 뒷모습만 봐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이분과 달리 저는 이 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만큼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만났다는 증거는 아닐까요?

조금 더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는 것을,

 조금 더 사랑으로 다가서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관심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을 말하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진짜 사랑을 한다고

 말할 수가 없겠지요.

 어쩌면 주님과의 관계도 이렇지 않을까요?

“주님 사랑합니다.”라고 계속해서 말하면서,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고 그분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내 바로 앞에 주님이

계셔도 알아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사랑으로만이

 주님과 하나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내 이웃과도 하나를

이룰 수 있는 힘을 이룹니다.

이렇게 하나 되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하나 되는 신비를

통해서 다시금 깨닫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베푸십니다.

예수님도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푸시지요. 이제 성령을

통해서 인류 역사 안에 그 사랑을

계속해서 베푸십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전해 주기 위해서

성격이 전혀 다른 세 위격이

하나가 되는 신비가 삼위일체입니다.
이 삼위일체의 신비에 동참하려면

우리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즉,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사랑을 받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데 집중해야 하며,

나를 알아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사랑을 심는 삶을 살 때,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쁘게 살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행복해야지만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감사한 마음이 행복을 불러옵니다.

(데이비드 스타인들 라스트)

(삼위일체 이콘입니다)


좋은 삶을 사는 방법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면 됩니다.

그런데 이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는 우리는

아닐까 싶습니다.

즉,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지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서 좋다고

또 싫다고 말할 뿐입니다.
언젠가 간호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간호대를

다니고 있다는 것은 간호사가

되기 위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떤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4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아무도 대답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 길을 선택했어요?”
그러자 답이 쏟아집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답변이었습니다.
“여자 직업으로는

안정적이고 돈도 많이 벌잖아요.”
“최고의 직업이라고 사람들이 말해요.”
“폼 나잖아요.”

실망스러운 마음에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목표가 없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했더니,

 “모두 이렇게 사는 것 아닌가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래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모르는 이유는

목표가 없고 꿈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그래서 좋아하는 것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싫어하지만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산다면

과연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줄 수 있을까요?

(주님 안에서 희망을 찾으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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