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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베드로와의 긴 대화(죄인에대한 판단,용서,고통에대해)
작성자박현희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12 조회수1,332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수께서 한 작은 방에 혼자 계신다. 당신 침대 위에 앉으셔서 생각에 잠겨 계시거나 기도를 하신다. 겹친 선반 위에 놓인 기름등잔이 펄럭이는 노리끼리한 작은 불꽃으로 방을 비춘다. 집 안에도 길에도 아무 소리도 없는 것으로 보아 밤이 되었나 보다. 다만 급류의 흐름 소리만이 집 밖에서 밤의 적요 속에 더 크게 들린다. 예수께서는 고개를 들고 문을 바라보신다. 귀를 기울이신다. 그리고 일어나서 문을 열러 가신다. 밖에 베드로가 있는 것을 보신다.


“너냐? 오너라. 무슨 일이냐, 시몬아? 길을 아주 많이 걸어야 하는 네가 아직 일어나 있느냐?”

 

예수께서는 그의 손을 잡아 안으로 끌어들이시고,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다시 닫으신다. 그리고 침대 가에 당신 곁에 앉히신다.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예, 선생님 제가 무슨 가치가 있는지 오늘 보셨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저는 가엾은 어린 아이들을 즐겁게 하고, 작은 노파나 위로하고, 젖을 잃은 어린 암양 때문에 서로 틀어진 두 목자를 화해시키는 따위의 일 밖에는 할 능력이 없습니다. 저는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설명해 주시는 것도 알아듣지 못할 만큼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딴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를 이곳에 그냥 있게 해 주십사고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저희와 같이 계시지 않을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잘 할 줄 모릅니다. 주님, 제 청을 들어 주십시오.”

 

베드로는 열심히 말한다. 그러나 눈을 방바닥의 투박하고 쪽이 떨어져 나간 벽돌들을 내려다보면서 말한다.


시몬아, 나를 쳐다보아라.” 하고 예수께서 명령하신다.

 

그리고 베드로가 시키는 대로 하자, 예수께서는 그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시며 물으신다.


그래 그것이 전부냐? 네가 깨어 있는 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그것이 전부냐? 

너를 여기 그냥 있게 해 달라고 청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그것이 전부냐? 시몬아, 솔직해라. 

네 선생에게 네 생각 전부를 말하는 것은 불평하는 것이 아니다. 쓸데없는 말과 유익한 말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거기대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남의 과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무익한 말이고, 또 일반적으로 한가한 가운데에서 죄가 많이 생긴다. 그 때에는 거기서 한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저 사랑을 어기는 일일뿐이다. 많든 적든 신랄한 말을 하면서 비난과 더불어 조언을 곁들이지 않는 것이 사랑을 어기는 일인 것과 같다.


그런데 나는 옳은 비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비난들은 옳지 않고, 그것은 이웃에 대한 죄가 된다. 그러나 이웃이 죄를 지음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리며 자기 영혼에 해를 끼치기 것을 보고 괴로워하며, 자기 자신으로서는 남의 죄의 결과를 평가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 사람을 회개시킬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자기가 지혜를 넉넉히 가지고 있지 못하다 느끼고는 의인이나 현인을 찾아가 자기의 걱정을 말할 때에는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추문을 끝내고 한 영혼을 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마치 어떤 사람의 친척이 혐오감을 주는 병이 들린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그 병을 사람들에게 숨기려고 애쓸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비밀히 의사를 찾아가서 말할 것이다. ‘제 생각에는 제 친척이 이러저러한 병에 걸렸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에게 충고를 할 수도 없고 치료 할 수도 없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오시든지,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해 주시든지 하십시오.’하고. 혹 자기 친척에 대한 사랑을 어기는 것이냐? 아니다. 그 반대이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신중과 사랑의 감정으로 병을 알아보지 못하는 체하고, 병이 진전해서 죽음에 이르도록 내버려두면, 사랑을 어기는 것이 될 것이다.

 

언젠가, 그리고 그 때까지는 여러 해가 걸리지 않을 것이다. 너와 네 동료들이 사람들의 마음의 비밀 이야기들을 들어야 할 것이다. 너희가 지금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사람으로서 듣는 것이 아니라, 사제로서, 즉 내가 의사이고 선생님이고 목자인 것과 같이 너희도 영혼의 의사와 선생과 목자로서 들어야 할 것이다. 너희들은 듣고 결정하고 조언을 해야 할 것이다. 너희들의 판결은 하느님께서 직접 그것을 선고하신 것과 같이 효력이 있을 것이다….”


베드로는 자기를 꼭 껴안고 계시던 예수에게서 떨어져서 일어서며 말한다.
“주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의무는 저희들에게 절대로 지우지 마십시오. 저희가 사람으로서도 판단을 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하느님 같이 판결을 하란 말씀입니까?”


“그 때에는 하느님의 성령께서 너희들 위에 떠 계시면서 그분의 빛을 너희 안에 스며들게 하실 터이니까 너희들이 그렇게 할 줄 알 것이다. 너희들은 사람들이 조언을 듣거나 용서를 받기 위해서 너희에게 내보일 사실들의 일곱 가지 조언을 고찰하여 판결을 할 줄 알 것이다. 

 

잘 들어라, 그리고 기억하도록 힘써라. 그 때에 가서 하느님의 성령께서 내 말을 네게 생각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네 편에서도 네 지능을 가지고 기억하도록 힘써라. 하느님께서 네게 지능을 주신 것은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서 기대하고 갈망하도록 유도하는 게으름과 정신적인 뻔뻔스러움 없이 그것을 사용하라고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내 대신 그리고 나와 같은 역할로 선생과 의사와 목자가 되었을 때, 그래서 신자가 네 발 앞에 와서 그의 행위나 남의 행위에서 그에게 오는 마음의 혼란을 한탄하면, 너는 항상 이 일곱 가지 문제 전체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누가. 누가 죄를 지었는가?  무엇을. 죄의 재료가 무엇인가?  어디서.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무엇으로 또는 누구와. 죄의 재료였던 도구 또 사람은?  왜. 죄에 유리한 환경을 만든 충동은 어떤 것이었는가? 언제. 어떤 조건 아래 또는 어떤 반응을 보이며, 우발적이었던가, 또는 불건전한 습관으로 인한 것이었던가?


시몬아, 과연 너도 보다시피 같은 죄라도 그것을 만들어낸 모든 상황과 그것을 행한 개인에 따라서 무한히 많은 뉘앙스와 정도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가장 흔한 죄인 육욕의 죄와 재물에 대한 욕심의 죄를 생각 보자.

어떤 사람이 음란한 죄를 지었거나 음란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고 하니, 사람은 어쩌다가 죄와 유혹을 혼동하거나 불 건전한 욕망에 부자연스럽게 생긴 자극과 병적인 번민의 반응으로 일어나는 생각에 대해서 같은 판단을 하기 때문이며, 또는 어떤 때 살과 피가 영혼 안에 뜻하지 않은 호소를 울려 퍼지게 해서 영혼이 미처 그것들을 억제하기 위하여 경계태세를 취할 시간의 여유도 없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누가 네게 와서 ‘음란의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말하면, 불완전한 사제 같으면 ‘네게 저주가 내려라’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베드로 너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너는 예수의 베드로이고, 자비의 후계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때에는 단죄하기 전에, 네 앞에 와서 우는 마음을 가만히 조심성 있게 살펴보고 감동시켜 실제로 있었거나 가상의 죄나 소심증의 모든 면을 알도록 해야 한다. 가만히 그리고 조심성 있게 라고 말했다. 네가 선생과 목자인 것 외에 의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의사는 상처를 덧나게 하지 않는다. 괴저가 있으면 재빨리 잘라내면서도, 뜯어내지 않고 모아놓아야 하는 살아있는 부분이 찢어진 상처만이 있으면 경쾌한 손으로 그것을 드러내서 치료할 줄을 안다.

 

그리고 네가 의사이고 목자인 외에 선생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선생은 제자들의 나이에 따라서 그의 말을 조절한다. 죄 없는 어린이들이 모르는 동물적인 본능의 법칙을 어린 아이들에게 알려 주어 그들에게 시기상조의 지식과 악의를 가르쳐 주는 교사가 있다면, 그 교사는 수치스러운 사람일 것이다. 영혼들을 다룰 때에도 그들에게 신중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도 존중해야한다

 

네가 어떤 사람이든 아들로 생각하기만 하면 그렇게 하기가 쉬울 것이다. 아버지는 자연히 그의 자녀들의 선생이고 의사이고 인도자이다. 그러므로 죄로 인해서 또는 죄를 짓지 않았나 하는 염려로 불안해서 네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던지, 그를 아버지 같은 사랑으로 사랑하여라. 그러면 그의 감정을 해치지 않고 분개하지 않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을 이해하겠느냐?”


“예, 선생님, 썩 잘 이해합니다. 저는 신중하고 참을성 있어야 하고, 상처들을 내보이라고 설득해야 합니다. 그러나 상처에 남의 주의를 끄는 일없이 저 자신이 직접 살펴보아야 하고, 실제로 상처가 있는 것을 제가 볼 때에만 ‘알겠느냐? 너는 이러저러한 일로 너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환상을 보았기 때문에 상처를 입지 않았나 하고 염려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때에는… 죄의 진짜 근원을 비출 수 있을 빛을 주지 말고 구름 같은 망상을 불어 흩어버려야 합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썩 잘 말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음란의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말하거든 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살펴보아라. 죄가 어떤 연령층에서도 생길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린이에게서보다는 어른에게서 더 쉽게 만나게 된다. 따라서 어른이냐 어린이냐에 따라서 해야 할 질문과 대답이 달라질 것이다. 첫 번째 조사에 이어서 죄의 재료에 관한 둘째 조사가 따라 오고, 그 다음에는 죄 지은 장소에 대한 셋째 조사, 죄의 상황에 대한 넷째 조사, 있을 수 있는 죄의 공범자에 대한 다섯째 조사, 죄의 이유에 대한 여섯째 조사, 죄 지은 시간과 수에 대한 일곱째 조사가 뒤따른다.


어른의 경우에는, 세상에서 사는 어른의 경우에는 질문 하나하나에 죄의 실제를 연상케 하는 상황이 해당한다는 것을 보게 되는데 반해서, 나이로나 정신으로 어린 아이인 사람들의 경우에는 수많은 질문에 대해 너 스스로에게 ‘여기에는 망상이 있지 실제적인 죄는 없다’고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보게 될 것이다. 또 때로는 진흙 대신에 진흙이 튀지 않았는가 하고 걱정하고, 그 꽃받침 속에 내려온 이슬과 진흙이 튄 것과를 혼동하는 백합꽃이 있는 것을 보기도 할 것이다. 하늘나라를 너무 갈망하는 나머지, 그들과 태양 사이에 가로질러 있어서 잠시 어두움 속에 두지마는 곧 이어서 그 깨끗한 꽃부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 구름의 그림자까지도 얼룩이라고 생각하고 염려하는 영혼들이다. 너무도 죄가 없고 또 죄 없는 채로 남아 있기를 열망해서 사탄이 상상으로 놀라게 하거나, 육체의 실제적인 병을 이용해서 육체의 유혹 또는 육체 자체를 자극함으로써 놀라게 하는 영혼들이다. 그런 영혼들은 죄인들이 아니라 순교자들이기 때문에 위로를 받고 옹호되어야 한다. 이것을 항상 기억하여라.



또 남의 재물이나 다른 귀중한 것들에 대하여 탐욕으로 죄 짓는 사람들까지도 이와 마찬가지로 심판할 것을 항상 기억하여라. 과연 탐욕스럽고 무자비해서 가난한 사람의 것을 훔치는 것은 저주 받은 죄이고, 시민들과 하인들 또는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빵을 주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자기와 자녀들의 굶주림을 극복하기 위하여 이웃에게서 빵을 훔치는 사람의 죄는 덜 중대하고, 그것도 훨씬 덜 중대하다. 음란한 사람이나 도둑에 대해서도 죄의 수와 상황과 그 중대성을 판단할 때에 척도가 필요하고, 그가 죄를 지은 순간에 지은 죄에 대하여 죄인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느냐 하는 정도를 평하는 데도 척도가 필요하다.


과연 완전히 알고서 행동하는 사람은 무지로 인해서 행동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죄를 짓고, 

자유로 동의해서 행동하는 사람은 죄를 짓도록 부추김을 받은 사람보다 훨씬 더 죄를 짓는다.

네게 분명히 말하지만, 때로는 겉으로 보기에 죄와 같지마는 사실은 순교이고, 그래서 순교를 한 데 대하여 주는 상급을 받을 행위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경우에 있어서 단죄하기 전에, 너도 사람이었다는 것과 절대로 죄의 상태에 있는 것을 아무도 발견할 수가 없었던 네 선생이, 죄를 지었다고 뉘우치는 사람은 아무도 절대로 단죄하지 않았다는 것을 특히 기억하여라.
네 형제들과 네 자녀들의 죄를 일곱 번씩 일흔 번, 또 일흔 번씩 일흔 번까지도 용서하여라.

어떤 병자가 다시 병에 걸렸다고 해서 그에게 구원의 문을 닫는 것은 그를 죽이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알아들었느냐?”


“알아들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네가 생각하는 것을 다 말해라.”


“아! 물론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선생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제가 알고, 유다가 가지 않은 것을 괴로워하니까 제 대신 그를 보내 주십사 하고 말씀드리는 것이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가 샘을 내고, 제가 그에 대해서 분개한다고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평화를 주고 또… 선생님께서도 평화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 폭풍을 항상 그렇게 가까이에 두시는 것은 선생님께도 매우 괴로운 일일 테니까요….”


유다가 또 불평을 했느냐?”


“아! 그렇고 말구요! 그 사람은 선생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상처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말씀하신 것 까지두요. 왕관과 같이 빛나는 그 물건이 하와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하와가 나무에 갔었다고 말씀하신 것도 사실은 그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정말이지 아무 관계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식합니다. 반대로 바르톨로메오와 열성당원은 유다가 빛나는 것과 허영심을 자극하는 모든 것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정말 ‘몹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지혜로우니까 그 말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불쌍한 사도들에게 선심을 베풀어 주십시오! 유다를 기쁘게 해주시고, 유다와 함께 저도 기쁘게 해 주십시오. 어떤 모양으로든지! 선생님도 아시지요? 저는 그저 아이들이나 즐겁게 해 줄 줄 알고… 또 선생님의 품에서 어린 아이 노릇을 할 줄이나 압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참으로 온 힘을 기울여 사랑하고 있는 그의 예수께로 바싹 다가앉는다.

 

“안된다. 너를 기쁘게 해 줄 수가 없다. 조르지 말아라. 너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에 전도하러 가고, 그는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여기 남아있다. 내 사촌도 거기 대해 내게 말했다. 그런데 내가 사촌을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니’라고 대답했다. 내 어머니께서 부탁하시더라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벌이 아니라, 약이다. 그리고 유다는 그 약을 먹어야 한다. 

그것이 그의 정신에 소용이 없다 하더라도, 내 정신에는 소용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그를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어떤 일을 소홀히 했다고 나 자신을 비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께서는 엄하고, 명령적이시다.
베드로는 팔을 내려뜨리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다.


시몬아, 그렇게 슬퍼하지 말아라. 우리는 영원히 일치하고 서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다른 말을 내게 할 것이 있었지.”


“선생님, 시간이 늦었습니다. 선생님은 주무셔야 합니다.”


시몬아, 너는 나보다 더 쉬어야 한다. 너는 새벽에 길을 떠나야하니까.”


“오! 저로서는! 선생님과 여기 같이 있는 것이 침대에 있는 것보다 더 쉬는 것이 됩니다.”


“그럼 말해라. 내가 잠을 별로 자지 않는다는 것을 너도 알지….”


“이렇습니다! 저는 머리가 둔합니다. 그걸 저도 알고, 부끄럼 없이 그 말을 합니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저를 위해서라면 아는 것이 제게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 입니다. 가장 큰 지혜는 선생님을 사랑하고, 선생님을 따르고, 제 마음을 다해서 선생님께 봉사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선생님은 저를 이리저리 보내시고, 사람들은 제게 질문을 하고, 저는 대답을 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제가 선생님께 여쭈어 보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제게 물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선생님은 어제 죄 없는 사람들과 성인들이 항상 고통을 당할 것이고, 또 바로 그들이 모든 사람을 위해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제 머리로는 알아듣기 힘듭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그것을 바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알아듣기 힘듭니다. 그리고 제게 알아듣기 힘드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알아듣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제게 질문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이번 처음 여행 중에 한 어머니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어린 딸이 착하고 죄가 없었으니까, 그 애가 그렇게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 죽는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하고. 그래서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빼앗아 가셨으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시길 바랍니다.’하는 욥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도 확신을 가지지 못했었고, 그 어머니를 설득하지도 못했습니다. 다음번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옳은 말이다. 들어보아라. 가장 착한 사람들이 모든 사람을 위해 고통을 당하는 것은 부당한 것 같이 보이지만, 매우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시몬아, 말해보아라. 이 세상은 무엇이냐? 이 세상 전체가 무엇이냐 말이다.”


“이 세상이요? 먼지와 물, 바위, 초목, 동물, 그리고 인간으로 이루어진 큰 공간, 매우 큰 공간입니다.”


“또 그리고?”


“그리고, 그게 전부입니다…. 세상이 사람에게는 벌을 받고 귀양살이를 하는 곳이라는 말을 하라고 그러시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시몬아, 땅이 하나의 제단이다. 엄청나게 큰 제단이다. 땅은 그 창조주께 영속적인 영광을 드리는 제단이기로 되어 있었다그러나 땅에는 죄악이 가득 찼다. 그러므로 땅은 그 위에 희생 제물이 타고 있는 영속적인 속죄와 희생의 제단이 되어야 한다. 땅은 우주에 널려 있는 다른 세상들과 같이 저를 창조하신 하느님께 시편을 노래해야 할 것이다. 보아라!”


예수께서 나무로 만든 겉창을 여신다. 그러니까 활짝 열린 창으로 밤의 서늘한 기운과 개울물의 졸졸거리는 소리와 달빛이 들어오고, 별이 총총 박힌 하늘이 보인다.


“저 천체들을 보아라! 천체들은 창공의 무한한 공간 안에서 빛과 움직임이라는 그것들의 목소리로 하느님의 찬미를 노래한다. 수천 수 만 년 전부터 하늘의 파란 들판에서 하느님의 하늘에까지 올라가는 그것들의 노래가 계속된다. 우리는 천체와 유성, 별들과 살별들을 별의 사제와 성직자, 동정녀 및 신자처럼 끝없는 성전에서 창조주의 찬미를 노래하기로 되어 있는 별인 피조물로 생각할 수 있다.


시몬아, 들어보아라. 나뭇잎들 사이로 살랑거리며 부는 바람 소리와 밤의 고요 속에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하늘과 같이 땅도 바람과 물로, 새들과 짐승들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창공으로서는 그것을 가득 채운 천체들의 빛나는 찬미로 넉넉하지만, 땅이라는 성전으로서는 바람과 물과 짐승들의 노래로는 충분하지 않다. 땅에는 무의식적으로 하느님의 찬미를 노래하는 바람과 물과 짐승들만이 있지 않고,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현세와 세상에서는 동물과 광물과 식물과 같이 물질을 가지고 있어 모든 생물 위에 뛰어나는 완전한 피조물이며, 하늘의 천사들과 같이 영을 가지고 있고, 시련을 당하는 중에 충실하면 우선은 은총으로, 그 다음에는 천사들과 같이 천국으로 하느님을 알고 차지하게 되어 있는 완전히 피조물이다. 모든 상태를 포함하고 있는 종합체인 사람은 다른 피조물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사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 사명을 그에게 있어서 의미인 외에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기쁨이어야 할 것이다. 지혜롭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하느님께 사랑의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심으로 그리고 죽은 다음에는 하늘을 주심으로 베풀어 주신 사랑을 하느님께 갚아 드려야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예배를 드려야 한다. 시몬아, 생각해 보아라. 하느님께서 피조물에게서 어떤 이익을 얻으시느냐? 무슨 이득을 취하시느냐? 아무 이득도 얻지 않으신다. 피조물은 하느님을 더 크게 하지 못하고 하느님을 거룩하게 하지 못하고, 하느님을 부유하게 해 드리지 못한다. 하느님은 무한하시다. 피조물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그러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사랑을 가지기를 원하셨고, 사랑을 가지기 위하여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피조물에게서 얻으실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며, 천사들과 사람들에 있어서만 지적이고 자유로운 이 사랑이 하느님의 영광이고, 천사들의 기쁨이고, 사람들에게는 종교이다. 땅의 큰 제단에 사랑의 찬미와 애원이 들리지 않게 되는 날에는 땅이 존재하기를 그치게 될 것이다. 

사랑이 깨지고 나면, 속죄도 꺼질 것이고, 하느님의 분노는 지상의 지옥이 되어버렸을 땅을 없애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땅은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한다.

 

그뿐이 아니라, 땅은 사람들의 지능으로 사랑하고 기도하는 성전이어야 한다. 그러나 성전에는, 어떤 신전에는 어떠한 제물들을 바치느냐? 티 없고 흠 없는 깨끗한 제물을 바친다. 그런 제물만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다. 이런 제물과 맏물을 드려야 한다. 가장에게는 제일 좋은 물건을 드려야 하고, 인류의 가족인 아버지이신 하느님께는 모든 물건의 맏물과 정선된 물건들을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땅이 두 가지 제사의 의무, 즉 찬미의 의무와 속죄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세상을 뒤덮고 있는 인류는 최초의 사람들에게서 죄를 지었고, 또 끊임없이 죄를 지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없는 죄에 세속과 육신과 사탄의 목소리에 집착하는 수많은 다른 죄를 덧붙인다. 죄가 있는 인류, 하느님과 비슷하고, 고유한 것으로 지능을 가지고 있고 하느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항상 죄를 짓고 점점 더 짓는 죄 있는 인류이다. 천체들이 복종하고 초목들이 복종하고, 동물들도 복종하며, 그것들이 아는 대로 주님을 찬미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넉넉히 순종하지 않고 주님을 넉넉히 찬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사랑하고 속죄하는 제물이 되는 영혼들이 필요한 것이다. 죄 없고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 죄 지을 줄 밖에 모르는 사람들 대신으로 쓰라린 고통의 벌을 받고, 성인들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자발적으로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다.


이제 얼마 안 있어 ㅡ1년이나 1세기도 영원에 비하면 언제나‘얼마 안 되는 것’이다.ㅡ 땅의 큰 성전의 제단에는 완전한 제물(예수)과 더불어 제물이 되어 끊임없는 제사로 불살라질 사람인 희생의 번제물(순교자)이 아닌 다른 번제물은 바치지 않게 될 것이다. 시몬아, 당황하지 말아라. 

나는 몰로크와 바알과 아스타르테에 대한 예배와 같은 예배를 세우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자신이 우리를 제물로 바칠 것이다. 알아듣겠느냐? 우리를 제물로 바칠 것이란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사람 대신으로 속죄하고 사랑하기 위하여 기꺼이 죽음을 향해 갈 것이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지 않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사랑이 영속적인 제사에서 큰 제물과 더불어 불살라버릴 깨끗한 제물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그 제물들이 장차 올 때와 미래의 성전의 제물들이 될 것이다. 어린 양과 숫염소, 송아지와 비둘기 말고, 마음의 제물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다. 다윗이 거기 대한 직관을 가졌었다. 새로운 시대, 영과 사랑의 시대에는 다만 이 제물만이 기분 좋은 제물일 것이다.


시몬아, 하느님이 큰 죄와 사람들의 수많은 죄로 인한 하느님의 정의를 가라앉히기 위하여 육체를 취해야 했으니, 진리의 시대에는 사람들의 정신의 제물만이 주님을 가라앉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그분께서 짐승의 새끼들과 초목의 열매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주셨나?’ 하고 너는 생각하지. 내가 말해주마. 그것은 내가 오기 전에는 사람이 더럽혀진 번제물이었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사랑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랑이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사랑을 알게 될 은총을 돌려주겠기 때문에 사랑을 알 사람이 혼수상태에서 나와서 기억을 하고 이해하면서 살 것이고, 그의 선생이요 구속자인 나를 본받기 위해 사랑과 속죄의 희생이 되어 염소와 어린 양들을 대신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벌이었던 고통이 완전한 사랑으로 변할 것이고완전한 사랑으로 고통을 바치는 사람들은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 아이들은….”


아직 자기를 바칠 줄 모르는 사람들 말이지…. 그런데 하느님께서 언제 그들 안에서 말씀하시는지 아느냐? 하느님의 언어는 영적인 언어이다. 영혼이 그 언어를 이해하는데, 영혼은 나이가 없다. 더 나아가 어린이의 영혼은 악의가 없기 때문에 하느님을 이해하는 데에는 죄 있는 늙은이의 영혼보다 더 어른스럽다고까지 말하겠다. 시몬아, 네게 분명히 말한다만, 너는 많은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너 자신에게도 영웅적인 사랑의 지혜를 가르치는 것을 볼 만큼 오래 살 것이다.
그러나 자연사로 죽는 저 어린이들 안에서는 내가 네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고상한 사랑의 이유로 하느님께서 직접 작용하셔서, 그들을 생명의 책에, 하늘나라에서 지극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만이 읽을 책에 쓰여진 지혜들 속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이다. 읽을 것이라고 말했다마는, 사실은 하느님뿐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한 지혜까지도 알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쳐다보기만 하면 될 것이다…. 시몬아, 우리는 달이 지게까지 했구나…. 새벽이 되어 가는데 너는 잠을 못잤구나….”


“상관없습니다, 선생님. 저는 잠 몇 시간을 잃었지만 많은 지혜를 얻었고, 또 선생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허락하시면 이제 가겠습니다. 자려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검토하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는 벌써 문께로 가서 나가려고 하다가 생각을 하면서 발을 멈추더니 말한다.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선생님.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고통은 벌이 아니라 하나의 …은총이라고, 우리를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고, 힘들더라도 아름다운 것이고,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진저리나고 우울한 것으로 보일 수 있어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제가 말하는 것이 옳습니까?”


시몬아, 그렇게 말해도 된다. 그것은 진리이다. 고통은 그것을 받아들여서 정당하게 쓸 줄 알 때에는 벌이 아니다. 시몬아, 고통은 사제직과 같은 것이다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사제직이다. 하느님의 마음에 대해서 큰 능력을 주는 사제직. 또 큰 공로를 주는 사제직이다. 죄와 함께 생겨난 이 사제직은 정의를 가라앉힐 줄 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증오가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것까지도 선에 소용되게 할 줄을 아신다. 나는 죄를 없애기 위하여 다른 방법을 원치 않았다. 이보다 더 훌륭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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