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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정욱 다니엘신부님복음묵상/3월22일 사순 제4주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1 조회수1,132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정욱 다니엘신부님복음묵상

2020322일 사순 제4주일

요한 9,1-41

+찬미예수님. 사순 제4주일은

기쁨 주일로서, 입당송은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하고 노래합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치유로

기쁨을 되찾은 태생 소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빛이 있는 중에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기쁨이 빛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불빛하나 없는 어두운 길을

걸어본 사람은 압니다.

어둠속에서 기쁨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두렵고 긴장된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목적지를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도 빛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어둠으로

둘러싸인 채 비틀거리다

온갖 죄에 걸려 넘어지는 가운데

기쁨이 없었습니다.

어둠속에 있는 온 인류를

비추기 위해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요한복음 머리글을 보면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고 말합니다.

빛은 아름다움이고 기쁨이며

거룩함이고 생명이며 하느님

자신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어둠은 추하고 불운하며,

죄와 죽음을 가져오고 모든 것의

원흉인 악마를 상징합니다.

빛과 어둠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편에 서서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거나

죄와 죽음으로 떨어지는 악마의

편에 서서 살거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인 태생소경의

치유도 이러한 빛과 어둠의

투쟁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을 두 가지 종류의

눈멂을 통한 빛과 어둠의

선택을 잘 보여줍니다.

태생소경의 육체적 눈멂과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반대하는 바리사이들의

영적 눈멂이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선언하시며, 어둠이 아닌

빛을 받아들이고

선택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상반된

두 가지 태도를 봅니다.

하나는 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육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잘 본다고

하는 바리사이들의 태도입니다.

복음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는 태생소경이

청하지도 않았는데도 직접

나서시어 눈을 뜨도록 고쳐주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는 순전히

자비로 인류를 구원하러

세상에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소경인 그는 죄로 인해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인류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 자비로

구원을 받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로써

몸을 씻고 죄 때문에 잃어버린

시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태생 소경이

다시 보게 된 것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요한 9,7)

말씀대로 한 까닭입니다.

그는 보지도 못한 채 말씀에

순명하여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고 앞을 보게되어 돌아옵니다.

그는 예수님께 많은 물음을

쏟아낼 수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그분을 믿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의 모습과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여기에 깊은 가르침이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라는 길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자신과

자만이라는 점입니다.

율법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갖춘

바리사이들의 지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만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지혜와 힘만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태생소경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간 반면 바리사이들은

빛으로부터 멀어져 더 짙은

어둠 속으로 빠져버립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행동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율법을 무시하는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인

자비로운 사랑을 베푸는 일은

안식일이라도 해야 한다고

하시지만 바리아이들은

종교적 관습에 대한 엄격한

시각을 가지고 안식을일

지킬 것은 요구합니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이 너그러우신

분이시며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을

금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하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바리사이들의

불신과 심문에 가까운 질문 속에서도

태생 소경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다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소경은 이제 육체적으로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빛을

바라보기를 거부하는 이들을

향한 단죄의 말씀이며 회개를

호소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둠이 아닌 빛을

선택해야 합니다.

, 삶의 모든 상황에서

선을 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영적 눈을 갖게

해달라고 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외모나 경제적

요인 같은 외적이고 피상적인

요소만을 근거해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영적 기준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늘의 1독서를 통한

다윗을 선택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2독서에서 같은 의미로

바오로 사도는 영적 빛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2독서를 통해 우리는

오늘 복음의 주제가 더 깊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빛을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

그리스도인의 임무는

하느님의 빛을 자기 삶에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빛을

자신의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에서

더 많은 빛을 받아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권합니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우리 모두 하느님의

영광과 온 세상의 선익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에 더 깊이

참여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파스카를 향한 여정을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공세리성지성당보좌 이정욱다니엘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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