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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 7주일 복음 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22 조회수974 추천수1 반대(0) 신고

 

이번 주일 복음의 최고 정점은 바로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입니다. 되는 게 좋다가 아니라 명령 화법을 사용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하셨다고 생각할 수가 있을까?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하셨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능하다는 말씀일 거라고 사료됩니다. 하느님은 가능하다고 하시는데 왜 우리 인간은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인 우리가 완전할 수가 있다고 말씀하시는가 하고 의구심을 가지는 것일까요?

 

바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바로 완전하게 되는 비결을 아주 간단 명료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세상의 논리와 일반적으로 반대로 하면 됩니다. 세상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는 것처럼 응징의 논리대로 하는 게 그게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건 세상에서 통하는 정의의 논리입니다. 근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세상의 정의의 법칙과는 다른 논조로 말씀하십니다.

 

누가 천 걸음을 가자면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고 하십니다. 유튜브에서 법륜스님의 강의를 한번 들었습니다. 여기에 개신교 신자와 천주교 신자의 질문에 답변하시면서 성경에 나오는 이 내용을 가지고 아주 이색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론 거기에서는 오리와 십리로 나옵니다.

 

스님은 오리를 가자고 해서 오리를 가면 을이 되지만 십리를 더 가주면 자기가 갑의 위치에 있게 된다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법륜스님은 미국 어떤 한인 성당에서도 초청하셔서 강연도 하신 적이 있고 또 한국에서 서울 모 성당에서도 강연하신 것을 유튜브로 봤습니다.

 

어떤 댓글에는 최근에 어떤 목사님과 실제 신부님이고 하시면서 댓글을 다신 걸 봤습니다. 종교를 떠나 물론 스님이지만 좋은 가르침이라고 하면 좋게 수용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봅니다. 스님이 실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실제 기독교 관점에서 보면 자신도 하느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말씀을 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하실 때 이분은 정말 열린 사고를 하고 계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언제 한번은 최후의 심판 이야기도 잘 말씀하시고 초대교회사를 언급하실 때 정말 놀라웠는데 나중에 언제 왜 그렇게 잘 아시는지를 알았습니다.

 

어려서는 교회를 다니셔셔 동방박사 연극도 하고 하셔서 나름 출가를 하시고 난 후에도 성경을 보시고 하셨더군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갑자기 스님 이야기를 해서 양해와 이해를 구하는 뜻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스님의 이 말씀에 참 많은 생각을 하며 다시 강연을 들은 후에 이 부분에 대해 복음을 찾아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갑질이라는 말 때문에 갑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갑이라는 말은 나쁜 말이 아닙니다. 달리 표현을 하면 주인과 종 이렇게 다르게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과 관련해서 주인이라는 건 이렇게도 생각해봤습니다.

 

바로 복음의 원리에 의하면 빛의 자녀가 바로 주인과 종에서 주인의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세상에서 갑으로 사는 건 빛의 자녀로 살아라고 하는 것과 비슷할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갑은 아이러니하게도 갑으로서 살면 진정한 갑이 되는 것이 아닐 겁니다.

 

갑이지만 을인 종처럼 살아야 그 종이 진정한 갑이 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게 예수님의 복음의 원리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일 복음에 나오는 원리가 바로 이 원리입니다. 자신이 복음에 나오는 대로 살면 우리가 보기엔 을로 사는 것 같지만 실제 하느님의 논리로 보면 그게 진정한 갑으로 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을로 산다면 그게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일 거라고 봅니다. 독서에서도 나옵니다.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 말씀도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린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내용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처럼 거룩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교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어찌 살 수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는 그게 교만이라고 강조하십니다.

 

2독서에서도 분명히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십니다. 저희가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말입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거룩한 전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따라서 우리도 거룩한 존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배운 시조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조가 있습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저는 이 시조를 20대 때부터 항상 시조이지만 다르게 외웠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길이 어렵다고 한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도 하늘 아래 있기에 지금 여기에서 보면은 그 산이 높은 것처럼 보여 오를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오르고 오르면 언젠가는 오를 수 있을 텐데 사람이 오를 생각은 하지 않고 산만 높다고 산만 탓하네 하는 식으로 저는 이렇게 이 시조를 변형해서 묵상을 했습니다.

 

이렇게 변형해서 시를 묵상해보면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한번 변형해서 묵상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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