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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연중 제29주간 수요일]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루카 12,39-4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23 조회수1,182 추천수0 반대(0) 신고

 

[ 연중 제29주간 수요일]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루카 12,39-48)

 

 

 

바오로 사도는, 죄의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며,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어 의로움의 종이 되었다고 한다.(로마 6,12-18)
형제 여러분, 12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3 그리고 여러분의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 넘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난 사람으로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자기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14 죄가 여러분 위에 군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습니다.
15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좋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16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자신을 종으로 넘겨 순종하면  여러분이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라는 사실을 모릅니까? 여러분은 죽음으로 이끄는 죄의 종이 되거나  의로움으로 이끄는 순종의 종이 되거나 하는 것입니다.
17 그러나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이 전해 받은 표준 가르침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18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어 의로움의 종이 되었습니다.


화답송 시편 124(123),1-3.4-6.7-8(◎ 8ㄱ)
◎ 우리 구원은 주님 이름에 있네.
○ 이스라엘은 말하여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셨던들, 사람들이 우리에게 맞서 일어났을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셨던들, 우리를 거슬러 저들의 분노가 타올랐을 때, 우리를 산 채로 삼켜 버렸으리라. ◎
○ 물살이 우리를 덮치고, 급류가 우리를 휩쓸었으리라. 거품을 뿜어내는 물살이 우리를 휩쓸었으리라. 저들 이빨에 우리를 먹이로 내주지 않으셨으니,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
○ 사냥꾼의 그물에서, 우리는 새처럼 벗어났네.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벗어났네. 우리 구원은 주님 이름에 있네.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네. ◎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신다. (루카 12,39-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제1독서 (로마6,12-18) 

 

"형제 여러분,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12) 그리고 여러분의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 넘기지 마십시오." (13)

 

로마서 6장의 전반부인 1-11절은 사도 바오로가 성화(聖化)의 근거로서의 그리스도와의 일치와 죄에 대한 죽음을 주제로 논증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죄에 대해 죽은 자는 다시는 죄에 머무를 수 없으며, 마땅히 의로움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제 이어지는 후반부인 로마서 6장 12-23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은총을 얻어 입은 성도로서 반드시 요구되는 자세거룩한 삶에 이르는 성화(聖化)를 다시 촉구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앞의 6장 1-11절과 내용상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앞은 이론적 성격이 강하고, 뒤는 실천적 권고의 내용에 치중하고 있다.

 

이중에서 로마서 6장 12-14절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새 생명안에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바치라고 강력하게 명령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자에게 하는 명령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죄에 대해 죽고, 더 이상 죄가 지배하지 못하는 새로운 신분이 된 성도에게 옛 죄가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권고는, 새 생명을 얻은 자유인으로서의 특권과 권리를 향유하라는 아주 적절한 호소라고 할 수 있다.

 

로마서 6장 12절에서 '지배하여'로 번역된 '바실류에토'(basilleueto; reign)원형 '바실류오'(basilleuo)의 현재 명령형이며, 기본적 의미는 '다스리다', '지배하다', '왕노릇하다', '왕이 되다'등이다.

 

강한 금지 명령어 '메'(me; not)과 더불어 쓰였는데, 이것은 죄가 성도들에 대해 그 지배력을 상실하기는 했지만, 다시 다스리려고 계속 유혹할 때 새 생명으로 사는 자유인의 특권을 이용해서 그 지배(다스림)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제 성도들은 죄의 요구를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죄에게 일체의 기회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여전히 죄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지배하게 하거나 통제하게 내버려둔다면, 그는 은총을 헛되이 받은 것이다.

죄는 이미 상실한 자신의 통치 영역을 회복하고자 안간 힘을 쓸 것이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죄'를 '헤 하마르티아'(he hamartia; sin)로 표현하면서 하나의 위격을 가진 실체처럼 나타낸다.

 

개는 자신이 토한 것을 다시 주워서 먹고, 돼지는 그 몸을 깨끗하게 씻어 주어도 다시 더러운 진창에 뒹군다(2베드2,21).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이 비단 개나 돼지만의 문제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도 그렇게 개나 돼지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여전히 죄로 하여금 자신의 몸의 지체를 마음대로 지배하게 한다면, 이것은 자유인이 다시 노예의 비참한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러분의 죽을 몸을'

 

이것은 단순히 장차 소멸하여 없어질 육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죄는 인간의 육신만이 아니라 그 영혼까지도 장악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이 본문에 '몸'으로 번역된 '소마티'(somati)의 원형 '소마'(soma; body) 전인(全人)을 나타내는 데도 쓰이며, 특히 죄와 죽음에 종속된 사람을 나타낼 때 쓰인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로마6,6; 8,13; 콜로2,11).

 

본절에서도 죄가 지배하는 인간의 상태가 바로 영적으로 죽은 상태임을 보여주기 위해 '죽음'이란 표현과 더불어, 죄와 죽음에 종속된 인간을 나타낼 때 흔히 쓰이는 '몸' 즉 '소마'(soma)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이것은 우리 성도중에 누구든지 죄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지배하고 통제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필연적으로 그는 욕망에 순종(복종)하게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욕망'과 '순종'을 나타내는 두 단어를 좀 보자. 먼저 '욕망'으로 번역된 '에피티미아이스'(epithymiais)'사욕'(邪慾), '동경'등을 의미하는 '에피티미아'(epithymia)의 여격복수이다.

 

초기 그리스도 문학에서는 '에피티미아'라는 단어는 중립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가 후에 윤리적으로 부정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데, 이것이 재물에 대한 잘못된 욕망을 나타내는 데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70인역(LXX)에서는 주로 히브리어 '아와'(awa)'하마드'(hamad)의 역어사용되었으며, ① 도덕적으로 평범한 욕망(신명12,20),  ② 칭찬할 만한 욕망(창세31,30; 이사52,8), ③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한 욕망(민수11,4) 등을 나타낸다.

 

이처럼 구약에서는 긍정적 의미로 쓰인 적이 있으나, 본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에피티미아'를 인간을 지배하는 죄에 대한 하나의 표현으로 사용하였다.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서 이것은 하느님을 떠나서 죄의 지배 아래 처한 인간의 육체 속에 휘몰아치는 힘이다. 이 '에피티미아'는 모든 방면에서 나타날 수 있는데, 성적 욕망, 물질적 향유, 타인의 재물을 탐내는 것 등이다.

 

우리 성도들은 이것이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육체의 욕망은 언제든지 성령의 욕망과 대립되기 때문에, 죄가 자신의 몸을 지배하도록 방치하는 이들은 항상 성령을 거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순종'으로 번역된 '휘파쿠에인'(hypakuein; you should obey)휘파쿠오'(hypakuo)의 현재 부정사이며, 기본적으로 '말을 듣다', '복종하다', '따르다' 등을 의미한다.

 

죄가 우리의 죽을 몸을 지배하려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정욕, 혹은 악한 정욕에 복종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들과 맞서서 싸워야 한다.

 

죄의 노예였던 이전에는 맞설 힘이 없었지만,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죄와 관계가 끊어진 이제는 충분히 맞설 수 있고, 또 물리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우리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다.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12,39-48)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39~40)

 

루카 복음 12장 39절과 40절은 도둑이 올 때를 대비하는 집 주인의 비유이다.

여기서 '도둑'을 가리키는 '클렙테스'(kleptes; thief)는 폭력을 동반하여 공개적으로 물건을 약탈하는 '레스테스'(lestes)와는 달리 '몰래 물건을 훔치는 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도둑'아무도 그 시기를 모른 채 비밀리에 오시는 재림하시는 주님으로서의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리고 여기서 '몇 시에'에 해당하는 '포이아 호라'(poia hora; what hour) 역시 40절의 '생각하지 않은 때에'와 대비하여 사람의 아들(人子)의 오심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때에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알면'에 해당하는 '에데이'(edei; had known)'오이다'(oida)의 과거 완료형으로서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본문은 가정법 조건을 나타내는 '에이'(ei; if)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집주인이 그 시기를 미리 알아 도둑을 막는 일은 단순히 가정적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실제로 이 구절은 40절에서 제시되는 대로 생각하지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오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교훈하는 역설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 '자기 집을 뚫고 들어 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에서 쓰인 동사 '디오뤽테나이'(diorychthenai; to be broken through)의 기본형 '디오륏소'(diorysso)'~을 통하여'라는 뜻의 전치사 '디아'(dia)'파다'는 뜻의 동사 '오륏소'(orysso)가 합성된 것으로 '~을 통하여 뚫고 들어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당시의 집들은 흙벽돌로 지어졌기 때문에 도둑이주인 몰래 담을 뚫고서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새성경에서 번역되지 않은 불변사 '안'(an)은 본문 앞에서 사용된 가정법의 구절과 연관하여 그 결과로서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동작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원문은 불변사 '안'(an)을 사용해서 잡주인이 도둑이 언제 올지를 안다면, '항상 그리고 당연히' 그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 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지킬 것이라는 사실을 표현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 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욱 깨어서 준비해야 할 것임을 교훈한다. 

 

이제 40절의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를 살펴보면, 여기에 쓰인 동사 '기네스테'(gynesthe; be)'기노마이'(gynomai) 현재 명령형으로서 '어떤 상태에 계속적으로 있을 것'을 명령하는 것이다.

그리고 '헤토이모이'(hetoimoi; ready) '준비된'이라는 뜻의 형용사 '헤토이모스'(hetoimos)의 복수형으로서 '기네스테 헤토이모이'(gynesthe hetoimoi) '계속적으로 준비하고 있어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이 구절은 '계속적인 준비'에 그 강조점이 있다.

 

이것은 39절의 도둑이 침입할 시기를 알고 있는 집주인과 대조하여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하느님의 백성들은 계속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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